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젊은 베르테르의 슬픔 - 괴테 3.

Joyfule 2009. 11. 27. 09:19
 젊은 베르테르의 슬픔 - 괴테 3.  
5월 22일
사람의 일생이 한낱 꿈에 지나지 않는다 함은 
이미 많은 사람들이 생각했던 바지만, 그런 생각이 내 머리에도 줄곧 떠오른다네. 
인간의 활동과 연구도 벗어날 수 없는 한계 속에 갇혀 있는 꼴이란 말일세. 
그런 것을 눈앞에 보게 되거나 또는 인간들의 모든 활동이 목적하는 바는, 
결국은 갖가지 욕망을 만족시키기 위한 것이며, 
그 욕망이라는 것도 궁극적으로는 
우리의 가엾은 생명을 연장시키려는 것에 지나지 않는다는 사실, 
그리고 또 인간의 탐구가 어느 정도가지 이르면 만족해 버리고 마는 것은, 
우리를 가두어 두고 있는 감옥의 벽에다 화려한 희망과 밝은 풍경을 그려 놓고서 
좋아하는 허울좋은 체념에 불과하다는 사실을 생각하거나 하면, 
빌헬름이여, 나는 그만 말문이 막혀 버리고 마네. 
나는 나 자신의 내부로 은둔하고 거기서 한 세계를 발견하는데, 
그것이 또한 표현이나 생동하는 힘으로서 나타나기보다는 
예감이나 막연한 욕망과 같은 것으로 나타나는 것일세. 
그리하여 그 세계에서는 모든 것이 나의 오관 앞에 희미하게 떠돌아다니고 있으며, 
나는 꿈결인 양 그 세 계의 더 깊은 안쪽을 향해 미소를 짓는다네.
어린애들은 자신이 원하는 것이 무엇인지를 알지 못하네. 
그 점에 대해서는 어린애들을 많이 다루고 있는 박식한 가정교사들의 견해가 일치되고 있네. 
그런데 어른들도 어린애나 마찬가지로 이 대지 위를 정처없이 헤매면서 
저희가 어디서 와서 어디로 가는지도 모르는 체, 뚜렷한 목적도 없이,
 비스킷과 케이크, 그리고 채찍으로 조종되고 있는 것일세 
이러한 사실은 아무도 시인하려 하지 않지만, 
내가 보기에는 이것은 명명백백한 사실일세.
내가 이런 소리를 하면 자네가 뭐라고 말할 건지 나는 알고 있네. 
그러니 나도 기꺼이 승복하겠네. 
그런 인간, 곧 어린애들과 마찬가지로 별생각도 없이 하루해를 보내며 
인형을 안고 옷을 입혔다 벗겼다 하기도 하고, 
어머니가 과자를 넣어 둔 서랍께로 살금살금 조심스레 다가가서,
마침내 소망하던 물건을 가지면, 그것을 한입 가득 먹고 나서 "더줘!" 하고 조를 수 있는 
그런 인간이 가장 행복하다는 사실을 말일세. 
또 자신의 무가치한 사업이나 자신의 욕정에까지 그럴듯한 명칭을 붙이고서, 
그것이 인류의 행복을 위한 대사업이랍시고 버젓이 내세우는 그런 녀석들도 행복한 거야 
그렇게 할 수 있는 녀석들은 행복하단 말일세. 
그러나 겸허한 마음으로, 
이런 모든 일들이 어떤 의미를 가지고 있는지를 아는 사람들이 있다네. 
그런 사람들은 안락하게 살아가고 있는 시민들이 자기네의 조그만 정원을 
낙원처럼 가꾸는 것을 낙으로 삼고 있는 일이며, 
불행을 안고 있는 자들도 그 무거운 짐에 허덕이면서도 
쉬지 않고 제길 을 가고 있다는 사실, 
그리고 이와 같이 모든 사람들이 단 1 분이라도 
더 오래 햇빛을 쬐고 싶어한다는 사실을 간파하고 있는 걸세 
그렇지, 그런 사람들은 말을 많이 하지 않고,
 역시 자신의 세계를 자신의 내부로부터 이룩하며, 
또한 행복한 것일세. 왜냐하면 그들 역시 일게 인간이기 때문일세. 
그리고 그런 사람들은 아무리 답답한 환경에 처하더라도, 
가슴속에서는 언제나 자유의 즐거움을 누리고 있는 거라네. 
그러하여 언제든지 마음이 내키기만 하면 
이 감옥에서 벗어날 수 있는 자유정신을 가지고 있는 거지. 
5월 26일
자네는 옛날부터의 내 성격을 알고 있겠지. 
마음에 드는 곳에 정착하여 그 곳에 조그마한 집을 짓고 
조촐하게 조용히 살고 싶어하는 그것 말일세. 
그런데 여기서 나는 내 마음에 꼭 드는 그런 곳을 발견했다네.
이 도시에서 1시간쯤 걸리는 곳에 발하임이라는 마을이 있네. 
언덕을 따라 자리잡고 있는 그 위치가 아주 재미있네. 
그 마을에서 좁은 언덕길을 따라 올라가다 보면 별안간 골짜기 전체가 내려다 보인다네. 
마을 여인숙에서는 나 이에 비해 
아주 유쾌하고 활발한 안주인이 포도주, 맥주, 코피 따위를 팔고 있는데, 
무엇보다도 마음에 드는 것은 두 그루의 보리수일세. 
사방으로 넓게 퍼진 나뭇가지들이 교회 앞의 조그만 광장을 덮고 있는데, 
그 광장을 중심으로 그 둘레에는 농가와 곳간, 그리고 저택들이 들어서 있네. 
이렇게 정답고 매력적인 분위기를 자아내는 광장은 일찍이 본 적이 없을 정도라네. 
나는 여인숙에서 조그마한 탁자와 의자를 그 광장으로 들고 나와, 
거기서 코피를 마시며 호메로스를 읽는다네. 
맑게 갠 어느 날 오후, 
내가 처음으로 아주 우연히 그 보리수 그늘 아래에 왔을 때, 광장은 정말 고요했었네. 
모두들 일을 하러 들에 나간 것일세. 
오직 4살쯤 된 어린 사내아이 하나가 땅바닥에 앉아서
 또 한 아이 태어난지 반 년 가량밖에 안 된 갓난아기를 제 무릎 사이에 앉히고, 
두 팔로 아기를 안아 제 가슴에 기대어 놓고 있는데, 
말하자면 큰 아이의 팔이 일종의 의자 구실을 하고 있는 셈이었네. 
그 사내아이는 검은 눈으로 쉴새없이 사방을 둘러보면서도 아주 조용히 앉아 있었네. 
그 광경이 내 마음에 들었다네. 
나는 그 맞은편에 놓여 있는 쟁기에 걸터앉아 
매우 즐거운 기분으로 이 의좋은 형제 상을 스케치했네. 
바로 그 곁의 생울타리, 곳간 문, 
그리고 부서진 짐수레의 바퀴 두세 개 등을 있는 그대로 그 속에 넣어 그렸네. 
그리하여 1시간 뒤에는 내 주관적인 잔재주가 조금도 가미되지 않은, 
잘 정돈된 재미있는 그림이 완성되었네. 
이를 계기로 앞으론 자연만을 근거로 그림 그릴 생각을 더욱 굳혔네. 
자연만이 무한히 풍요로우며, 자연만이 위대한 예술가를 만드는 걸세. 
그것은 세상의 규칙과 범절에 따라 판에 박힌 행동을 하는 사람이 
이웃사람들의 비난의 대상이 되거나 
몹쓸 악당이 되거나 하는 일이란 결코 없는 것과 마찬가질세. 
그러나 그 반면에, 모든 규칙은 아무래도 
자연의 진정한 감정과 그 참된 표현을 파괴해 버리고 마는 것일세. 
"그건 지나친 말이다! 규칙은 제한을 할뿐이다. 
불필요한 덩굴을 잘라 낼 뿐이야" 이렇게 자네는 말하겠지 
좋아, 그렇다면 비유를 하나 들어보겠네. 
그것은 마치 연애와 같은 걸세. 
어떤 청년이 한 처녀에게 홀딱 반해서 매일같이 그녀의 곁에 붙어살다시피 하면서, 
자신이 그 처녀에게 모든 것을 바치고 있다는 것을 쉴새 없이 알리기 위해, 
자신의 모든 정력과 재산을 다 기울이고 있다고 치세. 거기에 한 사람의 속물, 
이를테면 어떤 관직에 있는 사람이 찾아와서 그 청년을 보고 이렇게 말하는 걸세. 
"젊은이! 연애는 인간적일 뿐이오. 따라서 당신도 인간적으로 연애를 해야만 하오. 
당신의 시간을 나누어서, 일부는 사업에 돌리고, 그 나머지 시간은 애인에게 바치도록 해요. 
당신의 재산을 잘 관리할 것, 그리하여 필요경비를 따로 제쳐두고 
그 나머지 몫으로 애인에게 선물을 하는 것에 대해서는 나도 왈가왈부 하진 않아요. 
다만 그것도 너무 잦으면 안 돼요. 애인의 생일이나 명명일 같은 때에만 하도록 해요" 
그 충고에 따른다면 그는 쓸모 있는 청년이 되겠지. 
나 역시 그를 관리로 채용하도록 어느 군주에게나 추천할 걸세. 
그러나 그는 애인으로서는 그것으로 끝장일세. 
그리고 그가 만일 예술가라면 그의 예술은 그것으로 끝장이 나는 거야. 
아아, 나는 자네들에게 묻고 싶네! 
천재의 분류가 둑을 무너뜨리고 소용돌이치며 밀어닥쳐 와서,
자네들의 영혼을 뒤흔들며 경탄케 하는 일이 어찌하여 이다지도 드문가? 
그것은 그 분류의 양쪽 둑가에 점잖은 신사들이 살고 있기 때문일세. 
그 신사들이 자기네 정원이나 튤립 화단, 
혹은 채소밭이 망가질까 봐 재빨리 제방을 쌓기도 하고, 
배수 공사를 하기도 함으로써 닥쳐올 위험을 미리 막기 때문이란 말일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