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젊은 베르테르의 슬픔 - 괴테 2.

Joyfule 2009. 11. 26. 11:54
   젊은 베르테르의 슬픔 - 괴테 2.  
5월 13일
내 장서를 보내 주겠단 말인가? 제발 그 짓만은 하지 말아 주게. 
나는 이제 이 이상 지도를 받거나 고무되거나 자극을 받고 싶지가 않네. 
내 가슴은 스스로도 충분히 소용돌이치고 있다네. 
나에게 필요한 것은 그것을 진정시켜 줄 자장가일세. 
그리고 그 자장가들은 내가 애독하는 호메로스의 시속에 얼마든지 있다네. 
나는 설레는 나의 격정을 그 자장가로 여러 차례 달래어 왔네. 
내 마음처럼 이토록 변덕스럽고 불안정한 것은 또 없을 걸세. 
새삼스레 이런 소리를 자네에게 할 필요조차 없겠지. 
슬픔에 잠겼다가는 걷잡을 수 없는 정신적인 흥분으로 치닫는가 하면, 
달콤한 우울에서 파괴적인 정열로 변하여 가는 내 모습을 목격하고 
자네가 곤혹스러워했던 적이 한두 번이 아니었으니까 말일세. 
사실 나는 내 마음을 병든 어린애 다루듯 하고 있다네. 
어떤 일이건 떼를 쓰는 대로 다 받아 줄 수밖에 없거든. 딴 사람들한테 이런 소리하지 말게. 
좋지 못한 방향으로 해석할 사람도 있을 테니까 말일세.
5월 15일
이 고장 사람들과도 벌써 낯이 많이 익었고, 모두 나를 호의적으로 대하여 준다네, 
특히 어린애들은 나를 무척 따른다네. 
처음에 내가 이 곳 사람들에게 다가가 이것저것 허물없이 물어봤더니. 
내가 자기네를 놀리는 줄 알고 몹시 퉁명스럽게 대하는 이들도 있었네. 
그러나 나는 화를 내지 않았어, 
다만 내가 여태껏 몇 번이나 느끼고 있던 사실을 더욱 생생하게 느꼈을 따름일세. 
다시 말하자면, 다소 지위가 있는 사람들은 
서민들과 너무 가까이 지내면 위엄이 손상되기라도 할까 봐 겁이 나서 
언제나 냉담하게 서민들을 멀리하고 있는 것 같다는 걸세. 
그런 반면에 자기만은 파격적인 체하고 일부러 공손한 태도를 취함으로써 
자신의 거만 스러움을 서민들이 한층 더 느끼도록 하는 경박하고 악의적인 사람들도 있는 거라네.
우리네 인간들이 모두 평등하지 않으며, 또 평등할 수도 없다는 사실은 나도 알고 있네. 
그러나 존경을 받기 위해서 이른바 하층계급 사람들을 
멀리할 필요가 있다고 생각하는 무리들은 패배가 두려워서 적군 앞에서 도망치는 
비겁한 자와 마찬가지로 비난을 받아 마땅하다고 나는 말하고 싶네. 
며칠 전에 새가 샘에 나갔더니, 거기 젊은 하녀 한 사람이 있었네. 
그녀는 물통을 층층대 맨 아래에 놓고서 사방을 둘러보고 있더군. 
물통을 머리에 이도록 거들어 줄, 누군가 아는 사람이라도 없나 하고 살피는 것이었네. 
나는 아래로 내려가서 그녀를 보고 말했지 
"거들어 줄까요, 아가씨?"
그녀는 얼굴이 새빨개져서 대답했어 
"아니예요, 나리" 
"사양할 것 없어요" 
그녀는 머리 위의 또아리를 바로잡았고, 나는 물통을 이도록 거들어 주었네. 
그녀는 고맙다는 인사를 하고는 층층대를 올라가더군.
5월 17일
나는 모든 계층 사람들과 알게 되었지만, 
마음을 터놓고 이야기할 수 있는 상대는 아직 찾지 못했네. 
내가 지닌 어떤 점이 사람을 끄는지는 잘 모르겠지만, 
아주 많은 사람들이나를 좋아해 주고 있네. 
그러나 이 사람들과 나는 다만 잠시 동안만 길을 같이 가는 것 뿐이요, 
머지않아 서로 헤어져야만 한다는 사실을 생각하면 슬프다네. 
이 곳 사람들이 어떤 유형의 사람들이냐고 자네가 묻는다면, 
다른 고장 사람들과 다를 바가 없다고 대답할 수밖에 없네. 
인간들이란 대개 어슷비슷한 거라네. 
인간들은 대개 대부분의 시간을 살아가기 위한 일에 다 써 버리고서, 
자유로운 시간을 살아가기 위한 일에 다 써 버리고서, 
자유로운 시간이 그저 조금이라도 남아돌게 되면 오히려 마음의 안정을 잃고, 
온갖 방법을 다 써서 그 시간을 없애 버리려고 기를 쓰는 것이라네. 
아아, 그것이 인간의 운명이련 가!
그런데 이 고장 사람들은 정말 선량하다네. 
나는 때때로 나 자신을 잊고 
아직도 인간에게 허용되어 있는 즐거움을 이 사람들과 함께 즐기고 있다네. 
훌륭하게 차려 놓은 식탁 앞에 마주 앉아 마음놓고 허물없는 농담을 주고받기도 하고, 
때로는 마차를 같이 타기도 하고, 댄스파티에 참석하기도 하네. 
그런 모든 일들이 나에게는 아주 유익한 결과를 가져다준다네. 
그러나 나의 내부에는 아직도 많은 다른 힘이 잠자고 있으며, 
그 힘은 전혀 사용되지도 않은 채 퇴장되고 있는데, 
나는 그것이 남들의 눈에 띄지 않도록 조심스레 감추어야만 한다네. 
아아, 그런 생각을 하면 가슴이 죄어드는 것만 같네 
그러나 오해를 받게 마련인 것이 우리의 운명인 걸 어쩌겠나. 
아아, 어릴 적 친구였던 그녀가 죽지 않았더라면 좋았을걸, 
차라리 그녀를 몰랐더라면 이렇게까지 마음이 쓰라리지는 않을 것을 ! 
나는 자신에게 이렇게 말한다네
."너는 바보야! 이 세상에서 구할 수 없는 것을 찾고 있으니까"
그러나 그녀는 나의 친구였다네. 
그 무렵 나는 그녀의 위대한 영혼과 접촉했었네. 
그 영혼이나를 감싸주었을 때, 나자신이 현실의 나 이상의 존재처럼 느껴졌었네. 
다시 말해서, 나는 내가 되고자 하는 것이면 무엇이든지 다 될 수가 있었던 걸세. 
정말이지 그 때 나는 내 영혼이 지닌 힘을 남김없이 발휘할 수 있었던 걸세. 
그녀와 마주 대하고 있으면 그야말로 영묘한 감정에 휩싸여서, 
자연을 고스란히 내 품안에 안아 들일 수 있었네. 
우리의 교제는 더할 수 없이 섬세한 감수성, 
비길 데 없이 날카로운 예지의 활동이 아니었던가. 
그 활동이 갖가지 변화를 빚어내면서 나중에는 장난으로까지 번져 갔지만, 
그러한 변화들이 모두 천재의 표시인 것으로 여겨지지 않았던가. 
그런데 지금은 아아, 그녀는 나보다 연상이었기 때문에 
나보다 먼저 무덤으로 가 버리고 만 걸세. 
결코 나는 그녀를 잊지 않으려네, 
그녀의 그 꿋꿋한 기질과 숭고한 관용을. 2,3일 전에 나는 V라는 청년을 만났는데, 
그는 이목구비가 반듯하고 솔직한 청년이었네. 
그는 대학을 갓 졸업한 사람으로 자신이 남달리 영리하다고는 생각지 않지만, 
다른 사람들보다는 아는 것이 많다고 믿고 있는 눈치였네.
여러 가지 점으로 미루어 보건대 그는 상당한 노력가인 모양이야. 
예컨대 그는 상당한 지식을 가진 사람일세. 
내가 그림을 꽤 그리고, 그리스어를 안다는 사실
(이것은 이 고장에서는 놀라운 일이거든)을 전해 듣고는 나를 찾아와서, 
그는 자신의 갖가지 지식을 늘어놓았네. 
바토에서 우드에 이르기까지, 드필에서 빈켈만에 이르기까지를 논술하는 거야. 
그러고는 슬 이론의 제1부를 독파했을 뿐 아니라, 
고대연구에관한 하이네의 강의 필기 본을 갖고 있노라고 역설하는 것이었네. 
나는 그의 말을 잠자코 들었네.
또 한 사람 훌륭한 인물을 만나게 되었는데, 
그는 공국의 법무관으로서 상냥하고 성실한 사람일세. 
듣건대 그에게는 아이들이 아홉이나 있는데, 
그 사람이 아이들에게 둘러싸여 있는 광경을 보면 흐뭇하다는 걸세. 
특히 그 사람의 맏딸에 대한 평판이 자자하네. 
법무관이 나더러 한번 놀러 오라고 했으므로, 일간 찾아가 볼 생각일게. 
그는 여기서 1시간 반쯤 걸리는 공작의 사냥별장에 살고 있네. 
부인이 죽은 뒤에 허가를 얻어서 그리로 이사를 갔다는데. 
이 곳 관사에서 그대로 사는 게 그로서는 견딜 수 없이 슬프기 때문이라는 거야.
그 밖에 두세 명의 괴짜들도 알게 되었는데, 아주 비위에 안 맞는 친구들일세. 
특히 친한 체하는 그 태도들이 딱 질색일세.
그럼 안녕! 이 편지는 자네 마음에 들겠지. 아주 사실적이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