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젊은 베르테르의 슬픔 - 괴테 4.

Joyfule 2009. 11. 28. 08:12
  젊은 베르테르의 슬픔 - 괴테 4.  
5월 27일
이제 보니 나는 비유와 연설을 늘어놓기에 정신이 팔려서 
그 아이들이 그 위에 어떻게 왔는지 
자네한테 이야기하는 것을 잊은 것 같구먼. 
어제 편지에서 자네에게 단편적으로 이야기했다시피, 
나는 그림의 분위기에 사로잡혀서 
그 쟁기에 걸터앉은 채 2시간이나 그대로 있었다네. 
저녁때가 다 되었을 때 가정주부로 보이는
 젊은 여자가 그 아이들에게로 급히 다가왔네. 
아이들은 그 때까지 그 자리에 그대로 얌전히 있었던 걸세. 
그 여자는 한 손에 작은 바구니를 들고 있었는데, 
아이들을 보고 멀리서부터 소리를 지르더군.
"필립! 너 정말 착하구나!" 
그녀는 나에게 눈인사를 했네. 
나도 눈인사를 하며 일어나서 그녀의 곁으로 다가가, 아이들의 어머니냐고 물었지. 
그녀는 그렇다고 대답하고는 큰아이한테 흰빵 반쪽을 준 다음, 
갓난아기를 안아 올리더니 어머니의 사랑이 물씬 풍기는 키스를 하더군 
그녀는 말했네. 
"이 필립에게 아기를 맡겨 놓고서 제일 큰애를 데리고 시내에 갔었지요. 
흰빵이며 설탕, 죽을 쓸 질냄비를 사려고요"
보니 뚜껑이 떨어져서 열린 그 바구니 속에 그 물건들이 다 들어 있었네 
"한스(이것이 갓난아기의 이름이었네)에게 오늘 저녁에 수프를 끓여 주려고요.
 개구쟁이 녀석 큰아이가 어제 질냄비를 깨뜨려 버렸거든요. 
남은 죽을 서로 먹으려고 필립과 싸우다가 말씀이에요" 
그 큰아들은 어디에 있느냐고 나는 물었네. 
풀밭에서 두세 마리의 거위를 뒤쫓고 있노라고 그녀는 대답했는데, 
그 대답이 채 끝나기도 전에 그 큰아들이 뛰어오더니 
바로 아랫동생에게 개암나무 회초리를 선물하는 것이었네. 
나는 그녀와 이야기를 계속했는데, 그녀는 그 마을의 학교 교사의 딸이며, 
그녀의 남편은 사촌의 유산을 상속받기 위해 
스위스에 여행중이라는 사실을 알게 되었네 
"모두들 남편을 속이려 한 거예요" 
하고 그녀는 말을 이였네. 
"남편이 편지를 몇 번이나 내었는데도 답장이 안 오는 겁니다. 
그래서 그리로 떠난 거지요. 언짢은 일이나 생기지 않아야 할 텐데......
남편한테서 도무지 소식이 없어서요......" 
나는 그녀와 그대로 헤어지기가 어쩐지 서운해서, 
두 아들에게 1크로이째르씩을 주고 갓난아이를 위해서도
1크로이째르를 그 어머니에게 주면서, 시내에 나가거든 
수프에 곁들일 흰 빵을 사다주라고 말했네. 그런 연후에 우리는 헤어졌네.
나의 가장 사랑하는 벗이여, 
고백하거니와 도저히 내 마음을 진정시킬 수가 없을 때는, 
그런 여인은 안달복달하는 법 없이 행복스럽게 정착하여, 
애환의 좁은 테두리를 돌며 그날 그날을 살아 나가는 거라네. 
나뭇잎이 지는 것을 보고서도 이제 겨울이 오는구나 하는 것을 느낄 뿐, 
다른 생각이라고는 하지 않는 그런 사람이지.
그 때 이후로 나는 곧잘 그 곳에 간다네. 
아이들은 이제 나하고 아주 낯이 익어서, 내가 코피를 마시고 있을 때에는 
설탕을 얻어먹고, 저녁에는 버터 빵과 우유를 노나 마시곤 한다네. 
일요일에는 그들에게 1크로이째르씩을 꼭꼭 주기로 하고 있네. 
예배시간이 지났는데도 내가 거기 가지 못했을 때에는 
주막집 여주인에게 나 대신 그들에게 돈을 주라고 해 두었네. 
아이들은 스스럼이 없어져서 나에게 온갖 이야기를 다 해 준다네. 
특히 마을아이들이 많이 모였을 때면 
그들의 드센 감정과 욕망이 노골적으로 드러나는데, 그것이나를 즐겁게 해 준다네.
이 훌륭한 신사에게 아이들이 폐를 끼치지나 않을까 해서 
애들의 어머니가 무척 신경을 쓰는데, 
그런 걱정은 할 필요가 없다는 것을 납득시키느라고 나는 꽤 애를 먹었다네. 
5월 30일
지난번에 내가 그림에 대해서 썼던 것은, 시에도 그대로 들어맞는 말일세. 
멋진 대목을 찾아 내어 그것을 대담하게 표현하면 되는 걸세. 
그렇게 하면 물론 적은 말로써 많은 것을 나타낼 수가 있지. 
내가 오늘 목격한 광경을 그대로 묘사한다면 
아마도 세계에서 가장 아름다운 목가가 될 걸세. 
그러나 문학이니 정경이니 목가니 하는 그런 것들이 무슨 소용이겠나. 
우리는 자연현상 그 자체에 흥미를 느끼면 됐지, 
그것을 이렇게 저렇게 주물럭거릴 필요는 없네.
이런 서론을 늘어놓았다고 해서 그야말로 대단한 일을 기대한다면, 
자네의 그 기대는 완전히 어긋날 걸세. 
그토록 세차게 내 흥미를 끌었던 것은 
어느 농가의 한 젊은 머슴에 지나지 않으니까 말이야 
내 이야기는 언제나 그렇듯이 제대로 전달이 되지 않을 것이고, 
또 자네는 으레 내가 과장해서 이야기한다고 생각하겠지. 
아무튼 그 무대는 역시 발하임인데, 
이런 희한한 이야기가 생길 만한 곳은 역시 발하임밖에는 없다네. 
그 보리수 아래에서 코피 파티가 있었네. 
나는 거기 모인 사람들이 별로 탐탁지 않았으므로, 
핑계를 대고 한데 어울리지 않고 따로 떨어져 있었네.
농사꾼 차림의 한 젊은 청년이 그 근처의 농가에서 나오더니, 
지난번에 내가 걸터앉아서 스케치를 했던 그 쟁기를 손질하기 시작했네. 
그 인상이 마음에 들기에 나는 그에게 신상에 대한 이야기를 물어 보았네. 
우리는 곧 가까와졌고, 이런 부류의 사람들과는 늘 그렇지만, 
곧 흉허물없이 이야기를 주고 받게 되었네. 
그의 이야기에 따르면, 
그는 어떤 과부 집에서 머슴살이를 하고 있는데, 좋은 대우를 받고 있다는 것이었네. 
그 여주인에 대한 이야기를 자꾸 하면서 칭찬을 늘어놓는 것을 보고, 
나는 곧 이 청년이 몸과 마음을 다 바쳐 여주인을 사모하고 있음을 알아챘지. 
그의 말에 의하면, 그 여주인은 이제 젊지도 않고, 
첫 결혼에서 하도 시달림을 당했기 때문에 재혼할 마음이 전혀 없다는 것이었네. 
그의 말투로 미루어, 그 여주인이 
이 청년에게 있어서는 다시없이 아름답고 매력있는 존재이며,
 또 첫결혼에서 겪은 그 쓰라린 상념을 지워 버리기 위해서도 
그녀가 자기를 선택해 주기를 열망하고 있다는 사실을 똑똑히 알 수 있었네. 
이 청년의 순수한 모정, 그 사랑과 진정을 그대로 되풀이해야만 하겠지. 
여간 위대한 시인이 아니고서는 그의 몸짓이며 표정, 
목소리에 담긴 정감, 눈길 속에 깃들여 있는 정열 등을 동시에 
자네에게 전달하기는 불가능할 걸세. 
아니, 아무리 위대한 시인이라도 
그의 태도와 표정 속에 어리어 있는 그것을 재현한다면 서투른 실패작이 될 뿐이지. 
특히 내 마음을 감동시킨 것은, 내가 자기와 여주인과의 관계를 좋지 않게 받아들이고, 
여주인의 정숙한 처신을 의심하지나 않을까 하고, 
그가 진심으로 걱정스러워하는 점이었어. 
여주인의 얼굴 생김새며, 젊음의 매력은 이미 사라졌는데도 
꼼짝없이 자기를 사로잡는 그녀의 몸매에 대하여 얘기하는 
그 청년의 태도가 얼마나 매력적이었던가 하는 것을, 
나는 다만 마음속으로 되풀이할 수 있을 뿐일세. 
나는 출생 이후 오늘날까지, 
안타까운 욕정과 뜨거운 소망이 이토록 순수한 형태로 나타난 것을 일찍이 본적이 없네. 
아니, 그런 것은 꿈에도 생각한 적이 없네. 
이러한 순수성과 진실을 생각하면 내 영혼은 그 심중으로부터 불타오른다네. 
그 진실과 애정의 생생한 모습은 어디를 가나 나를 따라오네. 
마치 그 불꽃이 나에게 옮겨 불기라도 한 것처럼 숨가쁘고 애가 탄다네. 
이런 소리한다고 나를 나무라지는 말게.
나는 될수록 빠른 시일 안에 그녀를 만나 보고 싶네. 
아니, 다시 생각해 보니 그녀를 만나는 건 피하는 게 났겠네. 
애인의 눈을 통하여 그녀를 보는 편이 나을 것 같네. 
직접 보면, 지금 내 마음속으로 그리고 있는 그녀와는 딴판일 우려가 있으니까. 
그 아름다운 영상을 무엇 때문에 깨뜨려 버릴 것인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