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젊은 베르테르의 슬픔 - 괴테 31.

Joyfule 2009. 12. 31. 09:34
  젊은 베르테르의 슬픔 - 괴테 31.  
돌아갈 기회를 놓치고 망설이는 사이에 8시가 됐습니다. 
불만과 불쾌감은 점점 더해 갈 뿐이었는데, 
저녁식사 준비가 다 되었을 때에야 베르테르는 모자와 단장을 집어들었습니다. 
알베르트가 좀더 있다가 천천히 가라고 권했으나, 
속이 들여다보이는 소리 같아서 퉁명스레 사양을 하고 밖으로 나왔습니다. 
그는 바로 집으로 돌아왔습니다. 
하인이 등불을 들고 나오자 그것을 받아 들고 혼자 자기 방으로 들어갔습니다. 
그러고는 큰 소리를 내며 울고, 흥분한 목소리로 혼잣말을 하였으며, 
방안을 조급하게 오락가락 하더니, 마침내 옷을 입은 채로 침대에 벌렁 드러누웠습니다. 
11시경에 하인이 조심스레 들어가 보니까, 그는 그대로 누워 있었습니다. 
장화를 벗길까요, 하고 하인이 묻자 그는 순순히 그러라고 하고는, 
내일 아침엔 부를 때까지 방에 들어오지 말라고 일렀습니다. 
12월 21일, 
월요일 아침에 베르테르는 로테 앞으로 다음과 같은 편지를 썼습니다.
이 편지는 그가 죽은 후에 그의 책상위에서 봉해진 채 발견되었고, 
그대로 로테에게 전해졌습니다. 
여러 가지 사정으로 미루어 그가 이 편지를 단편적으로 썼다는 것이 분명하므로, 
그 순서에 따라 일부분씩 끊어서 삽입하기로 합니다. 
결심했습니다. 로테. 
나는 죽으려고 합니다. 낭만적인 과장도 없이, 
냉정한 심정으로 당신을 마지막으로 만나게 될 날 아침에 이 글을 쓰고 있습니다.
나의 가장 사랑하는 사람이여, 
당신이 이 글을 읽을 때는 이미 차가운 무덤이 
불행한 사나이의 경직된 몸을 덮고 있을 것입니다. 
생애의 마지막 순간가지도 당신과 더불어 이야기하는 것보다 
더 큰 행복을 알지 못한 사나이였습니다. 
무서운 하룻밤을 지새웠습니다만, 
아아, 그것은 감사해야만 할 밤이기도 했습니다. 
죽는다는 결심을 확실히 굳혀 준 밤이었으니까요.
어제 몹시 흥분하여 떨치듯이 당신과 헤어져 돌아왔는데, 
그런 뒤에 조금 전에 있었던 일이 한꺼번에 내 마음 속에 밀려들었고, 
희망도 없고 기쁨도 없는 존재인 내가 
당신 곁에 붙어다니고 있다는 것을 생각하니 오한이 엄습합니다. 
간신히 내 방으로 돌아와서 정신없이 꿇어앉았습니다. 
그리고 아아, 하느님은 나에게 더없이 쓴 눈물을 최후의 위안으로 내려 주셨습니다. 
갖가지 계획과 기대가 뒤를 이어 내 마음 속에서 어지럽게 설쳤으나, 
마침내 죽어 버리자고 하는 한 가지 계획이 확고하게 세워졌습니다. 
그대로 자리에 누웠습니다. 
아침에 눈을 떴을 때, 진정된 가운데서도 죽어 버리고 싶은 생각은 확고하게, 
조금도 동요됨이 없이 마음에 뿌리를 내리고 있었습니다. 
이것은 결코 절망이 아닙니다. 
내가 끝까지 참고 견디다가 당신을 위하여 희생되는 것을 뜻할 뿐입니다. 
로테! 이 사실을 말하지 않고 있어야만 할까요? 
우리 세 사람 가운데 누군가 한 사람은 떠나야만 합니다. 
내가 그 한 사람이 되려는 것입니다. 
아아, 사랑하는 이여! 
갈가리 찢어진 이 가슴 속에서는 몇 번이나 어떤 생각
----당신 남편을 죽일까? 당신을, 아니, 나를?----이 미친 듯이 맴돌았습니다. 
그러나 그것도 이미 지난 일입니다. 
아름다운 여름날 저녁, 언덕 위에 올라가시거든 부디 나를 생각해 주십시오. 
그 골짜기 길을 내가 자주 올라갔었던 일을 되새기며 
건너편에 있는 내 무덤께로 눈길을 보내 주십시오. 
넘어가는 저녁 햇살 속에 무심하게 자란 풀이 바람에 흔들리고 있을 것입니다.
쓰기 시작했을 때는 냉정했었는데, 지금은, 
그런 정경이 너무나도 생생하게 눈앞에 떠올라서 어린애처럼 울고 있습니다. 
10시경에 베르테르는 하인을 불렀습니다. 
그리고 옷을 입으면서, 2,3일 안으로 여행을 떠날 테니, 
옷가지에 손질을 하고 짐을 꾸릴 준비를 해 두라고 일렀습니다. 
또 지불할 것이 있는 곳에는 빠짐없이 계산서를 받아오고, 
빌려 준 몇 권의 책도 찾아오도록 했습니다. 
그리고 매주 얼마씩 원조해 온 몇몇 가난한 사람들에게 
2개월분의 돈을 선불해 주도록 일렀습니다. 
그는 음식을 방으로 가져오게 하여 식사를 마친 다음, 
말을 타고 법무관의 집으로 갔습니다. 
법무관은 부재중이었습니다. 
그는 깊은 상념에 잠겨서 정원을 이리저리 왔다갔다했습니다. 
죽기 전에 모든 추억들을 자기 마음 속에 차곡차곡 쌓아 두려고 하는 것처럼 보였습니다. 
아이들이 언제까지나 그를 조용히 내버려 둘 리 없었습니다. 
그를 뒤쫓아와서 달라붙으며, 내일, 그 다음 내일, 
그리고 또 하루가 더 지나면, 로테 언니 집에 가서 크리스마스 선물을 받을 거라면서, 
그들의 어린 상상력이 기대할 수 있는 최대한의 경이를 그에게 이야기하는 것이었습니다. 
"내일, 그 다음 내일, 그리고 또 하루가 지나면!"하고 외친 다음, 
베르테르는 아이들에게 다정하게 키스를 하고 떠나려 했습니다. 
그 때 막내동이가 그의 귀에다 대고 속삭였습니다. 
언니들이 예쁜 연하장을 썼다는 것이었습니다.
 "아주 커다란 거예요! 한 장은 아빠에게, 알베르트하고 로테 누나에게도 한 장, 
그리고 베르테르 아저씨에게도 한 장, 그걸 설날 아침에 드린댔어요" 
베르테르는 이 이야기에 가슴이 찡해졌습니다. 
아이들에게 몇 푼씩 돈을 노나 주고 아버지께 안부 전해 달라고 부탁한 다음, 
그는 눈에 눈물이 글썽한 채 말을 타고 그 곳을 떠났습니다. 
5시경에 집에 당도하자, 
그는 하녀에게 난롯불을 잘 살펴서 밤늦게까지 꺼지지 않도록 하라고 일렀습니다. 
하인에게는, 아래층에 있는 책을 트렁크에 넣고, 
옷가지들은 여행가방 속에다 챙겨 두라고 일렀습니다. 
아마도 그 뒤에, 로테 앞으로 보낸 마지막 편지 가운데 다음 부분을 쓴 것 같습니다. 
당신은 내가 찾아가리라고는 생각지 못할 것입니다. 
당신 말대로 크리스마스 이브 전에는 가지 않을 것으로 생각하고 있겠지요. 
아아, 로테! 
그러나 오늘 한 번만 더! 
그렇지 않으면 영원히 만날 기회가 없습니다. 
크리스마스 이브에 당신은 이 편지를 손에 들고 부들부들 떨면서, 
당신의 눈물로 이것을 적실 것입니다. 
나는 단행해야만 합니다. 
아아, 결심을 굳히고 나니 어쩌면 이토록 상쾌할까요. 
한편 로테는 기묘한 상태에 빠져 있었습니다. 
베르테르와 그 마지막 대화를 나눈 뒤에 그녀는
그와 헤어지는 일이 자기로서 얼마나 쓰라린 일이며, 
베르테르도 또한 자기와 헤어지는 것을 
얼마나 가슴아프게 생각할까 하는 것을 사무치게 느끼고 있었습니다. 
베르테르가 크리스마스 이브 전에는 찾아오지 않으리라는 것을, 
그녀는 알베르트에게 넌지시 이야기해 두었습니다. 
그런데 알베르트는 이웃마을의 어니 관리 집에 볼일이 있어서, 
그 날 밤은 거기서 묵기로 되어 있었습니다. 
그래서 로테는 혼자 있었습니다. 
동생들도 와 있지 않았습니다. 
그녀는 조용히 자신의 처지를 생각해 보았습니다. 
그녀는 자기가 남편과 영원히 맺어져 있음을 느꼈습니다. 
그녀는 남편을 사랑하고 있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