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젊은 베르테르의 슬픔 - 괴테 1.

Joyfule 2009. 11. 25. 08:17
  젊은 베르테르의 슬픔 - 괴테 1.   
1771년 5월 4일
훌쩍 떠나오기를 정말 잘했다 싶네 ! 절친한 친구여, 
사람의 마음이란 어쩌면 이렇게도 이상야릇한 것일까 
내가 그렇게도 사랑하며 떨어질 수 없었던 자네를 두고 떠나왔는데도 
이렇게 즐거운 기분에 젖을 수 있다니 말일세. 
그러나 자네는 용서해 주겠지. 자네 이외의 딴 사람들과의 관계에 있어서는 ,
나와 같은 마음을 지닌 인간을 괴롭히게 마련인 그런 숙명을 타고난 것만 같거든. 
레오노레는 정말 안됐어. 하지만 그건 내 책임이 아닐세. 
내가 그녀의 여동생의 개성적인 매력에 끌리어 교제를 하고 있는 동안, 
레오노레의 가슴속에 나에 대한 연정이 싹텄다 하더라도 나로서야 어쩔 도리가 없지 않은가. 
그렇기는 해도 나에게는 정말 아무런 책임이 없다고 할 수 있을까? 
내가 레오노레의 감정에 그름을 부은 것이나 아니었을까? 
레오노레의 꾸밈없는 심정이 드러나는 언동을 재미있어 하며, 
사실은 전혀 우스꽝스럽지도 않은데 나는 남들과 함께 그것을 웃음거리로 삼지나 않았던가? 
정말 그러치 않았다고 단언할 수 있을까? 
아아, 자신에 대해 스스로 비난하면서도 태연할 수 있으니 인간이란 참 묘한 거야. 
친구여, 나는 자네에게 약속하네, 
나는 좀더 나은 인간이 되려고 힘쓰겠으며, 
운명이 가져다 준 조그만 불행을 그전처럼 자꾸만 되씹는 그런 짓은 하지 않겠네. 
현재를 즐기고 과거지사는 과거지사로서 흘려보내겠네. 
자네가 말한 것은 정말 옳았어. 내 가장 사랑하는 친구여, 
만일 인간이 어째서 그런 천성을 타고났는지는 알 수 없지만 부지런히 상상력을 동원하여 
지난날의 불행한 추억을 되새기려 하지 말고, 
오히려 현재를 태연히 견디어 내기 위해 노력한다면, 
인간의 괴로움은 훨씬 줄어들 텐데 말일세.
미안하지만 어머님께 말 좀 전해 주게. 
어머님이 시키신 일은 될수록 잘 처리해서, 그 결과를 곧 알려드리겠다고 말일세. 
아주머니를 만나봤는데 우리가 생각했던 것처럼 그렇게 나쁜 사람 같지는 않았네. 
떠들썩하고 괄괄한 성품이기는 하지만 근본은 선량한 여자일세. 
우리 몫의 유산을 아주머니가 움켜쥐고 내놓지 않는다는 
어머님의 불만을 나는 아주머니에게 분명히 말해 줬네. 
여기에 대해 아주머니는 아주머니대로의 사정을 이야기하고 조건을 제시한 다음, 
그것이 충족되면 언제든지 몽땅 내 주겠다는 것이었네. 
그것도 우리가 요구하는 것보다 더 많은 몫을 말일세 
이제 이 일에 대해서는 더 이상 쓰고 싶지 않네. 
어머님께는 모든 것이 잘 돼 가고 있다고만 말씀드려 주게.
친구여, 이 하찮은 용건으로 해서 나는 새삼스레 느꼈는데, 
이 세상의 분쟁은 악의나 흉계보다는 오해와 타성 때문에 일어나는 편이 훨씬 더 많은 것 같네. 
적어도 악의나 흉계 쪽이 수적으로 적다는 것은 틀림없네.
그건 그렇고, 이 곳에 온 뒤로 나는 아주 잘 지내고 있네. 
낙원과도 같은 이 고장에서 고독에 잠길 수 있다는 사실이 
나의 마음에 귀중한 진정제 구실을 해 주고 있다네. 
게다가 이 청춘의 계절은 곧잘 겁에 질리곤 하는 내 마음을 따뜻이 감싸주고 있다네. 
모든 나무들, 모든 생울타리들이 꽃다발일세. 
차라리 한 마리의 풍뎅이가 되어 향기로운 꽃냄새의 바닷속을 헤매면서 
그 속에서 먹이를 찾는 몸이 되었으면 싶네.
이 도시 자체는 쾌적하지 못하지만 교외에는 형언할 수 없는 자연의 아름다움이 있다네. 
이 아름다움에 마음이 끌려서, 지금은 고인이 된 M백작이 한 언덕 위에 정원을 꾸몄었네. 
그 주위의 언덕들이 가로세로 아롱다롱 아름답게 이어지면서 
더할 수 없이 아늑한 골짜기를 이루고 있는 곳일세. 
그 꾸밈새는 단순하네. 그러나 그 속에 한 발짝만 들어서면 곧 느낄 수 있는 것은, 
정원을 설계한 사람이 조경학자 같은 이물이 아니라, 
그 속에서 스스로 즐기려는 심정을 지닌 그런 사람이었다는 사실일세. 
벌써 몇 번이나 나는 이 정원 안의 황폐한 정자에서 고인이 된 백작을 위해 눈물을 흘렸다네. 
그 곳은 백작이 생전에 사랑했던 장소요, 나도 또한 그 곳이 마음에 드네. 
머지않아 나는 이 정원의 주인이 될 걸세. 
이제 겨우 2,3일밖에 안 되었지만, 이 곳 정원사도 나에게 호의적으로 대해 주고 있네.
 내가 이 곳 주인이 되어도 그가 싫은 얼굴을 하지 않으리라 여겨지네. 
5월 10일
희한한 상쾌감이 내 영혼에 충만해 있네. 
내가 마음껏 음미하고 있는 요즘의 달콤한 봄날 아침과도 같은 그런 상쾌감이었네. 
나는 혼자서 호젓이 시간을 보내며, 
나 같은 삶의 영혼을 위해서 마련된 성싶은 이 고장에서 내 삶을 즐기고 있네. 
나는 정말 행복하네. 
친구여, 나는 편안한 심정에 잠겨 있다네. 
덕분에 내 예술이 피해를 입고 있는 정도일세. 나는 지금 그림을 그릴 수가 없네. 
한 획의 선조차 그릴 수가 없는 거야. 
그러면서도 나는 지금처럼 위대한 화가가 되어 본 적은 일찍이 없었네 
나를 둘러싼 아름다운 골짜기에서 안개가 피어오르고 
드높은 하늘에서 비치는 햇빛은 울창한 숲의 꼭대기에서 머뭇거리며, 
그 속의 성전에는 다만 몇 줄기의 빛살만이 새어 들어올 뿐일세. 
그럴 때면 나는 소리내어 흐르는 시냇가의 무성한 풀밭에 누워 
대지에 얼굴을 바싹대고 일일이 헤아릴 수 없는 갖가지 풀들을 살펴보곤 한다네. 
그리하여 풀줄기 사이에서 벌어지고 있는 작은 생물들 세계의 준 동이며, 
기어다니는 벌레와 날벌레들의 무궁무진한 여러 모습들을 가슴 뿌듯이 느끼는 걸세. 
그러고는 새삼 우리네 인간을 자기의 모습과 같이 창조하신 전능하신 하느님의 존재를 실감하고, 
우리를 영원한 환희 속에서 떠돌게 해 주신 지극히 높고 자애로운 분의 숨결을 느끼게 된다네. 
그러다 보면 친구여 ! 내눈은 어느 결엔지 촉촉이 젖고, 
나를 둘러싼 세계와 하늘이 마치 애인의 모습과도 같이 온통 내 영혼 속에서 안식을 취한다네
그럴 때 나는 그지없는 그리움에 사로잡히며 생각에 잠긴다네. 
아아, 내가 이것을 표현할 수가 있다면, 내 기슴 속에 이토록 충만하고, 
이토록 뜨겁게 소용돌이치는 것을 화면에다 내뿜을 수가 있다면...... 
그리하여 내 영혼이 무한하신 하느님의 거울인 것처럼,
그것을 내 영혼의 거울로 삼을 수가 있다면......하고 말일세
친구여, 그러나 나는 한창 그런 생각에 잠겼다가도 그만 힘이 빠져 버리고 만 다네. 
이 장엄한 현상의 힘에 기가 꺾여 버리고 마는 걸세.
5월 12일
이 곳에는 사람의 마음을 호리는 정령이 있는지, 
아니면 성스럽고 생생한 상상력이 내 가슴속에 깃들어 
그것이 내 주위의 모든 것을 이토록 낙원같이 바꾸어 버리는 건지 나로서는 잘 알 수 없네. 
시내 입구 가까운 곳에 샘이 하나 있는데, 
인어의 화신인 멜루지네 자매가 물에 이끌리듯, 나는 그 샘에 끌려가곤 한다네 
자그마한 언덕을 내려가면 동굴이 하나 나오고, 
거기서 다시 층층대를 스무 단쯤 내려간 곳에 그 샘이 있는데, 
맑디맑은 샘물이 대리석 바위틈에서 솟아나고 있네. 
샘을 둘러싸고 있는 나지막한 돌담, 그 주위를 둘러싸고 있는 높다란 나무들, 
얼굴에 확 끼치는 시원스런 냉기, 이 모든 것들에 사람의 마음을 끌어당기는 그 무엇, 
그리고 사람을 전율케 하는 그 어떤 분위기가 있는 것일세.
나는 거의 날마다 그 샘가에 1시간 가량씩 앉아 있다네. 
거시 앉아 있노라면, 시내에서 아가씨들이 와서 샘물을 길어 가는 걸세. 
그것은 인생에 있어서 가장 순수하고 단순하면서도 가장 필요한 일이네. 
그것을 보고 앉아 있으면, 
부족사회 시대의 우리네 조상들의 모습이 나를 중심으로 생생하게 되살아 나는 걸세
마을 어른들이 샘가에서 서로 인사를 트고, 
혼담을 교섭하며, 우물가에는 자비로운 정령들이 떠돌고 있는 걸세 
아아, 이런 나의 기분을 이해하지 못하는 사람은, 
한여름의 기나긴 여행 끝에 시원한 샘물로 기운을 되찾은 경험이 없는 사람일거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