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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씨남정기 - 김만중.14

Joyfule 2010. 1. 23. 09:48

 

 

    사씨남정기 - 김만중.14  

 

 

이 두부인의 편지를 본 사씨 부인은 두부인이 장사에서

아들의 내관 전직으로 먼저 상경한 것을 기뻐하고

곧 두부인한테로 가겠다는 답장을 써서 전갈 온 사람에게 주어 돌려보냈다.

그리고 그날 밤에 혼자 앉아서 곰곰이 생각하되,
'이곳이 비록 산골짝이지만 선산을 바라보며 마음을 위로해왔었는데

이제 이곳도 떠나게 되니 서울 두부인 댁으로 가면

몸은 편할지라도 마음은 더욱 허전할 터이니 내 신세가 처량하다.'


그런 생각중에 홀연히 잠이 와서 조는데 비몽사몽간에 전에 부리던 시비가 와서

시아버님 유공께서 부르신다고 말하면서 자기를 청하였다.

사씨 부인이 곧 시비의 뒤를 따라서 어느 곳에 이르니 시비 수명이 나와서 맞아들였다.

사씨 부인이 시아버님의 침전에 이르러서 보니 완연히 그전 시아버님의 생시 모습이었다.

 

사부인이 반가워서 흐느껴 울었다.

유공이 가깝게 끌어서 슬하에 앉히고 무애하여 위로하고,
"어리석은 아이가 참언을 듣고 너 같은 현부를 내쫓아서 고생을 시키니 내 마음이 아프다.

그러나 오늘 불러가겠다는 두부인의 편지가 진짜가 아니니 속지 말라.

네가 그 글씨의 자획을 다시 자세히 보면 위조편지임을 알 것이니 결코 속지 말라.

그리고 내가 세상을 이별한 뒤로 너를 다시 보지 못하였으니 어찌 슬프지 않으랴.

눈을 들어서 나를 다시 봐라.

비록 유명의 세계가 다르나 자부가 아이와 함께

사당에 분향하고 잔을 올리더니 지금 와서는 천첩이던

간악한 교씨가 제사를 받들매 내 어찌 흠향하겠는가.

이런 해괴하고 슬픈 일이 어디 있으랴.

현부가 집을 떠난 후에 이곳에 와 있으니

나도 너의 정성을 기쁘게 여기고 의지하여 왔는데

네가 이제 멀리 떠나가면 또한 외로워서 어찌하랴."


사부인이 시부 유공에게 울면서 대답하되,
"두부인께서 부르시더라도 어찌 묘하를 떠나겠습니까?"
"정말로 두부인 옆으로 간다면 나도 말릴 생각은 없다마는 그 편지가 위조물이요

그렇다고 여기 오래 있으면 또 박해가 있을 것이다.

더구나 자부에겐 칠 년 재액의 운수이니 마땅히 남방으로 멀리 피신하는 것이 좋다.

그것도 지금 박해가 급하니 빨리 피신하라."
"외롭고 약한 여자의 몸으로 어찌 칠 년 동안이나 사고무친한 타향을 유리하겠습니까?

앞으로 겪을 길흉을 가르쳐 주십시오."
"그 천수를 낸들 어찌 알겠느냐?

다만 내가 일러두거니와 지금으로부터 육 년 후의 사월 십오일에

배를 백빈주에 매어 두었다가 급한 사람을 구해 주어라.

이 말을 명심불망하였다가 꼭 그래야만 네 운수가 대통한다."
"분부대로 하겠습니다. 그러나 이제 이곳을 떠나면 언제 또다시 뵙겠습니까?"
하고 흐느껴 울었다.

 

그 잠꼬대의 울음에 놀란 유모와 노복이 몸을 흔들기로

사씨 부인이 놀라서 눈을 뜨니 꿈결이었다.

사씨 부인이 그 신기한 꿈 이야기를 한즉

유모와 노복도 신기하게 여기고 소홀히 여길 꿈이 아니라고 아뢰었다.

사부인이 꿈에서 가르친 대로 두부인이 보냈다는 편지를 꺼내서

글씨의 자획을 자세히 살피면서,
"두총관이 홍(洪)자를 은위하는데 두부인 편지라면 어찌 홍자를 썼을까?

아무리 필적을 비슷하게 흉내냈어도 이것만으로도 위조가 분명하다.

도대체 어떤 자가 이렇게까지 악랄한 수단으로 나를 모해하려는가."
하고 흉흉한 의심으로 잠을 이루지 못하던 중에 어느덧 날이 훤히 밝기 시작하였다.

사씨가 유모에게 은근히,
"어젯밤 꿈에 시부님의 영혼이 분명히 남방으로 가라고 가르쳐 주셨는데

마침 장사가 남방이라 두부인이 가실 때에 수로 수천 리라 하시더니

이제 시부님 영혼이 남방으로 피신하라신 것은

필경 장사로 두부인을 찾아가서 의탁하라는 뜻이니 어찌 빨리 떠나지 않으랴."
하고 떠날 준비를 하였으나 배를 얻지 못하여 초조하게 배편을 기다리게 되었다.


이때에 노복이 안으로 달려들어오면서

서울 두부인으로부터 교자가 와서 사부인을 맞아 가려고 하니 어찌하랴고 물었다.
"내 어젯밤에 찬바람에 촉상하여 일어나지 못하니

몸이 나으면 수일 후에 갈 테니 교자를 가지고 온 하인들을 보내라."
라고 노복에게 전갈시켰다.

그래서 냉진이 유괴하려고 보낸 인부들은 어리둥절하였으나 하는 수 없이 돌아갔다.

냉진은 그 경과를 동청에게 보고하고 앞으로 취할 방법을 의논하였다.
"사씨는 본래 지혜가 있는 여자라 두부인의 초청을 의심하고

칭병으로 거절하였을 것이리라. 이러다가 만일

두부인의 편지를 위조하여 유괴하려던 계략이 탄로나면 화를 면하지 못할 것이다."


동청도 당황해서 실패를 자인하였다.

그러나 냉진은 아직도 실망하지 않고 강경한 방법을 취하고자 하였다.
"기왕 내친 걸음이니 힘으로 해치웁시다."
"무슨 방법이냐?"
"힘센 사람 십여 명과 교꾼을 데리고 산소 근처에 가서 잠복하였다가

밤이 되거든 사씨를 납치해 오는 것이 좋을까 하오."
"그 방법으로 빨리 실행하라.

그 여자가 우리 눈치를 알고 도망칠지도 모르니까

빨리 납치해다가 네 계집으로 삼아라."
냉진은 동청의 동의를 얻자 곧 강도 수십 명을 인솔하고 사씨를 납치하려고 달려갔다.


이때 사씨는 남방으로 가는 선편을 얻지 못하고 초조하게 기다리다가

마침내 남경으로 가는 장삿배를 발견하고

노복과 함께 달려가서 태워 주기를 간청하였다.

천만다행으로 그 장사꾼이 일찍이 두부인 댁에서 사씨 부인을 본 일이 있었으므로

사씨 부인의 곤경을 동정하고 잘 태워다 줄 것을 약속하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