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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라카미 하루키 : 침 묵5

Joyfule 2010. 4. 3. 23:40
 
 무라카미 하루키 : 침  묵5   
앉으나 서나 입시 이야기 밖에 하지 않으니, 
머리가 이상해지는 인간이 하나쯤 생긴다 해도 무리는 아니죠. 
그런데 여름 방학이 끝나고 2학기가 시작되자 
나는 우리 반 분위기가 기묘하게 돌아가고 있다는 것을 
느끼지 않을 수 없었습니다. 
모두들 나를 소원하게 대한 것이었어요. 
무슨일이 있어 주변에 있는 친구들에게 말을 걸어도 
왠지 어색하고 무성의한 대답밖에 돌아오지 않는 것이었습니다. 
처음에는 내가 그렇게 생각해서 그런 것이려니 하고 여겼습니다. 
아니면 전 반적으로 신경이 예민해진 탓이라고만 여기고 
그다지 염두에 두지 않았습니다. 
그런데 2학기가 시작되고 한 닷새쯤 지났을때 담임 선생이 갑자기 나를 불렀습니다. 
방과 후에 교무실로 오라는 것이었어요. 
담임 선생은 나에게 체육관에 다니면서 
복싱을 한다고 들었는데 정말이냐고 물었습니다. 
중학교 2학년 때부터 입니다. 라고 나는 대답했습니다. 
네가 중학교 2학년 때 아오키를 때린 일이 있다고 하는데 
그게 사실이냐고 물었습니다. 
나는 사실이라고 대답했습니다. 거짓말을 할 수는 없으니까요. 
아오키를 때린 것이 복싱을 시작하기 전의 일이냐 
나중의 일이냐 라고 담임이 물었습니다. 
시작한 다음의 일이라고 나는 말했습니다. 
하지만 그때 저는 아직 아무것도 배우지 않은 상태였습니다. 
복싱을 배우기 시작한 첫 석 달 동안은 글러브를 껴보지도 못했습니다 라고 
나는 설명했습니다. 
하지만 담임은 그런 나의 설명은 들은 척도 하지 않았습니다. 
그리고는 네가 마쓰모트를 때린일이 있느냐고 물었습니다. 
나는 깜짝 놀랐습니다. 안 그렇겠습니까. 
아까도 말했지만 나는 마쓰모토라는 남자와는 거의 말도 하지 않았습니다. 
때리다니 그런 일은 있을 수가 없습니다. 
저는 마쓰모토를 때릴 아무런 이유도 없습니다. 라고 나는 말했습니다. 
마쓰모토는 학교에서 누구한텐가 줄곧 얻어맞은 모양이야. 
라고 담임 이 난처한 얼굴로 말했습니다. 
얼굴과 몸에 멍이 들어가지고 오는일이 종종 있었다고 어머니가 그러시더군. 
학교에서. 이학교에서 누군가가 마쓰모토를 때리면서 용돈을 울거낸 거지. 
그런데 마쓰모토는 상대방의 이름을 어머니한테 말하지 않았어. 
그랬다가는 더 얻어맞고 못된 짓을 당할것 같아서였겠지. 
그래서 녀석이 쫓기다 못한 나머지 자살을 한거지. 
가엾게도 아무과도 의논할 수가 없었던거야. 
꽤나 지독하게 얻어맞은 모양이야. 
우리들은 지금 누가 마쓰모토를 때렸는지. 조사를 하고 있는 중이다. 
혹시 마음에 짚이는 학생이 있으면 정직하게 말해주었으면 한다. 
그러면 일이 원만하게 수습될거야. 
그렇지 않으면 경찰이 개입하게 되어있어. 너 그점은 잘 알고 있겠지.
순간 아오키가 관계되어 있을 것이란 직감이 들었습니다.
아오키가 그 마쓰모토라는 남자의 죽음을 실로 멋들어지게 이용한 것이죠. 
그는 거짓말을 한 것은 아니었습니다. 
아오키는 내가 체육관에 다니면서 복싱을 배우고 있다는것을 어디선가 알게된것이죠. 
아무한테도 말하지 않았는데 어떻게 알았는지는 모르겠습니다. 
하지만 아무튼 그는 알고 있었던것이죠. 
그리고 마쓰모토가 죽기 전에 누군가가 그를 때리고 있다는것도 알고 있었던 겁니다. 
그 다음은 간단한 일이죠. 1에다 1을 더하면 되니까요. 
담임 선생한테 내가 복싱을 배우고 있다는것과
과거에 자신이 나한테 맞은 일이 있다는 것을 고하면 그만이니까요. 
물론 적당한 과장도 덧붙였겠죠.
 내가 으름장을 놓아서 지금까지 아무한테도 말하지 못했다느니, 
코피가 엄청 나왔다느니,그런 정도의 말은 했을것이라고 생각합니다. 
그러나 나중에 금방 들통이 날 단순한 거짓말은 하지 않았을 겁니다. 
그런 점에서는 아주 용의주도한 인간이니까요. 
그는 단순한 사실 하나하나에 교묘하게 덧칠을 하여 
최종적으로는 부정할 수 없는 공기 같은 것을 거기에 형성해 놓았던 것입니다. 
나는 그의 그런 수법을 눈으로 보는듯한 기분이었습니다. 
담임 선생은 나를 용의자로 지목하고 있는 모양이었습니다. 
그들은 체육관에 다니고 복싱을 배우는 인간은 
많든 적든 불량기가 있다고 단정짓습니다. 
게다가 나는 원래가 선생들한테 귀여움을 받는 타입의 학생은 아니었습니다. 
그로부터 사흘 후에 경찰의 소환을 받았습니다. 
말할 필요도 없지만 상당한 충격이었습니다. 
아무런 근거도 없는 일이었으니까요. 
증거도 전혀없는, 단순한 소문이었습니다. 
정말 슬프고 분했어요. 아무도 내 말을 믿어주지 않았으니까요. 
공정하지 않으면 안될 선생마저 나를 두둔해 주지않았습니다. 
경찰에서는 간단한 조사를 받았습니다. 
나는 마쓰모토와 거의 말도 한 적이 없다고 설명했습니다. 
분명 나는 4년 전 아오키라는 학생을 때렸다. 
하지만 그것은 흔히 있을 수 있는 싸움이었지 
그 다음에는 아무런 문제도 생기지 않았다고. 그뿐입니다. 
자네가 마쓰모토군을 때렸다는 소문이 있던데, 라고 담당 경관은 말했습니다. 
나는 그것은 거짓말입니다. 라고 말했습니다.
누군가가 고의로 그런 헛소문을 퍼뜨리고 있습니다. 라고. 
경찰도 그 이상은 어떻게 할 수 없었습니다. 증거가 없었으니까요. 
그저 소문에 불과한 것이었으니까요. 
하지만 내가 경찰에 불려갔다는 사실은 온 학교에 퍼졌습니다. 
비밀리에 진행된 일이었는데, 누설된 것이죠. 
그리고 그 일로 나를 보는 모두의 시선이 결정적으로 일그러져버린 듯하였습니다. 
경찰에 불려간 데는 그럴 만한 이유가 있을 것이라고 모두들 믿어버린 것이지요. 
모두들 내가 마쓰모토를 때린 인간이라고 믿고 있는것 같았습니다. 
아오키가 어떤 그럴싸한 말을 퍼뜨렸는지, 반에 어떤 여론이 형성되어 있었는지, 
그것은 알 수 없습니다. 나로서는 알고 싶지도 않았어요. 
하지만 그것은 틀림없이 혹독한 내용일 것이라고 나는 생각하였습니다. 
어찌되었든 우리 반 아이들 그 누구도 나에게 말을 걸지 않았습니다. 
마치 서로 입을 맞춘듯-실제로 의논을 했겠죠-아무도 얘기해 주지 않았습니다. 
도저히 묻지 않으면 안될 일이 있어 말을 걸어도 대답은 돌아오지 않았습니다. 
그때껏 사이좋게 지내던 친구들도 내게 접근하지 않았습니다. 
모두들 내가 전염병 환자라도 되는 것처럼 피하였습니다. 
나라는 인간이 존재한다는 그 자체를 깨끗이 무시하려 한것이죠. 
학생뿐만이 아닙니다.
선생도 나와는 가능하면 얼굴을 마주하지 않으려 하였습니다. 
물론 출석을 부를 때는 내 이름을 불렀습니다. 하지만 그 뿐이었어요. 
그들은 절대로 나를 지명하지 않았습니다. 
가장 지독한 것은 체육 시간이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