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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씨남정기 - 김만중.26

Joyfule 2010. 2. 6. 09:03

 


 

     사씨남정기 - 김만중.26  

 

 

이때 외해랑이 급제하여 문벌의 영화를 보전하였으니

그는 유한림의 부인 사씨의 남동생이었다.

사씨 부인이 두부인을 찾아서 남방의 장사로 향할 때

두총관은 이미 이직하고 서울로 돌아갈 때에 두부인도 함께 상경하였다.

사공자는 서울에서 그런 줄도 모르고

또 누님이 장사로 가다가 중간에서 낭패한 사실도 전혀 모르고

배를 얻어 타고 장사로 가려던 참에

서울의 조보를 보고 두총관이 순천부사로 영전된 것을 알았다.

마침 과거 시행의 시일이 멀지 않아 있게 되었으므로

두부인이 상경하기를 기다리며 과거 공부를 하다가 다행히 과거에 급제하였다.

그때 마침 순천부사로 승진된 두총관이 부임준비차 상경하였다.

사공자는 곧 누님의 소식을 물었으나 무사는 소식을 모른다고 눈물을 머금고 슬퍼하였다.
사공자는 누님이 장사로 가다가 중도에서 낭패하고 진퇴유곡하여

마침내 물에 빠져 죽었다는 소문을 듣고 그 누님 소식을 알려고

물가에 가서 두루 찾았으나 생사를 모른다는 소식을 두부인께 보고하였다.

 

"그때 그곳의 어떤 사람 말로는 어느 해 유한림이 그곳에 와서

사부인이 물에 빠져 죽었다는 필적을 보고 슬퍼하고 제문을 지어

제사를 지내려고 하다가 그날 밤에 도적에게 쫓겨서 어디로 간지 모른다고 합니다.

그러나 이제 조정에서 유한림을 다시 벼슬에 영전시키려고 찾으나

아무도 알지 못한다 하오니 기쁨이 도리어 더욱 슬픔이옵니다."
"그렇다면 한림은 살지 못하였을 듯하다."
하고 두부인이 여러 사람을 보내서 사방으로 탐문하자

유한림은 아직 죽지 않았다는 말이 더 많다는 보고였다.

이에 용기를 얻은 사공자가 행장을 차리고 악양루 근처의 강가에 이르러서

극진히 누님과 유한림의 행방을 찾았다.

그러나 역시 행방이 묘연하여 알 길이 없었다.

그래서 일단 단념은 하였으나 남양 지경이 장사와 멀지 않으니

도임한 후에 찾으려고 생각하였다.
이때에 유한림은 이름을 고치고 모든 행동을 취하였으므로 그의 신분을 알 사람이 없었다. 

 

그리고 유한림은 고향에서 비복에게 농사를 열심히 짓게 하고

그 수확의 일부를 군산사로 사씨 부인에게 보내고

소식을 알아오라고 일러 보내었더니 다녀온 동자가 돌아와서,
"부인께서는 무사하십니다. 그런데 약주관아에서 방을 붙이고 한림을 찾고 있습니다.

그 연고를 물어 보았더니 황제께서 한림을 초용하셔서 이부시랑을 제수하시고

사신을 적소 행주로 보내서 찾았으나 벌써 은사를 입고 돌아가셨으나

종적을 몰라서 각처에 방을 붙이고 한림을 찾는 중이라 합니다.

그래서 소복은 감격하였으나 한림 허락을 받지 못하였으므로

관원에게 고하지 못하고 빨리 소식을 알려드리려고 달려왔습니다."


유한림은 동자의 이 소식을 듣고 속으로 생각하였다.
'엄승상이 천권하면 내 어찌 이부시랑에 초용되리오.

내가 초용되었다면 엄승상이 쫓겨난 모양이구나.'
하고 무창으로 나가서 관청에 복명하자 관원이 크게 놀라서 급히 맞아 당상으로 인도하면서,
"황제께서 선생을 이부시랑으로 제수하시고

소명이 미급하시온데 이제 어디로부터 오십니까?"
"소생이 뜻하는 바가 있어서 신분을 숨기고 다니다가

황제께서 엄승상을 조정에서 몰아내시고 현자를 부르시는 말씀을 듣고 왔습니다."
유한림은 무창 관원에게 이렇게 신분을 밝혔다.

그리고 외로운 섬의 암자에서 좋은 소식을 기다리는 부인에게 이 소식을 전달하였다.

그리고 오늘부터 유시랑의 신분이 된 유연수는

빨리 상경하여 황제께 복명하려고 역마를 몰아 길을 재촉해 갔다.

유시랑이 남창부에 이르자 지방 장관이 명함을 드리고 인사하였다.

유시랑이 명함을 받아서 본즉 성명이 사경(謝敬)으로 되어 있으나

본인의 얼굴은 모르는 사람이었다.

 

지방 장관은 유시랑을 귀빈으로 영접하고 주찬으로 환대하였다.

그런데 그 관원의 얼굴에 수색이 가득 차 있으므로 이상히 여기고 물으니,
"하관이 심중에 소회가 있어서 자연 기운이 없어 보인 모양이니 실례를 용서하여 주십시오."
하고 자기 누님을 한번 이별한 후에 생사를 모르고

매부 유한림의 종적도 묘연하다는 한탄을 하면서 눈물을 주르르 흘렸다.

유시랑이 비로소 그 지방 장관이 처남 사공자임을 알고 손을 잡고 탄식하였다.
"아 자네가 내 처남 아닌가. 내 얼굴을 자세히 보게."
남창부윤 사경이 놀라서 자세히 보니 분명히 매부 유한림이라,

반갑게 소매를 잡고 누님의 소식을 물었다.
"내가 우암하여 무죄한 누이를 집에서 내쫓아서

그 후에 갖은 억울한 고생을 시켰으니 자네 대할 면목이 없네."
"지난 일은 하는 수 없습니다. 누님은 지금 어디 계십니까?"
"묘혜 스님의 구원을 받고 지금 군산사에 잘 있으니 염려 말게."
"누님이 생존해 있는 것은 매형님의 복입니다. 묘혜 스님의 은혜는 백골난망입니다."
"자네는 너무나 마음을 상하지 말게. 천은이 호대하시매

다 갚기 어려운데 나의 박덕으로 이런 영복을 당하니 황송하기 그지없네."
하고 서로가 술잔을 나누며 끝없는 이야기를 다하지 못하고 이별하였다.

 

유시랑은 서울로 나가서 황제께 사은하자 친히 불러 보시고

간신 엄승상에게 속아서 유시랑의 충성을 모르고 고생시킨 존후사를 후회하였다.

유시랑이 황송하여 감격의 눈물을 흘리며,
"성은이 이렇게 홍대하시니 미신이 황공무지하옵니다."
"경의 뜻이 굳어서 특히 강서백(講書伯)을 삼으니 인심찰직(仁心察職)하기 바라오."
"황공하옵니다."
유시랑이 어전을 하직하고 집으로 돌아오니 비복들이 나와서 맞으며 눈물을 흘렸다.

당사가 황량하고 정자에 잡초가 무성하여 주인이 없음을 여실히 나타내고 있었다.

유시랑이 사당에 참배하고 통곡 사죄하고 고모 두부인을 찾아 사죄하매 부인이 흐느껴 울고,
"이 늙은 몸이 살았다가 현질이 다시 귀달(貴達)함을 보니 죽어도 한이 없다.

그러나 네가 조종향사를 폐한 지 오래니 그 죄가 어찌 가벼우랴."
"제 죄는 만 번 죽어도 부족하오나 다행히 부부가 다시 만났으니 죄를 용서하십소서."
두부인이 질부와 만났다는 말에 놀라운 기쁨을 참지 못하고,
"조카의 액운이 인제야 다하였구나. 옛날에 현인에게는 복을 내리고

악인은 재화를 만난다 하니 너는 이제 회과자책(悔過自責)하겠느냐?"
유시랑이 전후사를 모두 고하고 앞으로 다시는

그런 간악에 속지 않고 근신할 것을 다짐하였다.
"그 같은 대악이 어찌 세상에 용납되겠습니까?"
하고 거듭 사과하였다.

이때에 모든 친척들이 유시랑을 찾아와서 하례하고 위로하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