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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일인의 사랑 - 막스뮐러 13

Joyfule 2010. 8. 24. 09:57
 

   
독일인의 사랑 -  막스뮐러 13  
여섯째 회상 
푸른 창공으로 비상하려 하지만 자신을 둘러싼 새장을 못 보는 새처럼,
내 마음에서는 온갖 상념과 희망이 후루룩 떠올랐다가 속절없이 가라앉곤 했다.   
하지만 이 모든 행복이 이토록 가까이 있는데, 
왜 그곳에 닿을 수는 없단 말이냐!   
신은 기적을 행할 수는 없는 걸까?   
신은 매일 아침 기적을 행하시지 않는가?   
내가 믿음에 찬 기도를 올리며 신을 향해 간절히 매달리면, 
결국 신은 내 기도를 종종 들어 주시지 않았는가?
우리가 간구하는 것은 세속적 재화가 아니잖은가.   
우리는 다만, 서로를 발견하고 알아볼 두 영혼이 손을 잡고 마주 바라보며, 
이 짧은 지상의 여행을 같이 하도록 허락해 달라는 것뿐, 
그래서 목적지에 이를 때까지 나는 그녀의 병고의 지팡이가 되고, 
그녀는 내게 위안이나 사랑스런 배려자로 머물기를 기원할 뿐인 것이다.   
그리하여 그녀의 생에 또 한 번의 봄이 약속된다면, 
그녀의 고통이 덜어지게 된다면! - 
오, 그때 내 눈앞을 스치고 지나갔던 축복받은 행복의 영상들이여!
돌아가신 그녀의 어머니는 그녀에게 티롤에다 성채를 남기셨다 - 
그곳 푸른 산 속, 신선한 공기를 쐬며, 건강하고 소박한 주민들 틈에서,
복잡하게 물려 돌아가는 세상사, 세 속의 근심과 싸움질에서 동떨어진 채,
질시와 비판의 눈초리도 없는 곳에서 우리는 
얼마나 복된 평안에 잠겨 생의 저녁을 맞을 수 있을까?   
<저녁 노을처럼 말없이 사라질 수>있을까?
그때 나는 어두운 호수와 살아 있는 듯 명멸하는 호수의 물결을 보았고,
그 안에 비친 저 먼 빙산의 투명한 그림자를 보았다.   
내 귀에는 양 떼의 방울 소리, 목동들의 노랫소리가 울려 왔다.   
또 총을 멘 포수들이 산을 넘어가는 모습, 
저녁이면 마을에 모여드는 노인들과 젊은이들을 보았다.
그리고 어디를 가든 마리아는 평화의 천사처럼 축복을 뿌리며 지나갔고,
나는 그녀의 친구요, 안내자였다.
별 수 없는 바보!  라고 나는 소리쳤다.   
바보 같은 녀석!  
어쩌면 네 마음은 여전히 그토록 미개하며 비겁하단 말이냐!   
정신차리렴 - 
네가 누구인지를 그녀와 얼마나 동떨어진 존재인지를 생각하라.   
그녀는 상냥하고, 타인의 마음속에 자신을 비춰 보기를 좋아한다.   
하지만 그녀의 어린애같이 붙임성 있고 스스럼없는 태도야말로 
그녀 마음에 너에 대한 별나게 깊은 감정이 
깃들어 있지 않음을 여실히 보여 주는게 아니냐.
밝은 여름밤 홀로 너도밤나무 숲을 거닐 때, 
달이 모든 나뭇가지와 잎새에 고루 은빛을 붓는 것을 너는 보지 않았느냐?   
달은 어둡고 탁한 연못 물에도 빛을 비추고, 
아무리 작은 물방울 속에서도 찬란하게 반영되지 않더냐?   
이와 마찬가지로 그녀의 눈빛도 이 어두운 생을 향하고 있는 것이다.   
마찬가지로 너 역시 그녀의 포근한 빛을 네 가슴에 투영시켜 담고 있을 수는 있다.   
그러나 그 이상의 따뜻한 눈빛을 기대하지는 말라!
그때 불현 듯 그녀의 모습이 생생하게 내 눈앞에 다가섰다.   
기억 속의 상이 아니라 하나의 환영처럼 그녀는 내 앞에 서 있었다.   
그때 비로소 처음으로 나는 그녀가 얼마나 아름다운가를 진실로 인식했다.   
그것은 예쁜 소녀의 경우처럼 첫눈에는 우리를 눈부시게 하지만 
얼마 안 가 봄날 꽃처럼 흩날려 가는, 그런 색채와 형태의 아름다움이 아니었다.   
그 아름다움은 오히려 모든 본질이 조화된 모습이라고 할 수 있었다.
하나하나의 움직임이 진실이요, 전체가 정신화된 표현이며, 
육체와 정신의 완전한 융합으로서 
그것을 바라보는 이에게 행복감을 주는 아름다움이었다.
자연이 차별 없이 분배하는 아름다움은, 
인간이 그것을 자기 것으로 하지 않으면, 
말하자면 노력하여 쟁취하지 않으면 만족을 주지 않는다.
그렇지 않은 경우 그 아름다움은 마치 여배우가 여왕의 의상을 입고
무대로 나오는데 걸음을 떼어놓을 때마다 
그 의상이 결코 그녀에게 어울리지 않으며, 
그것이 자기 것이 아님을 드러내듯이, 오히려 불쾌감을 줄 뿐이다.   
그러나 참된 아름다움이란 우아함이며, 
우아함은 모든 압박과 육체적, 세속적인 것이 정신화된 모습을 보여 준다.   
그것은 추한 것까지 아름답게 하는 정신의 현존인 것이다.
그렇게 내 앞에 서 있는 환영을 관찰하면 할수록 
나는 그 환영의 머리끝에서 발끝까지 풍기는 고귀한 아름다움을, 
그 온 존재에 비치는 영적 깊이를 알아보았다.   
오, 그토록 엄청난 축복이 내 곁에 가까이 있었던 것이다.
그러나 그 모둔 것은 내게 지상의 행복의 절정을 보여 주고 나서, 
나를 인생의 넓은 사막으로 팽개치는 과정에 불과했던 것이다!   
오, 이 땅에 얼마나 엄청난 보물이 감추어져 있는지를 
차라리 몰랐더라면 좋았을 것을!
한 번 사랑하고 나서 영원히 고독해져야 한단 말인가!   
한 번 믿고 나서 영원히 의혹에 빠져야 한단 말인가!   
한 번 빛을보고 나서 영원히 눈이 멀어야 한단 말인가! 
- 이것은 엄연한 고문이다.   
인간이 행하는 모든 여타의 고문실도 이 고문에 비하면 실로 아무것도 아니리라.
이렇듯 나의 생각은 미친 듯 추적을 계속했다.   
그러다가 마침내 모든 것이 잠잠해지고, 
소용돌이치던 잡다한 상념들도 차츰 모아져 자리를 잡았다.   
이러한 안정과 기진의 상태를 아마 반성이라고 부를는지 모른다.   
하지만 그것은 오히려 관찰과 같은 것이다.   
온갖 사념들이 뒤섞이도록 시간을 허용하면,
마침내 그것들은 저절로 영원한 법칙에 따라 결정을 이루는 것이다.   
이같은 과정을 화학자처럼 관찰하노라면, 
여러 요소들이 융합해 하나의 형태를 획득한다.   
그러면 우리는 그것들이, 또한 우리 자신도, 
기대했던 것과는 딴판의 존재임을 보고 흔히 놀라는 것이다.
이같은 망연한 관찰의 상태에서 깨어나 내가 입 밖에 낸 첫마디는
떠나야겠다 는 것이었다.   
그와 동시에 나는 책상 앞에 않아 의사에게 편지를 썼다.   
두 주일 동안 여행을 하겠으니 모든 뒷일을 부탁한다는 내용이었다.   
부모님들께는 곧 적당한 핑계의 말을 찾았다.   
그리고 그날 저녁으로 나는 티롤로 가는 여로에 올랐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