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젊은 베르테르의 슬픔 - 괴테 29.

Joyfule 2009. 12. 29. 09:20
   젊은 베르테르의 슬픔 - 괴테 29.  
 12월 1일
빌헬름이여! 
자네에게 이야기했던 그 사나이, 그 행복하고도 불행한 사나이는 
로테의 아버지 밑에서 일하던 서기였다네. 
로테를 사모하며 그것을 남몰래 가슴 속에 간직하고 있다가, 
마침내 그것을 고백한 끝에 해고당했다는 걸세. 
가슴 속에서 불타던 정열이 이 사나이를 미치게 한 거지.
이 덤덤한 편지를 읽고 헤아려 주기 바라네, 
그 이야기를 듣고 내가 얼마나 심한 충격을 받았겠는가를. 
알베르트는 태연스레 이 이야기를 나에게 해 주었네. 
아마 자네도 태연스레 이 글을 읽어 나갈 테지. 
12월 4일
부디 이 심정을 헤아려 주게. 
나는 이제 글렀어. 이 이상 더견딜 수가 없네! 
오늘 나는 그녀 곁에 앉아 있었네. 
그녀는 피아노를 치고 있었지. 
갖가지 곡을, 온갖 감정을 나타내면서! 온갖 감정을 다 말일세! 
자네는 어떻게 생각하는가? 
그녀의 어린 여동생이 내 무릎 위에 앉아서 인형에게 옷을 입히고 있었네. 
나는 눈물이 날 것만 같았네. 
고개를 숙였더니 로테의 결혼반지가 눈에 띄더군. 
눈물이 왈칵 솟았네. 
그때 그녀가 그 그리운, 황홀한 멜로디를 치기 시작하였네. 
그것을 실로 돌발적이었어. 
내 영혼은 구석구석까지 위로를 받았네. 
그와 동시에 지나간 날들의 추억이 내 마음 속에서 소용돌이쳤네. 
전에 이곡을 들었을 무렵의 일, 
로테 곁을 떠나 있었던 음울했던 날들, 
울화가 치밀었던 일, 
차례차례 무너져 버린 희망 등등이, 
나는 방 안을 이리저리 걸어다녔네. 
복받쳐 오르는 감회에 숨이 막힐 것만 같았네. 
"제발"하고 나는 격력한 감정을 못 이겨 로테 곁으로 내달으며 말했지. 
"제발 그만두어 주십시오!" 
로테는 손을 멈추고 나를 빤히 쳐다보았네. 
"베르테르 씨" 하고 그녀는 미소지으면서 말했네. 
그 미소는 내 마음 속에 고스란히 스며들었네. 
"베르테르 씨, 몸이 편찮으신 모양이군요, 
그렇게 좋아하시던 곡이 귀에 거슬리는 걸 보면, 
그만 돌아가시도록 하세요. 그리고 제발 마음을 진정시키세요"
나는 훌쩍 그녀 곁을 떠났네. 
하느님! 당신께서는 제 비참한 모습을 보고 계시겠죠. 
어서 이 불행이 끝나게 해 주십시오. 
12월 6일
어디를 가나 그녀의 모습이 나를 따라다니네! 
자나께나 그 모습이 내 마음 속을 차지하고 있네! 
눈을 감으면 마음의 눈길이 쏠리는 머릿속에 그녀의 검은 눈동자가 나타나네. 
바로 여기에! 딱 들어맞는 표현을 할 수가 없군, 
어쨌든 눈을 감으면 나타나는 걸세. 
바다와도 같이, 심연과도 같이, 
그것은 내 앞에, 아니, 내 속에 조용히 자리잡고 내 생각을 충만케 해 준다네.
반신(半身)이라 찬양되는 인간의 꼴을 보게나! 
가장 힘을 필요로 하는 바로 그때에 힘이 빠져 버리니 말일세. 
기쁨에 겨워 날뛸 때도, 슴픔의 구렁텅이에 빠져들 때도, 
바야흐로 무한한 자의 충만 속으로 녹아 들어가 버리고 싶어지는 그 순간에, 
언제나 덜미를 잡혀 둔하고 차가운 의식 속으로 되끌려오고 말지 않는가. 
12월 12일
사랑하는 빌헬름이여, 
나는 지금, 악령이 씌었다고 여겨졌던 그 불행한 사람들과 같은 상태에 있다네. 
때때로 뭔가가 나를 엄습해 오는 걸세. 
그것은 불안도 아니고, 욕방도 아니고, 불가해한 내적 발광이라네. 
그것이 내 가슴을 쥐어뜯으려 하고, 내 목을 조르는 거야. 
아아, 불행하도다! 
나는 견딜 수가 없어져서, 
인간에게 적의를 품고 있는 이 계절의 황량한 밤경치 속으로 나가 헤맨다네.
어젯밤에도 나는 밖으로 나가지 않고는 배길 수가 없었네. 
갑자기 눈석임물이 불어나서 강물이 범람했다는 소리를 들었거든. 
강마다 물이 넘치고, 발하임의 아래쪽 그 그리운 골짜기가 물에 잠겼다는 거야. 
밤 11시가 지나서 나는 집을 뛰쳐나왔네. 
무시무시한 광경이었네. 
바위 위에 서서 내려다보니까, 달빛속에서 탁류가 소용돌이치고 있었네. 
밭도 목장도 산울타리도, 모두가 그 모습을 감추었고, 
넓은 골짜기는 온통 바람이 휘몰아치는 거친 바도로 변해 있었네! 
이윽고 검은 구름 속에 숨었던 달이 다시 얼굴을 내밀자, 
그 물바다는 섬뜩할이만큼 아름답게 빛을 반사하면서 
저 먼 곳을 향해 요란하게 굽이치면 내 눈앞을 흘러가는 것이었네.
전율과 그리움이 나를 엄습하였네. 
아아, 나는 두 팔을 벌리고 심연을 향하여 선 채 깊이깊이 숨을 들이쉬었네. 
그리고 이 괴로움, 
이 번뇌를 노도처럼 휩쓸어가 버리는 환희에 싸여 나는 넋을 잃었네.
 아아, 그러나 나는 땅에서 발을 뗌으로써 모든 고통을 종식시켜 버릴 수는 없었네. 
내 운명의 모래시계는 아직도 모래가 다 흘러내리지 않았던 걸세. 
나는 그것을 절실히 느꼈네. 
아아, 빌헬름이여! 
저 폭풍우로 구름장을 찢어 대 홍수를 일으킬 수만 있다면, 
나는 나의 인간적 존재를 기꺼이 내던질 텐데. 
아, 그런 큰 환희는 얽매인 몸에는 주어지지 않는 것일까? 
어두운 마음으로 언젠가 어느 무더운 날 
산책을 나갔다가 로테와 함께 쉬었던 그 그리운 버드나무 아래를 내려다보니, 
그곳도 물에 잠겨 있었네. 
버드나무도 거의 알아볼 수가 없었네. 
로테네 목장, 로테네 집 주위는 어떻게 되었을까, 
우리의 정자는 격류에 볼품없이 허물어져 버렸겠지, 
하는 생각들을 하고 있는 사이에, 죄수의 마음 속에 숨어 들엉오는 
자기 집의 가축 떼와 목장, 영광스러운 직위에 대한 꿈들처럼, 
지나간 날들의 햇살이 내 마음 속에 비쳐들었네. 나는 그대로 오래 서 있었네! 
나는 이제 나 자신을 책망하지 않네, 
죽을 용기는 있으니까. 나는 차라리......
그러나 지금 나는 여기에 한 노파처럼 앉아있네. 
죽음을 향하여 다가가고 있는, 
기쁜도 없는 생명을 한순간이라도 더 연장하고 유지하기 위하여 
남의 집 울타리에서 땔나무를 주우며, 이집 저집의 문간에서 빵을 구걸하는 노파처럼. 
12월 14일
이게 도대체 어떻게 된 일일까, 
친구여. 나는 나 자신에 대하여 놀라고 있네. 
로테에 대한 나의 사랑은 더없이 성스럽고 청순한, 형제와 같은 사랑이 아니었던가? 
일찍이 단 한 번이라도 내 가슴에 죄가 될 만한 소망을 품은 적이 있었던가? 
단언하지는 않기로 함세. 
그런데 꿈이란 것은! 
아아, 이토록 모순된 갖가지 작용을 불가사의한 힘의 조화로 
돌려 버린 사람들의 감각은 그야말로 올바른 것일세! 
어젯밤! 그 이야기를 하려고만 해도 몸이 떨리네. 
나는 그녀를 내 가슴에 꽉 껴안고, 사랑을 속삭이는 그녀의 입술에 끝없는 키스를 퍼부었다네. 
나의 눈은 그녀의 황홀해진 눈 속에 어리어 있었네. 
주여! 저는 벌을 받아야 할까요? 
지금도 그 불길 같은 기쁨을 설레는 마음으로 되살리면서, 
형언할 수 없는 행복을 느끼고 있으니 말입니다. 
로테! 로테! 
이제 끝장이 나려나 보네! 
감각이 혼란에 빠지고, 벌써 1주일 동안이나 사고력을 상실하고 있어. 
눈에는 언제나 눈물이 그득하네. 
어디를 가나 즐겁지가 않네. 
그런가 하면 어디를 가도 즐겁네. 
아무런 소망도 희망도 없어. 이제 나는 떠나는 편이 나을 것 같네. 
이 세상을 하직하려는 결심은 
이런 상황 속에서, 베르테르의 가슴 속에 점점 더 굳어져 갔습니다. 
로테의 곁으로 돌아온 이후로 그것은 언제나 그의 최후의 기대였으며 희망이었습니다. 
그러나 그는 스스로를 타이르고 있었습니다. 
그 행위가 조급하고 경솔한 것이 되어서는 안 된다. 
최선의 확신으로써가능한 한 침착한 결의와 더불어 결행해야만 한다고 말입니다. 
그의 회의 및 자기 자심과의 갈등을 엿볼 수 있는 쪽지가 있습니다. 
빌헬름 앞으로 쓴 편지의 서두인 듯한데, 
날짜는 없고, 역시 다른 글들과 함께 발견된 것입니다. 
("그녀가 살아 있다는 사실, 
그녀의 운명, 내 운명에 대한 그녀의 공감, 
그러한 것들이 재가 되어 버린 내 머릿속에서 아직도 최후의 눈물을 짜내고 있네.
막을 올리고 그 안으로 들어간다! 
단지 그뿐 아닌가! 그런데 이 망설임은 어떻게 된 건가? 
그 안이 어떤 곳인지 모르기 때문일까? 
한 번 들어가면 다시는 돌아오는 자가 없기 때문일까? 
확실한 것을 알지 못하면 혼란과 암흑을 예상하지.
그것이 우린네 인간정신의 특성인가 보네!")
마침내 베르테르는 이 슬픈 생각에 점점 더 깊이 잠겨들었고, 
그 결의는 이제 돌이킬 수 없는 것이 되었습니다. 
그에 대해서는 빌헬름 앞으로 보낸, 
애매한 내용의 편지가 한 증거가 될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