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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라카미 하루키 : 침 묵4

Joyfule 2010. 4. 2. 19:12
 
 무라카미 하루키 : 침  묵4  
신학기가 되자 아오키와 나는 다른 반으로 갈라졌습니다. 나는 안도하였죠. 
매일 교실에서 그와 얼굴을 마주하지 않아도 된다는 것만으로 
나는 참 다행스러웠습니다. 
아오키 역시 마찬가지였을 겁니다. 
그리고 이대로 저 찜찜한 기억도 영원히 멀어지리라고 생각했습니다. 
하지만 만사가 그렇게 단순하지는 않죠. 
아오키는 내게 복수의 칼을 갈며 때를 기다리고 있었던 것입니다. 
자존심 센 사람이 흔히 그러하듯 아오키는 복수심이 강한 남자였습니다. 
그는 자신이 받은 모욕을 그렇게 쉽사리 잊어버리는 인간이 아니었던 것이죠. 
그는 내 발목을 잡을 수 있는 결정적인 기회를 줄곧 노리고 있었던 겁니다. 
나와 아오키는 같은 고등학교로 진학했습니다. 
우리들이 다니던 학교는 중고등학교가 같이 있는 사립학교였습니다. 
해마다 반이 바뀌었는데 다행히 아오키와는 내내 다른 반이었습니다. 
그런데 끝내 마지막 3학년 때 그와 같은 반이 되고 말았습니다.
교실에서 그와 얼굴이 마주쳤을때 아주 느낌이 불쾌했습니다. 
또 그의 눈초리도 영 마음에 들지 않았습니다. 
저 위 속에 무겁게 똬리를 틀고 있던 묵직한 느낌이 되살아났습니다. 
불길한 예감 말이죠." 
오사와 씨는 거기서 입을 다물고 눈앞에 있는 커피 잔을 물끄러미 바라보았다. 
그러다 얼굴을 들고 희미한 미소를 띠고는 내 얼굴을 보았다. 
창 밖으로 제트기의 굉음이 들렸다. 
보잉 737기 쐐기처럼 구름 속을 
일직선으로 파고 들어갔다가,그대로 시야에서 사라졌다. 
오사와 씨가 말을 이었다.
"1학기는 별탈없이 평온무사하게 지나갔습니다. 
아오키 쪽도 별다른 움직임을 보이지 않았습니다. 
그는 중학교 2학년 때부터 거의 아무것도 변하지 않았습니다. 
어떤 종류의 인간은 성장도 퇴보도 하지 않는 모양입니다. 
똑같은 일을 똑같은 방식으로 반복할 따름이죠. 
아오키의 성적은 여전히 톱 클래스였습니다. 
인기도 여전히 좋았습니다. 
그 남자는 세상을 살아가는 처세술 같은것을 이미 10대에 터득했죠. 
아마 지금도 똑같은 식으로 살고 있을 겁니다. 
아무튼 우리는 가능한 한 눈길이 마주치지 않도록 주의 했습니다. 
한 교실안에 관계가 어색한 사람이 있다는 것은 그다지 기분 좋은 일은 아닙니다. 
그러나 어쩔 수 없죠. 
나에게도 어느 정도 책임은 있으니. 드디어 여름 방학이 왔습니다. 
고교 시절의 마지막 여름 방학이었습니다. 
나는 그런대로 성적도 괜찮았고 이리저리 고르지만 않는다면 
어디 적당한 대학에 들어갈 수 있으리라 
생각하고 있었기 때문에 입시 공부는 하지 않았습니다. 
학교 수업을 매일 혼자서 예습 복습하는 정도였습니다. 
그것으로 충분했죠. 부모님도 잔소리는 하지 않았습니다. 
토요일과 일요일에는 체육관에 가서 연습을 하고 
나머지 시간에는 읽고 싶은 책을 읽고 레코드를 듣고 그렇게 지냈습니다. 
그러나 다른 학생들은 눈에 불을 켜고 입시에 매달렸습니다. 
내가 다닌 학교는 중고 일관 교육을 하는 소위 명문교 였습니다. 
어느 대학에 몇명이 들어갔다느니, 
어느 대학의 입학자 수가 몇 위였다느니 하는 것들에 
선생들이 울고 웃는 그런 학교 말입니다. 
학생들 도 3학년이 되면 온통 입시밖에 염두에 없어, 
교실 분위기도 팽팽하게 긴장되었습니다. 
나는 그 학교의 그런 점이 별로 마음에 들지 않았습니다. 
들어갈 때부터 좋아하지 않았고 6년을 다녔는데도 끝내 좋아지지 않았습니다. 
마음을 털어놓고 얘기할 수 있는 학교 친구는 끝내 한 명도 생기지 않았습니다. 
내가 고등학교 시절에 그나마 사귀었다고 하는 상대는 체육관에서 
만나는 사람들뿐이었습니다. 
대부분 나보다 나이가 많고 또 이미 직장 생활을 하고 있는 사람들이었는데, 
그들과는 허물없이 지낼 수 있었습니다. 
연습이 끝나면 함께 맥주를 마시기도 하면서 많은 이야기를 나누었습니다. 
그들은 우리반 남자들과는 전혀 종류가 달랐고, 
하는 얘기들도 내 가 보통 교실에서 하는 내용들과는 전혀 달랐습니다. 
하지만 나는 그들과 함께 있는 편이 훨씬 편했습니다. 
그리고 그들로부터 여러가지 중요한것들을 배웠습니다. 
만약 내가 복싱을 하지 않았다면, 그 숙부의 체육관에 다니지 않았다면 
난 참 고독하였으리라고 생각합니다. 
그런 상상을 하면 지금도 소름이 끼칩니다.
여름 방학이 한참인데 사건이 하나 생겼습니다. 
같은 반 학생 한명이 자살을 했어요. 
마쓰모토라는 이름의 남자였습니다.
마쓰모토는 별로 눈에 띄지 않는 학생이었죠. 
솔직하게 말하면 눈에 띄지 않는다기 보다 차라리 
존재감이 없었다는 표현이 적절한 남자였습니다. 
죽었다는 소식을 들었을때 그의 얼굴이 어떻게 생겼는지 
정확하게 떠오르지 않았을 정도였으니까요. 
같은 반인데도 나는 그와 아마 두세 번 밖에는 이야기를 나눈적이 없었을 겁니다. 
홀쭉하고 안색도 별로 좋지 않은 친구였다는 정도밖에 기억나지 않았습니다. 
그가 죽은것은 8월10며칠 경이었습니다. 
종전 기념일과 장례식이 같은 날이어서 기억하고 있죠. 
무지무지하게 더운 날이었어요. 
집으로 전화가 걸려와 그 친구가 죽었다는 것을 알았죠. 
전원 장례식에 참가하니 오라는 것이었습니다. 
우리반 전원이 장례식에 참석했습니다. 
지하철에 뛰어들어 죽었어요. 원인은 밝혀지지 않았습니다. 
유서 비슷한 것을 남기기는 했는데, 거기에는 딱 한마디, 
이제 더이상 학교에 가고 싶지 않다는 말밖에 쓰여 있지 않았습니다. 
왜 학교에 가고싶지 않은지, 자세한 이유는 하나도 쓰여 있지 않았죠. 
적어도 그런 이야기였습니다. 
당연한 일이지만 학교측은 신경을 바짝 곤두세웠습니다. 
장례식이 끝난 후, 전교생이 학교에 집합한 가운데, 교장이 설교를 했습니다. 
마쓰모토 군의 죽음을 애도해 마지않는다는둥, 
그의 죽음의 무게를 우리들 전원이 마음에 깊이 새기지 않으면 안된다는둥, 
이 슬픔을 극복하고 전원이 한층 학업에 정진해야 한다는 둥...... 
그런 유의 이야기였습니다. 그런 후 우리 반만 교실에 모였습니다. 
교무 주임과 담임 선생이 앞에 서서, 만약 마쓰모토 군의 죽음에 
어떤 특별한 원인이 있다면 
우리들이 그것을 분명하게 밝혀야 한다고 말했습니다. 
그러니까 만약 이 반에서 그가 자살한 원인에 짐작가는 바가 있는 학생은 
정직하게 말해 주었으면 좋겠다고. 
우리 모두는 잠자코 누구하나 입을 열지 않았습니다. 
나는 그런 일에는 별 신경을 쓰지 않았습니다. 
물론 죽은 친구는 정말 안됐다 싶었습니다. 
그렇게 처참하게 죽을 것까지야 없지 않은가, 
학교가 싫으면 다니지 않으면 될 일이고, 
더구나 앞으로 반년이면 억지로라도 학교를 졸업하지 않으면 안 되는데.
그런데 왜 애써 죽음을 선택하지 않으면 안 되었는지, 나는 잘 이해가 안 갔습니다. 
무슨 노이로제 증상이라도 있었던 모양이라고 생각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