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젊은 베르테르의 슬픔 - 괴테 5.

Joyfule 2009. 11. 30. 04:59
 젊은 베르테르의 슬픔 - 괴테 5.  
6월 16일
왜 편지를 하지 않았느냐고? 그런 소릴 묻다니, 그러고도 자네는 학자 축에 끼는가? 
그래, 짐작이 가지도 않는단 말인가? 나야 으레 건제하고, 아니, 건제 이상일세. 
게다가 한마디로 말하면, 새로운 친지가 생겼는데, 그것으로 내 마음이 가득하다네. 
나는, 글쎄, 뭐라고 써야 할지 알 수가 없네. 
그지없이 사랑스러운 한 여인과 어떻게 하여 알게 되었는지. 
그 자초지종을 차근차근 이야기한다는 것은 
나로서는 불가능해. 나는 행복하며 만족하고 있네. 
그래서 훌륭한 사실 기록자가 될 수 없는 걸세. 
천사라네! 제기랄, 이건 누구나 자기 애인을 가리켜 하는 소리 아닌가. 
그걸 알고 있으면서도 나는 그녀가 얼마나 완벽한가 하는 것을 자네에게 설명할 수가 없네. 
요컨대 그녀는 내 마음을 완전히 사로잡아 버렸다네.
더없이 총명하면서도 순진하며, 더없이 착실하면서도 다정하고, 
더없이 발랄하고 활동적이면서도 차분한 마음을 지니고 있는 여인일세.
그녀에 대하여는 어떤 말을, 어떤 식으로 하더라도 모두가 하찮은 잔소리,
어줍지 않은 추상적 표현이 될 뿐, 그녀의 모습을 올바르게 나타내지 못할 걸세. 
이 다음에 아니지, 이 다음으로 미룰 게 아니라, 
지금 당장 이야기하지. 지금 이야기하지 않으면 기회가 없을 것 같으니까 말일세. 
왜냐하면, 그건 우리 사이니까 하는 얘기지만, 
이 편지를 쓰기 시작한 뒤로 나는 벌써 세 번이나 펜을 놓고 뛰쳐나가려 했다네. 
나는 오늘 아침에, 오늘은 그녀에게 가지 않겠다고 스스로 맹세를 했던 터일세. 
그런데도 자꾸만 창가로 가서는, 해가 어디쯤 떠 있나 살펴보곤 하는 걸세. 
나는 나 자신을 이겨 내지 못했네. 
그녀에게 가지 않을 수가 없었네. 
거기 갔다가 지금 막 돌아온 참일세. 빌헬름이여, 
나는 밤참으로 빵을 먹고 자네에게 이 편지를 쓰고 있는 걸세. 
그녀가 귀엽고 발랄 한 어린이들, 
곧 8명의 동생들에게 둘러싸여 있는 광경을 보면, 내 영혼은 크나큰 환희에 젖는다네!
이런 식으로 써내려 가면, 아무리 읽어 봤자 자네는 뭐가 어떻게 된 건지 알 수 없겠군. 
좋아, 그렇다면 억지로라도 내 마음을 가라앉혀서 자초지종을 이야기함세. 
지난번에 자네에게 이야기했던 바와 같이 나는 법무관인 S씨를 알게 되었는데, 
그 분은나에게 자기 은둔처 라기보다 자기의 작은 왕국으로 한번 놀러 오라고 했었지. 
그런데 나는 그 분 집에 놀러 가는 걸 미루어 오고 있었다네. 
만일 우연이라는 것이 나로 하여금 그 한적한 고장에 숨겨져 있던 
그 보물을 발견하게 하지 않았더라면, 나는 결코 거기에 가지 않았을 것일세.
내가 알게 된 젊은이들이 시골에서 무도회를 개최하였는데, 
나도 기꺼이 거기에 참석했었지. 
나는, 마음씨가 곱고 예쁘장하기만 할 뿐 달리 이렇다 할 장점이 없는, 
이 도시에 살고 있는 소녀에게 파트너가 되어 줄 것을 부탁했네. 
서로 협의를 한 결과, 내가 마차를 세내어 파트너인 그 아가씨와 
그녀의 사촌 동생을 태우고 무도회장으로 가되, 
그 도중에 샤를로테 S네 집에 들러 그녀를 데리고 가기로 합의가 되었지.
"아름다운 아가씨를 알게 되실 거예요" 
수풀 속에 널찍하게 나 있는 길을 따라, 
그 사냥 별장을 향해 달려가는 마차 속에서 내 파트너인 그 소녀가 말했네 
"반하지 않도록 주의하세요" 
하고 그녀의 사촌동생이 덧붙이는 걸세 
"왜요?" 
하고 나는 물었지. 
"그 아가씨는 벌써 약혼한 분이 있으니까요" 
하고 내 파트너인 소녀가 대답하더군. 
"약혼자는 아주 훌륭한 분인데, 지금 여행중이랍니다. 
그분의 아버님이 돌아가셨기 때문에 여러 가지로 정리할 일도 있고, 
또 좋은 일자리를 물색하기 위해서이기도 하지요" 
그런 소리를 들어도 나는 별로 관심을 두지 않았다네. 
해가 서산으로 넘어가기 15분전에 우리는 그 집 문 앞에 닿았어. 몹시무더웠다네. 
여자들은 소나기가 한바탕 내리지나 않을까 하고 걱정들을 했네. 
지평선 일대에 우중충한 잿빛 구름이 깔려 있어서 한 소나기 몰고 올 것만 같았네. 
나는 어설픈 기상학의 지식을 둘러대며 여자들의 걱정을 달래긴 했으나, 
나 자신도 속으로는 무도회가 소나기로 중단될 것 같은 예감이 들었네.
내가 마차에서 내리자 하녀가 문간에 나오더니, 
로테 아가씨가 곧 나오실 테니 잠깐만 기다려 달라고 말하더군. 
나는 안뜰을 지나서 우람한 안채를 향해 걸어갔지. 
입구의 계단을 올라가서 현관 안으로 들어서자, 
일찍이 본 적이 없는 정겨운 광경이 눈에 띄었네. 
현관방에 2살에서 11살 사이의 아이들 여섯이 한 소녀를 둘러싸고 있었네. 
몸매가 아름다운 중키의 그 소녀는 청초한 흰옷을 입었는데, 
팔과 가슴에 연분홍 장식 끈이 달려 있었네. 
소녀는 흑빵을 손에 들고 자기를 둘러싼 아이들에게 
각각 그 연령과 식욕에 따라 한 조각씩 잘라 주었는데, 
어느 아이에게나 그야말로 다정스레 그것을 건네주는 것이었네. 
아이들은 빵을 채 자르기 전부터 저마다 그 작은 손을 높이 들어올린 채 기다리고 있다가, 
빵조각을 받으면 아주 천진스럽게 "고마와요!"하고 소리를 지르는 걸세. 
그러고서 아이들은 각자가 받은 몫에 만족하며, 
자기들의 언니인 로테가 타고 갈 마차와 손님들을 보려고, 어떤 아이는 뛰어나오기도 하고, 
또 어떤 아이는 얌전한 성품인지 천천히 걸어서 대문께로 나왔다네. 
"미안합니다"하고 그녀는 나를 보고 말했네. 
"선생님께서 여기까지 이렇게 오시도록 하고, 또 아가씨들을 기다리게 해서...... 
옷을 갈아입고, 또 제가 잘라 주어야만 한다고 막무가내랍니다" 
나는 그저 상투적인 인사를 했지.
내마음은 온통 그녀의 자태와 목소리, 그리고 그 동작에 집중되어 있었네. 
그녀가 장갑과 부채를 가지러 거실로 뛰어갔을 때, 
나는 비로소 제정신으로 돌아와 이 최초의 놀라움으로부터 헤어날 수 있는 여유를 찾았다네. 
아이들은 조금 떨어진 곳에서 나를 보고 있었네. 
나는 막내둥이에게로 다가갔다네. 
그 애는 매우 귀염성스러운 얼굴의 사내아이였는데, 슬금슬금 뒷걸음질을 치더군. 
그 때 로테가 되돌아와서 "루이야, 사촌형님하고 악수해야지"하고 말했네. 
그 아이는 시키는 대로 스스럼없이 손을 내밀었네. 
콧물을 흘려 코밑이 약간 지저분했지만 나는 그 애에게 마음에서 우러난 키스를 했네.
"사촌형님이라뇨?"하고 로테에게 손을 내밀면서 말했지. 
"나를 아가씨의 친척이 되는 영광을 누릴 수 있을 만한 사람으로 생각해 주시는 건가요?" 
"아, 그건"하고 로테는 가볍게 미소를 지으며 말했네.
"저희들에겐 사촌이 아주 많답니다. 
설마 그들 가운데서 선생님이 가장 나쁜 분은 아니겠지요...... 
"출발하면서 로테는 자기 바로 아랫동생인 소피에게 아이들을 잘 보살피도록 이른 다음, 
승마산책을 나간 아버지가 돌아오시거든 
인사 못 드리고 떠났다고 잘 말씀드려 달라고 부탁하였네. 
그리고 다른 아이들에게는, 
소피 언니를 자기처럼 생각하고 말을 잘 들어야 한다고 타일렀네. 
두세 아이는 그러겠노라고 약속을 했으나 
6살쯤 된 숙성해 보이는 금발머리 소녀는 이렇게 말하더군."
그렇지만 소피 언니는 로테 언니가 아니잖아. 우린 로테 언니가 더 좋단 말이야" 
사내아이 둘은 어느 틈에 마차 뒤에 올라타고 있었네. 
내가 사이에 들어 조정을 해서, 
로테는 숲 입구까지 아이들이 그대로 마차를 타고 가도 좋다고 허락했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