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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일인의 사랑 - 막스뮐러 12

Joyfule 2010. 8. 23. 14:06
 

   
독일인의 사랑 -  막스뮐러 12 
여섯째 회상  
다음날 아침 일찍 방문 두드리는 소리가 나더니,
궁중 고문관인 늙은 의사가 들어섰다.   
그는 작은 우리 도시 주민 모두의 친구이자, 
정신 및 육체를 돌봐 주는 사람이었다.   
그는 2대에 걸쳐 주민들의 성장을 지켜봐 온 것이다.  
출산을 봐 주었던 아이들이 어느 새 아버지 어머니가 되었고, 
그는 그들 모두를 자기 자식처럼 여겼다.   
아직 독신이었지만, 고령에도 불구하고 정정하고 미남이라 부를 만한 풍모였다.
지금 내 기억에 남아 있는 그의 모습은 그날 내 앞에 서 있던 모습 그대로이다.   
숱이 많은 눈썹 밑에서 빛나던 밝고 푸른 눈, 머리칼은 백발이 성성했지만, 
아직도 젊은 기운이 그대로 있어 구불구불 윤기가 흘렀다.   
또한 은 장식이 달린 구두, 흰 양말, 언제 봐도 새것 같으면서도 
항상 똑같은 것을 걸친 듯한 갈색 웃도리 등을 나는 잊을 수 없다.   
또 지팡이는 어릴 적 나의 맥을 짚든가 처방전을 써 줄 때 
내 침대 곁에 세워 두곤 했던 바로 그것이었다.
나는 잦은 병치레를 했다.   
하지만 번번이 곧 회복된 것은 그 의사에 대한 나의 믿음 덕분이었다.   
그 의사가 나를 낫게 해 주리라는 점을 나는 눈꼽만치도 의심한 적이 없었다.   
나보고 병을 고치러 의사한테 가라고 하시던 어머니의 말씀은, 
내게는 마치 찢어진 바지를 수선시키러 
재봉사한테 보내겠다는 소리와 다름없이 들렸다.  
약을 먹기만 해도 당장 낫는 느낌이었다.
어떻게 지내나, 여보게. 의사는 방 안에 들어서자 말했다.
안색이 별로 좋지 않군. 너무 지나치게 공부를 하면 안 돼.   
아뭏든 오늘은 긴 수다를 떨 시간이 없네.   
내가 온 용건은, 
다시는 백작 영양 마리아를 찾아가지 말라는 부탁을 하러 온 걸세.   
나는 어제 밤새도록 그 여자를 지키고 있었다네.   
그건 자네 탓이야.   
그러니 그녀의 목슴을 소중히 생각한다면 다시는 그 여자를 방문하지 말게.   
가능한 한 빨리 마리아를 시골로 가게 해야겠어.   
자네도 얼마간 여행이라도 하는게 좋겠지.   
자, 그럼 잘 있게. 그리고 내 말을 꼭 지켜 주게.
이 말을 하고 그는 내게 손을 내밀고, 
내게서 약속을 받아 내려는 듯 다정하게 나의 눈 속을 들여다보았다.   
그러고 나서 자기의 병든 자식들을 방문하러 떠나갔다.
타인이 내 마음속 비밀을 돌연히, 이토록 깊이 파고들었다는 사실, 
실로 나 자신도 모르고 있던 것까지 알고 있다는 사실에, 
나는 얻어맞은 듯 놀랐다.   
그래서 의사가 벌써 큰 길로 나섰을 때야 비로소 생각을 가다듬기 시작했다.   
나의 마음속은, 벌써 불 위에 올려놓았는데
잠잠하게 달아올랐다가 돌연 끓기 시작하는 물처럼, 
갑자기 터지도록 부글부글 끓어오르기 시작했다.
그녀를 다시 못 만난다니 - 
나는 진정 그녀 곁에 있을 때만 살아 있음을 느낀다.   
조용히 있을 테다.   
그녀에게 아무 말도 걸지 않고, 
그녀가 잠들어 꿈을 꿀 때 가만히 창가에 서 있을 테다 - 
그런데 그녀를 만나지 못한다고?   
작별 인사조차 할 수 없단 말인가?  그녀는 알 리가 없다.
내가 자기를 사랑한다는 사실을 알 턱이 없다.   
아, 하긴 나도 그녀를 사랑하는 것은 아닐 거다 - 
나는 그녀를 탐하지 않는다.   
아무것도 희망하지 않는다.   
실로 그녀 곁에 있을 때처럼 내 심장이 평온히 뛰는 적이 없지 않은가.   
하지만 나는 그녀가 곁에 있음을 느끼지 않고는 견딜 수가 없다.   
그녀의 영혼을 호흡하지 않고는 견딜 수 없다.   
그녀에게 가야만 한다!   그녀도 나를 기다릴 것이다.
운명이 아무런 뜻도 없이 우리 둘을 만나게 한 것일까?   
내가 그녀의 위안이 되고, 그녀가 나의 안식이 되어선 안 된단 말인가?   
인생이란 유희가 아니지 않은가.   
두 인간의 영혼이 만나는 것이, 
소용돌이치는 열풍에 모았다가 흩어 버리는 
저 사막의 모래알의 만남과 같을 수 는 없지 않은가.   
행운이 마주치게 한 우리의 영혼들을 꼭 붙잡아야한다.
왜냐하면 그 영혼들은 우리를 위해 점지된 것이니까.   
그것을 위해 살고 싸우며 죽어갈 용기만 갖고 있다면, 
어떤 힘도 우리에게서 그 혼을 뺏아 가지 못하리라.  
그 나무 그늘 밑에서 그토록 행복한 꿈을 꾸다가 
첫 번째 뇌성에 놀라 나무를 떠나가듯, 
이제 내가 이렇게 그녀의 사랑을 떠나 버린다면, 
필시 그녀는 나를 경멸하리라.
그러자 갑자기 내 마음속이 평온해지며, 
다만<그녀의 사랑>이라는 말만 귓가에 쟁쟁하게 남았다.   
스스로 흠칫 놀랄 지경으로, 
그 말은 내 마음 온 구석구석에서 메아리처럼 울렸다.   
<그녀의 사랑>-
내게 어디 그럴만한 자격이 있는가?   
실상 그녀는 나를 거의 모르고 있다.   
설혹 그녀가 나를 사랑할 수 있다 하더라도, 
나 자신 천사의 사랑을 받을 만한 자격이 없음을 
그녀에게 내 입으로 고백해야 하지 않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