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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씨남정기 - 김만중.7

Joyfule 2010. 1. 15. 10:09

 

 

     사씨남정기 - 김만중.7  


 

사부인은 남편 유한림의 태도가 못마땅하였다.

그전에는 이런 문제로 이만큼 말하면 남편이 자기의 말에 따르더니

이렇게 고집하는 남편의 태도가 이상스럽기도 했다.

사실 유한림으로서는 사부인의 신임하는 정도가 전과는 분명히 달라져 있었다.

첩 교씨의 참소로 사부인을 의심하는 마음이 유한림에게 생긴 줄을

사부인은 아직도 모르고 있었기 때문에 말만 길어지고 결과는 얻지 못하였던 것이다.

 

그 후로 동청은 큰집 살림의 집사로 일을 보았는데

유한림의 비위 맞추기에 노력하였으므로 유한림은 사부인의 충고도

공연한 말이라고 다 잊어버리고 더욱 신임하면서 중요한 가사를 거의 일임하였다.
첩 교씨는 점점 노골적으로 사부인을 참소하였으나 아직도 총명이 남은 유한림은

그저 못 들은 척하면서 집안에 내분이 없게 되기를 바라는 태도였다.

마침내 질투에 불타게 된 교씨는 무당 십랑을 불러서

자기의 분한 사정을 말하고 사부인을 모해할 계교를 물었다.

재물에 매수된 십랑은 묘한 계교를 오래 생각한 뒤에

교씨의 귀에 입을 대고 이리이리하면 사씨를 절제할 수 있다고 속삭이고

조금도 근심할 것이 없다고 다짐하였다.
"그럼, 지체 말고 빨리 해서 내 속을 편히 해 주게."
"염려 마십시오."
십랑이 신이 나서 사씨를 음해하는 일을 착수하였다.


이때 마침 사부인 몸에 태기가 있어서 열 달이 차서 순산 생남하였으므로

유한림이 인아(麟兒)라 이름짓고 기뻐하고,

상하비복들까지 단념하였던 본부인이 득남하였으므로 신기히 여기고

교씨가 생남하였던 때보다 몇 배로 경축하였다.

교씨가 이런 유한림과 집안의 기색을 보고 질투가 더욱 심해져서

간장이 타오르는 듯 어쩔 줄을 몰랐다.

십랑을 또 불러서 이 사실을 전하고 빨리 사씨 음해의 비방을 행하라고 재촉하였다.

십랑은 곧 요물을 만들어서 서면에 묻고

교씨의 심복 시비인 납매를 시켜서 이리이리하라고 가르쳐 주었다.

그런 간악한 음모가 비밀리에 진행되고 있는 것은

교씨, 십랑, 시비 납매의 세 사람 이외에는 아무도 알지 못하였다.


하루는 유한림이 조정에 입번하였다가 여러 날만에 출번하여 집으로 돌아와 보니

집안의 상하가 황황하며 교씨 거처인 백자당으로 달려가니

교씨가 유한림을 보고 울면서 호소하였다.
"아이가 홀연히 발병하여 죽을 지경이니 심상치 않습니다.

병세가 체증이나 감기가 아니고 필경

 집안의 누가 방예를 해서 일으킨 귀신의 발동인가 합니다."
"설마 그럴 리야 있을까?"
유한림은 교씨를 위로하고 아들의 방으로 가서 보니

과연 헛소리를 지르고 가위 눌리는 증세로 위급해 보였다.

유한림이 우려하여 약을 지어다가 시비 납매에게 급히 달여서 먹이게 하고

 동정을 자세히 보았으나 조금도 차도가 없었다.

유한림은 낙망을 하고 교씨는 엉엉 울기만 하였다.
유한림의 총명도 점점 감하여 갔는데

열 번 찍어서 안 넘어가는 나무가 없다는 속담과 같이 교씨의 말에 귀를 기울이게 되었다.

의심이 늘어서 모든 일에 줏대를 잃게 되었다.

사부인의 부덕은 옛날 현부에도 손색이 없었으나

교씨 같은 요인(妖人)이 첩으로 들어와서 집안을 어지럽히고

천미한 여자가 누명을 만들어서 가문을 욕되게 하니

마땅히 그런 사악한 여자는 엄중히 경계하여야 할 것이다.


이때 교씨가 교활한 집사 동청과 몰래 사통하고 있었으매, 실로 한 쌍의 요악지물이었다.

교씨의 침소인 백자당이 밖으로 담 하나를 격하여 화원이 있었으며

화원의 열쇠는 교씨가 가지고 있었으므로, 유한림이 내당에서 자는 밤에는

교씨가 동청을 화원 문으로 불러들여서 동침하여 음란을 일삼았다.

그러나 엄중한 비밀의 사통이라 시비 납매만이 알 뿐이었다.
유한림이 장지의 병이 심상치 않음을 보고 매우 심통하고 있을 때

교씨마저 칭병하고 식음을 끊고 밤이면 더욱 슬퍼하여 유한림의 마음을 불안케 하였다.

 

하루는 납매가 부엌에서 소세하다가

한 봉의 괴이한 방예를 얻었다고 유한림과 교씨에게 보였다.

그것을 본 교씨의 얼굴이 흙빛으로 변해서 말을 못하고 앉았다가 이윽고 울면서,
"제가 십육 세 때 이 댁으로 들어와서 남에게 원망 들을 일은 하나도 하지 않았는데

어떤 사람이 우리 모자를 이토록 모해하니 참으로 억울해서 죽을 지경입니다."
유한림이 그 방예한 요물을 보고 묵묵히 말을 잇지 못하고 침통해 하고만 있었다.
"한림께서는 이 일을 어떻게 처치하실 생각입니까?"
교씨가 이 기회에 유한림의 결의를 촉구하였다.

유한림은 한참 생각한 끝에,
"일이 비록 잔악하지만 집안에 의심할 잡인이 없으니 누구를 지목하고 문초하겠는가.

이런 요예지물은 아무도 모르게 불태워 버리는 것이 좋지 않겠는가."
교씨가 문득 생각난 듯한 태도를 하다가 참는 척하고,
"한림 말씀이 지당합니다."
대답하자 유한림이 안심한 듯 납매에게 불을 가져오라고 명하여

뜰에서 친히 살라 버리고 아무에게도 누설하지 말라고 일렀다.

그러자 유한림이 나간 뒤에 납매가 교씨에게 불평스럽게 물었다.


"낭자께서는 왜 한림의 의심을 부채질해서

예정대로 일을 진행시키지 않고 좋은 기회를 잃었습니까?"
"이번에는 한림께 그만 정도로 의심하게 해 두는 것이 좋다.

너무 급하게 서두르다가는 도리어 의심을 사고 해로울 것 같아서 그랬다.

다음 기회에 한림께서 더 결심을 굳게 하시도록 할 것이니

너는 너무 조급히 굴지 말아라. 그만해도 한림의 마음은 이미 동하였으니 요 다음에......"
이리이리하자고 납매에게 다음 계교를 말해 두었다.

유한림이 그 방예의 글씨가 교씨의 글씨임을 알았는데

그것이 또한 교씨 부인의 필적같이 모방한 줄로 짐작하고 불에 살라서 증거를 없앴던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