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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씨남정기 - 김만중.13.

Joyfule 2010. 1. 22. 08:47

 

 

    사씨남정기 - 김만중.13.  


 

사씨의 아우는 자기 누님의 고집을 알고 집으로 돌아가

노복 한 사람과 시비 두 사람을 보내서 사씨 신변을 보살피게 하였다.

사씨는 아우의 정의에 고마운 눈물을 흘리면서,
"우리 친가에 본디 노복이 적은데 어찌 여러 비복을 내가 거느리겠는가?"
하고 노복 한 사람만 두어서 외부와의 연락하는 데 쓰고 시비들은 도로 친정으로 보내었다.

이 묘지가 있는 근처에는 유씨 종중과 노복들이 많이 살고 있었으므로

사씨가 시부 묘하에 묘막을 짓고 살게 된 사실에 동정과 감격을 하고

모두 위로하여 쌀과 야채를 끊임없이 공급하여 주었다.

그러나 사씨는 그런 친척과 노복들의 신세만 지는 것이 송구하여서

되도록 사양하고 바느질과 길쌈을 하여 근근이 연명하며 외로운 세월을 보내고 있었다.
이때 사씨를 태우고 갔던 가마꾼들이 유한림 댁으로 돌아와서

사씨가 유한림의 부친 묘소 밑으로 가서 거처를 삼으련다는 소식을 전하였다.

교씨는 그 소식을 듣고 사씨가 신성현의 제 친정으로 가지 않고

유씨 묘소로 간 것은 유씨 가문에서 축출한 명령을 거역하는

방자스러운 소행이라고 분하게 생각하고 유한림에게 그 부당함을 주장하였다.


"사씨는 누명으로 조상께 죄진 몸인데 어찌 감히 유씨 묘하에 있을 수 있습니까?

빨리 거기서 쫓아 버려야 합니다."

 

유한림이 침울한 마음으로 더 염두에 두지 않으려고,
"이미 우리 집에서 쫓아 버렸으니 제가 어디 가서 살든 죽든 상관할 것 없지 않소.

하물며 산소 부근에는 다른 사람들도 많이 사는데

그만 금할 수도 없으니 모른 척하고 잊어버립시다."
교씨는 더 주장은 못하였으나 속으로 못마땅하게 여겼다.

그러다 하루는 동청에게 의논하자 동청이 후환을 염려하고,
"사씨가 제 친정으로 가지 않고 유씨 묘하에 머물러 있는 것은

큰 뜻을 품고 행동으로 앞으로 옥지환 행방 등

우리 계교를 발명하고 복수하려는 저의가 분명하고

제가 유가의 자부로 자처하면서 후일을 도모하려는 것이 아니겠소.

더구나 그 근처에 있는 유씨 종중의 인심을 사려는 간교가 또한 분명하오.

그뿐 아니라 한림이 춘추로 성묘를 다니시다가

그 처량한 모양을 보시면 철석간장이라도 옛날 정의를 생각하고

마음이 다시 어떻게 동요할지 모르니 마음이 놓이지 않습니다."


"그러면 곧 사람을 보내서 암살해 버릴까?"
교씨가 성급하게 최악의 수단을 말하였다.
"그것은 도리어 평지풍파를 일으킬 염려가 있으니 안 됩니다.

지금 갑자기 죽이면 역시 가엾게 여기는 마음이

남아 있는 한림이 우선 의심합니다.

나한테 한 가지 계획이 있는데 그것은 냉진이 아직 가속이 없고

그전부터 사씨를 흠모해 왔으니 그에게 사씨를 속여서 꼬여다가 첩을 삼게 하면

나중에 한림이 듣더라도 변절해 버린 여자라 여기고 아주 잊어버릴 것입니다."
"호호호 그렇게만 되면 냉진에게도 좋은 일이지만 잘 될 수 있을까?"
"냉진의 수단으로는 되고말고요.

사씨가 유씨 묘하에 뿌리를 박고 있으려는 계획은

아까 말한 것 외에도 장차 두부인이 오는 것을 기다려서

그 힘을 빌려서 한림과 인연을 다시 맺으려는 계획입니다.

사씨가 두부인을 하늘같이 믿고 있으니

이제 두부인의 편지를 위조하여 장사로 인부를 차려 오라면

반드시 그대로 할 것이니, 도중에서 냉진이 데려다가 겁탈하여

첩으로 삼으면 사씨가 아무리 절개를 지키려 하더라도

연약한 몸으로는 욕을 당하고 단념하게 될 것이니

이것이 소위 독 속에 든 쥐라, 별수 없을 것입니다."


교씨는 간부(間夫) 동청의 계략을 듣고 여간 반가워하지 않았다.
"당신의 계교는 정말로 신출귀몰하니 와룡선생의 후신인가 보구려."
동청은 몰래 냉진을 불러서 그 계교를 일러주었다.

냉진은 총각인데다가 사씨의 높은 평판을 알고 있었으므로

기뻐하면서 두부인의 필적을 청하였다.

동청이 염려 말라 한 뒤에 교씨에게 그것을 구하게 해서 냉진에게 주었다.

냉진은 그 두부인의 필법을 모방한 똑같은 글씨로 사씨에게 서울로 오라는 사연을 썼다.

즉 유한림의 무상한 태도를 탄식하고, 당분간 서울로 와서 함께 지내다가

사가(謝家)로 복귀할 시기를 기다리라는 편지를 보냈다.

그리고 교자와 인마를 차려서 보내니 곧 타고 오라는 재촉이었다.

냉진은 이러한 두부인의 편지를 교묘하게 위조한 뒤에 교자와 말을 세내고

가마꾼 등의 인부 십여 명을 매수하여 보내면서

사씨에게 장사에서 온 것같이 잘 행동하라고 교사하였다.
냉진은 사씨를 유괴할 인부들을 보낸 뒤에

집으로 돌아가서 화촉을 갖추고 사씨가 유괴되어 오기를 기다렸다.


하루는 사부인이 창가에서 베를 짜고 있을 때 문 밖에서 부르는 소리가 문득 들렸다.
"문안드립니다. 이 댁이 유한림 부인 사소저 계신 댁입니까?"
노복이 나가서 그렇다 하고 어디서 무슨 일로 왔느냐고 물었다.
"서울 두총관 댁에서 왔소."
"두총관이 마님을 모시고 임지로 가셨고

그 후로 그 댁이 비었는데 누구의 명으로 왔소?"
"아직 두총관 댁 소식을 모르는군.

우리 주인께서 장사총관으로 계시다가 나라에서 한림으로 제수하시고

조정의 내관으로 부르셨으므로 마님께서 먼저 상경하시고

사씨 부인께서 여기서 고생하신다는 소식을 들으시고

놀라서 우리를 보내어 문후하라고 편지를 가지고 왔소."
하고 찾아온 전갈꾼이 사씨 부인의 노복에게 편지를 전하였다.

노복이 안으로 들어가서 그대로 사씨 부인에게 알렸다.

사씨 부인이 그 편지를 받아서 봉을 떼어 본즉

그 사연은 이별한 후로 염려하던 말로 위로하고

아들의 벼슬이 승진하여 곧 임지를 떠나서 상경하리라는 것과

그에 앞서서 자기가 먼저 상경하여 있다는 사연이었다.

그리고 또 유한림의 오해로 쫓겨나서 산중 산소 밑에서 고생하다가

강포한 무리의 침노를 당할까 두려우니

당분간 자기 집으로 와서 있으면 모든 것이 좋지 않을까 생각하며

만일 이런 자기 뜻에 찬성하면 곧 교자를 보낸다는 내용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