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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씨남정기 - 김만중.25

Joyfule 2010. 2. 5. 09:13

 

    사씨남정기 - 김만중.25  

 

 

수월암에 이르러서 묘혜가 객당을 소제하고 유한림을 맞아들이고 차를 대접할 때

사씨를 모시던 유모와 시녀가 유한림을 뵈옵고

일희일비의 주종(主從)의 회포를 금하지 못하였다.

유한림이 부인을 보고 말하기를,
"이제 호구의 환은 벗어났으나 의지할 곳이 없고

가업이 황폐하였으니 무창으로 가서 약간의 전량을 수습하여

앞일을 정한 후에 서울로 올라가서 가묘를 모시고

전죄(前罪)를 사코자 하니 부인이 나를 버리지 않으면 동행하기 바라오."
"한림께서 저를 더럽다 하시지 않으시면 제가 어찌 역명하겠습니까.

제가 선산을 떠날 적에 친척을 모아서 가묘를 개축하였습니다.

그런데 제가 이제 댁으로 돌아가는 것이 어떨까 합니다.

제가 옛일을 죄로 생각한 것은 없으나 사람을 대하기가 부끄러워서 그럽니다.

출거지인이 다시 입승하는데 예절이 있어야 하지 않을까 합니다."
"아, 내가 너무 급하게 생각한 모양이오.

내가 먼저 가서 묘를 모셔오고 다시 소식을 수소문한 후에 예를 갖추어서 데려 가리다."
"그는 그러하오나 한림의 외로운 몸이

또 도적의 무리를 만나시면 위태하니 조심하여 가십시오.

동청이 폭도를 보내어 잡지 못하였으므로 필연 다시 잡아 죽이려고 할 것이 분명하니

한림은 성명을 바꾸고 변복으로 가십시오."
유한림이 사씨 부인의 염려가 옳다 하고 혼자 떠나서

여러 날만에 고향땅 무창에 이르러서 약간의 재산을 수습하고

선산을 수축하고 노복을 시켜서 농업을 경영하도록 지시하였다.

 

한편 동청은 교녀를 데리고 계림태수로 도임해 가다가 악양루 부근에서

유한림이 은사를 받고 귀양이 풀려서 행주에서 돌아온다는 소식을 듣고 깜짝 놀라서

장정 수십 명을 급히 보내어 목을 베려고 하였으나

실패로 돌아가자 교씨와 함께 당황해서 어쩔 줄을 몰랐다.
"유연수가 무사히 서울로 가면 우리 죄상을 황제께 아뢰고

원한을 풀 것이니 어찌 방심하겠소?"
하고 심복부하의 관졸들에게 유연수를 극력 수색하여 잡으라고 엄명하였다.

그리고 사씨 학대에 공모하던 냉진도 의지할 곳이 없어서

생각한 끝에 큰 벼슬을 한 동청을 찾아서 도움을 청하자,

동청이 환대하고 심복을 삼고 그의 간교로 갖은 악행을 하여

백성을 가렴주구하고 왕래하는 행인을 유인하여 독주를 먹여 죽이고 재물을 약탈하였다.

 

이리하여 남방의 사람들은 모두 동청의 학정을 저주하고

그의 고기를 씹으려고 민심이 흉흉해졌다.

교씨는 계림에 간 지 얼마 되지 않아서 데리고 온 아들

봉추가 병들어 죽었으므로 역시 어미의 정으로 번민하였다.
큰 고을 계림에는 자연 관사가 많아서 분망하였다.

따라서 동청이 자주 관하 소현에 순행하여 집을 비우는 날이 많았다.

그리하여 동청이 본아에 없는 동안은 불량배 냉진이 내외사를 다스리게 되어

세도를 부리는 한편 요부 교씨는 동청의 눈을 속이고 냉진과 간통하고 추태를 재연했다.

마치 유한림 집에서 유한림의 눈을 속이고

동청과 간통하던 버릇을 그대로 되풀이하였던 것이다.


동청은 자기의 지위와 재산을 더 얻으려는 수단으로

계림 지방 백성의 재물을 수탈하여 십만보화를 엄승상에게 뇌물로 바치려고

그의 생일축하 선물 명목으로 냉진에게 전달시켜 보냈다.

그런데 냉진이 서울에 와서 보니 이미 엄승상의 세도가 무너진 때였다.

황제도 그의 간악함을 깨닫고 관직을 삭탈하고 가산을 압수하는 소동 중이었다.

냉진은 깜짝 놀라서 그 화가 자기에게도 미칠 것을 두려워하였다.

자기의 보호자요 공모자인 동청의 죄악이 많은 사실은 세상이 다 알고 있었으나

그의 배후에는 엄승상의 세도가 두려워서 감히 말하지 못하였던 것이다.

언제나 제 욕심에서 남을 이용만 하고 의리라고는 추호도 없는 냉진은

자기가 살아날 계교로 동청을 숙청시키는 공을 세우려고

등문고(登聞鼓)를 울려서 법관에게 민정을 호소하였다.

 

법관이 무슨 소송이냐고 묻자 냉진은 천연스러운 우국양민의 열변으로 진술하였다.
"저는 북방 사람으로서 남방에 다니러 갔다 왔습니다.

계림 지방에서는 태수 동청이 불인무의하여 학정을 일삼을 뿐 아니라

하늘을 속이고 무소불위하여 행인을 겁박하여 재물을 탈취하는 등 열두 죄목을 아룁니다."
법관이 냉진의 진술대로 황제에게 아뢰자 황제께서 대로하고

금오관을 파견하여 동청을 잡아 가두라고 분부하고

따로 순찰관을 보내서 민정을 조사한즉 냉진이 고발한 사실과

조금도 틀리지 않는 학정을 일삼고 있는 사실이 증명되었다.

조정에는 이미 동청의 죄를 비호해 줄 엄승상이 숙청되었으므로 그를 구해 줄 사람은 없었다.

간악한 동청이 아무리 간신의 세도를 믿고 갖은 악행으로 재물을

구산같이 쌓고 살기를 원하였지만 어찌 불의의 뜻대로 되리오.

그는 속절없이 잡혀 와서 장안 네거리에서 요참의 형을 받았으며

백성에게 도적질한 재산을 몰수한 황금이 사만 냥이요,

그밖의 재물은 헤아릴 수 없을 정도로 사람들을 놀라게 하였다.


냉진은 동청을 배반한 덕으로 제 죄를 면하였을 뿐 아니라,

동청이 엄승상에게 보내던 뇌물 십만 냥을 고스란히 착복하게 되었다.

그리고 동청의 덕을 볼 때에 간통하던 교녀를 데리고 당당한 부부행세로 살게 되었다.

그러나 역시 서울에서 살기에는 뒤가 켕겨서 멀리 산동으로 피해 갔다.

산동으로 가는 도중에 어떤 여관에서 탕남음녀는 술에 만취하여 정신없이 자고 있었다.

그들을 태우고 가던 차부 성대관이란 놈이 본디 도적놈이었으므로

냉진의 행장에 큰 돈 냄새를 맡고 기회를 노리고 있다가,

그날밤에 냉진의 재물을 송두리째 훔쳐 가지고 도망해 버렸다.

냉진과 교녀는 함께 잠을 깬 후 도적맞은 것을 알고 애고하고 한탄할 따름이었다.


이때 황제가 조회를 받고 각 읍 수령의 불치를 탐문하시는 중

동청의 죄상 보고를 듣고 통탄하시며,
"이런 도적을 누가 그런 벼슬에 천거하였는고?"
"엄승상의 천거로 진유현령에서 계림태수로 승진시켰던 것입니다."
하고 승상 석가뇌가 보고해 올렸다.
"그렇다면 이 한가지로 미루어 보면 엄승상이 천거한 자는 모두 소인이요,

그가 배격하던 자는 모두 어진 사람임을 가히 알 수 있다."
하시고

엄승상의 잔당은 모두 벼슬을 삭탈하고 엄승상의 질시로 몰려서

귀양갔거나 좌천되었던 신료를 다시 초용하여 관기를 일신하였다.

이번의 큰 인사이동으로 가의대부 호연세로 도어사를 삼으시고

한림학사 유연수로 이부시랑을 삼으시고 또 과거를 실시하여 인재를 천하에 구하셨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