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골짜기 (In the Ravlne) 6. - 안톤 체홉

Joyfule 2010. 4. 21. 10:34

 골짜기 (In the Ravlne) 6. -  안톤 체홉    
 
손님 중에는 성직자도 있었고, 부부 동반해서 온 
공장의 사무원과 딴 마을에서 온 상인과 술집 주인도 있었다. 
14년 동안이나 함께 근무하면서 
그 동안 한 장의 서류에도 서명한 적이 없고, 
관청에 온 사람이면 누구 하나 속이거나 모욕을 주지 않고 
그냥  돌려보낸 적이 없다는 군수와 서기도 나란히 앉아 있었다. 
둘 다 피둥피둥하게 살찌고 혈색이 좋았다.
 둘 다 부정과 사기가 몸에 베어 있어서, 
얼굴의 피부조차 어쩐지 유달리 흉물스러워 보였다. 
사팔뜨기에다 바싹 말라빠진 서기의 아내는 
자기 아이들을 하나도 빠짐없이 데리고 와서, 
접시란 접시는 모두 사나운 새처럼 곁눈질하다가 손에 닿는 대로 
무엇이든지 접어서 자기 포켓과 아이들의 포켓에 쑤셔 넣었다.
리파는 여기 와서도 교회에서와 똑같은 얼굴로, 
마치 화석이 된 것처럼 꼿꼿이 앉아 있었다. 
아니심은 첫 대면 이후 지금까지 그녀와 말 한마디 교환한 적이 없었으므로 
그녀의 목소리가 어떤지도 모르고  있었다. 
그녀와 나란히 앉아 있으면서도 시
종일관 침묵을 지킨 채 영국산 화주만 마시고 있었다. 
취기가 돌자 맞은편에 앉아 있는 이모에게 말을 걸었다.
  "내게는 사모로도프라는 친구가 하나 있는데요, 
대단한 놈이지요. 명예공민(어떤 공적이나 교육 자격에 대해서 
귀족이 아닌 사람에게 주는 칭호: 역주)의 자격이 있어서 
이야기를 시키면 참 잘하지요. 
그런데 이모님, 나는 녀석을 뱃속까지 꿰뚫어 보고 있고, 
녀석도 그것을 알고 있어요. 어떠세요,
한 번 사모로도프의 건강을 비는 뜻으로 함께 건배하시지 않겠어요. 네, 이모님!"
바르바라는 몹시 피곤하고 들뜬 모습으로 
손님들에게 요리를 권하면서 테이블 주위를 돌아다니고 있었다. 
그녀는 이런 호화로운 요리가 푸짐하게 나와 있으니까 
아무도 불평하는 이가 없으리라고 생각하며 만족해 하는 것 같았다. 
이윽고 날이 저물었으나 식사는 여전히 계속되었다. 
사람들은 점점 자기들의 무엇을 먹고 있고 
무엇을 마시고 있는지 분간 못하게 되었다. 
또한 무슨 말을 지껄이고 있는지조차 분간할 수 없었다. 
다만 음악이 때때로 그쳤을 때, 
어떤 여자가 이런 말을 외쳐대고 있는 것만 뚜렷하게 들렸다.
  "실컷 남의 피를  빨아먹다니. 천벌받을 놈, 뒈져 버려라!"  
밤이 되자 다같이 음악에 맞춰 춤을 추었다. 
플뤼민 아우네 집안 사람들은 집에서 술을 가지고 왔다. 
그중의 한 사람은 카드리유(4명의 남녀가 서로 마주 보며 추는 
프랑스의 사교 댄스. 19세기경 온 유럽에 유행했음: 역주)를 출 때, 
양손에 병을 하나씩 들고 입에 술잔을 물고  추었다. 
이것을 보고 여러 사람들이 웃었다. 
카드리유를 추던 그들은 갑자기  몸을 꾸부린 채 러시아 춤을 추기 시작했다. 
초록색 옷을 입은 악시냐는 어찌나  빨리 추는지, 
그 추는 모습이 눈에 잘 보이지 않을 정도였고 치맛자락에서는 바람이 쌩쌩 일었다. 
누군가가 그녀의  스커트 단의 레이스를 밟았다. 
그러자 '목발'영감이 이렇게 외쳤다.
  "야아, 스커트의 허리판이 빠져 버렸단다! 애들아"
  악시나는 거의 깜박이지 않는 잿빛의 앳된 눈을 가지고 있었다. 
얼굴에선 줄곧 아리따운 미소가 가시지를 않았다. 
이 깜박이지 않는 눈과, 가늘고 간 목 위의 작은 머리와 
날씬한 몸매는 어쩐지 뱀 같은 인상을 주었다. 
노란색의 가슴판이 달린 초록색 옷을 입고 생글생글거리며 
주위를 둘러보는 모습은, 이른 봄에 어린 호밀밭에서 머리를 쳐들고 
통행인들을 엿보는 독사와 어딘가 닮은 데가 있었다. 
플뤼민네 집안 사람들과 그녀는 아주 친한 것 같았는데, 
그들 가운데 제일 나이 많은 자가 
그전부터 그녀와 은말한 사이라는 것은 누구나 훤히 아는 사실이었다. 
다만 귀머거리  스테판만이 아무것도 모른채, 
그녀쪽을 쳐다보려고도 하지 않았다. 
그는 책상다리를 하고 앉아서 마치 권총을 쏘는 것처럼 
요란한 소리를 내며 호드를 까먹고 있었다. 
  그러는 동안 그리고리 노인이 일어나 방 한가운데로 나서며, 
자기도 러시아 춤을 추겠다는 신호로 손수건을 흔들었다. 
그러자 집안에 있던 사람들뿐 아니라 
안뜰에 있던 사람들에게서까지 함성이 터져 나왔다. 
  "몸소 나오셨다! 몸소!"
  그러나 춤을 춘 것은 바르바라였고 노인은 그저 
손수건을 흔들거나 양쪽 발을 교대로 하며 구두 뒤축을 울리고 있을 뿐이었는데도, 
안뜰에 있던 사람들은 서로 밀치고 떠밀면서 창가에 매달려 환성을 울렸다. 
잠시 동안이긴 하나 그에 대한 모든 불평 불만을  잊고 있었다-
그가 부자라는 것도,  또한 그가 자기들에게 지독하다는 것도. 
  "잘하는데, 그리고리!" 
사람들 속에서 그런 소리가 들려왔다.
 "힘을  내라! 그정도면 아직 얼마든지 벌어들이겠구나! 하,하!"
  밤이 깊어 1시가 지나서야 이 모든 소동이 조용해졌다. 
아니심은 비틀거리며 합창대와 악대들에게 일일이 작별 인사를 하고 
그들 모두에게 50코페이카짜리 새 은화를 하나씩 나누어 주었다. 
노인은 한 발로 걷는 것처럼 껑충거리면서 손님들을 배웅했다. 
그는 한 사람씩 붙잡고 말했다.
  "이 결혼시에 2천 루블이나 들었어."
  손님들이 꾸역꾸역 돌아가느 사이에 누군가 자기의 헌 외투를 벗어놓고 
시칼로보 술집 주인이 입고 온 소매없는 고급 외투를 대신 입고 간 사람이 있었다. 
아니심이 이 사실을 알고 벌컥 화를 내며 소리쳤다. 
  "가만 있어!내가 곧 찾아올게! 훔친 자식을 훤히 알고 있어! 기다려!"  
그는 거리로 달려나가, 어떤 사람의 뒤를 쫓아갔다. 
이윽고 그를 붙잡아 팔을 끌고 집으로 데려왔다. 
그리고 취한 데다가 화가나서 빨갛게 상기된 채 땀을 흘리면서, 
그때 막 리파가 이모의 도움으로 옷을 갈아입고 있던 방 안으로 
그를 밀어넣고 철컥 자물쇠를 잠가버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