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골짜기 (In the Ravlne) 7. - 안톤 체홉

Joyfule 2010. 4. 22. 08:38

 골짜기 (In the Ravlne) 7. -  안톤 체홉    
 
그로부터 닷새가 지났다. 
아니심은 떠날 채비를 끝내고 
바르바라에게 인사를 하기 위해 2층으로 올라갔다. 
등이란 등에는 모조리 불이 밝혀져 있고, 
주위에서는 향내가 자욱했다. 
바르바라는 창가에 앉아서 빨간 털실로 양말을 짜고 있었다. 
  "온 지 며칠 되지도 않았느데..." 그녀가 말했다. 
"아마 답답한 모양이지. 뭐... 
우린 부족한 것 없이 마음 편히 잘 살고 있지. 
결혼만 해도 그래, 훌륭하고 실수 없이 치렀지. 
아버님은 2천 루블이나 들었다고 입버릇처럼 말씀하시지. 
뭐, 그 한 마디로 버젓한 상인답게 사는 걸 중명하는 셈이야. 
다만 이 집은 어쩐지 답답해. 그야 물론 탐욕스런 짓만 하니까 그럴 거야. 
난 아무래도 그게 마음에 걸려 못 견디겠어. 
그 악랄함이란 것을 좀 생각해 봐. 
말 한 마리를 바꾸는 데나, 뭔가 조그마한 물건 하나를 사들이는 데나, 
사람을 고용하는 데에도 다 그렇단 말이야. 
밤낮으로 사람들에게 사기만 치고 있으니. 하나부터 열까지 속임수 투성이야. 
우리 가게에서 팔고 있는 금육일에 쓰는 기름 같은 것은, 
맛이 쓰고 썩어서 다른 가게에서 파는 송진보다 못할 정도야. 
도대체 왜 좋은 기름을 못파느냔 말이야."
  "어머니, 사람은 각기 제 갈 길이 있답니다."
  "너는 그렇게 쉽게 말하지만, 사람은 모두 언젠가는 죽게 마련이지. 
그러니, 정말 네가 한 번 아버지께 말씀드려보는 게 어떨까!"
  "어머니가 직접 말씀드리는 게 좋지 않을까요?"
  "그게 말이야, 나도 말씀을 드리기는 하지. 
그렇지만 아버지는 단한 마디, 아니심이 지금 말한 그대로 말씀하실 뿐이야...
'사람은 각기 제 갈 길이 있다.' 하지만 
저 세상에 가면, 그야말로 사람은 각기 어떤 길을 걸었는가  
반드시 조사를 받게 돼. 하느님의 심판은 언제나 올바르시니까."
  "설마 그런 것을 누가 조사하겠어요." 
아니심은 그렇게 말하며 한숨을 쉬었다.
"왜냐하면 어머니, 어차피 하느님 같은 건 없으니까요. 
조사하다니, 말도 안 됩니다!"
  바르바라는 이상하다는 듯한 얼굴로 그를 바라보고 있다가 
이윽고 웃으면서 두 손을 모았다. 
그녀가 그의 말에 너무나도 놀라  매우 별난 사람이라도 보는 것처럼 
그를 쳐다보았으므로, 그는 당황해 버렸다. 
  "그야 하느님은 있을지 모르지만 다만 믿음이 없단 말입니다. 
요전 결혼식 때에는 어쩐지 이상한 기분이 들었어요. 
암탉이 품고 있는 달걀을 보면 속에서 병아리가 삐약삐약 울고 있을때가 있지요, 
꼭 그와 같이, 제 마음 곳에서도 양심이 울고 있었던 겁니다. 
그래서 저는 식이 거행되는 동안 내내 하느님은 계신다고 생각했어요. 
그러나 교회에서 나오자마자 그런 생각은 자취도 없이 사라져 버렸어요. 
하느님이 있는지 없는지 그걸 어떻게 압니까? 
저희들은 아주 꼬마 적부터 그런 것을 배워왔어요. 
어머니 젖을 빨고 있을 때부터 배우는 것은 단 한 가지, 
사람은 각기 제 갈 길이 있다는 것뿐이었어요. 
첫째, 아버님도 하느님을 믿고 있지 않아요. 
어머니가 언젠가는 군트레프네에서 양을 도둑 맞았다고 말씀하셨지여... 
전 범인을 찾아주었습니다. 
그것을 훔친 것은 시칼로보의 어느 농부였어요. 
그런데 도둑질은 그놈이 했는데, 
그 양의 털가죽은 놀랍게도 우리 아버지한테 있지 않겠어요... 
이러고도 믿음이 존재한다고 할 수 있겠어요!" 
아니심은 한쪽 눈을 깜박거리면서 머리를 흔들었다.
  "군수도 하느님을 안 믿어요." 그는 계속했다. 
"서기도 그렇습니다. 교회 집사도 그렇구요. 
이런 사람들이 교회에 다니거나 금육일을 지키는 것은 
남에게 욕을 먹지 않으려고, 
또 어쩌면 정말로 최후의 심판날이 다가오지 않는다고 
장담살 수 없기 때문이겠죠. 
요즘 항간에서는 뭐 인간이 나약해졌다든가, 
또는 양친을 공경하지 않게 되었다든가, 
그런 이유로 마치 세상의 종말이 온 것처럼 떠들어대지요, 
쓸데없는 짓이에요. 저는요, 어머니, 이렇게 생각합니다. 
여러 가지요, 어머니, 어떤 것이라도 속까지 
꿰뚫어보는 사람이니까 환히 알고 있어요. 
딴 데서 훔쳐 온 셔츠를 입고 있는 녀석이 있으면,
 제게는 곧 그것이 직감적으로 느껴집니다. 
그리고 어떤 사람이 음식점에 앉아 있다고 합시다. 
어머니 같으면, 그저 차를 마시고 있나보다 생각하시겠지요. 
그러나 저는 차도 차지만, 
그밖에 그자식은 양심이 없는 자식이라는 것을 환히 알아봅니다. 
하루종일 여기저기 돌아다녀봤자 
양심 있는 인간 같은 건 하나도 발견할 수 없어요. 
이게 다 하느님이 있는지 없는지 모르기 때문이에요.. 
그건 그렇고, 어머니, 전 이만 물러갑니다. 
부디 안녕히 계십시오. 저를 나쁘게 생각지 마세요" 
아니심은 바르바라의 다리께까지 몸을 굽혀 인사를 했다.
  "저희들은 만사에 있어서 어머니를 고맙게 생각하고 있어요. 
어머니한테는 우리 집안 사람 모두가 큰 은혜를 입고 있으니까요. 
어머니는 정말 훌륭한 분이십니다. 
저는 진심으로 기쁘게 생각하고 있습니다."
아니심은 매우 감동한 태도로 밖으로 나갔다가 다시 돌아와서 말을 계속했다.  
  "저는 사모르도프 때문에 어떤 사건에 말려들었습니다. 
부자가 되느냐 아니면 파멸이냐, 양단간에 하나입니다. 
만약 무슨 일이 생기면, 그때에는 어머니께서 아버지를 잘 위로해 드리세요."
  "무슨 소리를 하는 거야! 저, 저... 하느님은 자애로우셔. 
그보다도 아니심, 노는 아내를 더 귀여워해 줘야 되네. 
너희들은 둘 다 입을 꼭 다문 채 눈싸움만 하고 있잖아. 
하다 못해 서로 웃는 얼굴이라도 보여주어야지."  
"예, 그런데요, 그 사람은 좀 별나요..."
 아니심은 이렇게 말하고 한숨을 쉬었다.
 "아무 것도 모르고 언제나 입을 꼭 봉하고  있어요. 
아직 나이가 너무 어린 겁니다. 좀도 어른이 되어야겠어요."
  현관 앞 계단 께에는 벌써 키가 크고 살찐 흰 수말이 마차에 매여서 있었다. 
그리고리 노인은 몸의 리듬을 조절해서 달려가 
기운차게 마차에 뛰어 올라 고삐를 잡았다. 
아니심은 바르바라와 악시냐와 아우에게 키스를 했다. 
현관 앞 계단에는 리파도 나와 있었지만, 
그녀는 몸도 까딱 않고 서서 마치 배웅하러 나온 게 아니라 
그저 우연히 거기 있게 된 것처럼 엉뚱한 곳만 바라보고 있었다. 
아니심은 리파에게 다가가서 볼에다 가볍게 입술을 댔다. 
  "잘 있어요."하고 그는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