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젊은 베르테르의 슬픔 - 괴테 7.

Joyfule 2009. 12. 2. 09:32
  젊은 베르테르의 슬픔 - 괴테 7.  

그리고, 빌헬름이여, 정직하게 고백하지. 나는 맹세를 했다네. 
내가 사랑하고 갈구하는 이 소녀로 하여금 
결코 나 이외의 사람과는 왈츠를 못 추게 하겠노라고 말일세. 
설령 그 때문에 내가 파멸하는 한이 있더라도......그 기분, 알아주겠지?
우리는 잠시 쉬기 위하여 천천히 걸어서 홀을 두세 차례 돌았네. 
그런 다음에 로테는 자리에 앉았네. 
내 몫으로 갖다 놓았던 몇 개의 오렌지가 그 때 남아 있는 유일한 과일이었는데, 
그것이 아주 요긴하게 쓰였네. 
그런데 그 오렌지를 로테가 한 자리에 앉은 
염치없는 여자들에게 노나 줄 때는 가슴이 쓰리더구먼.
세 번째의 영국식 댄스에서 우리는 두 번째 조가 되었네. 
사람들의 대열 속을 누비며 형언할 수 없는 기쁨을 만끽하고, 
순수한 즐거움을 숨김없이 드러내면서 춤추고 있는 로테 
나는 황홀감에 젖은 채 그녀의 눈을 바라보며, 그 팔을 끼고 춤을 추었네. 
그러다가 어떤 부인 옆을 지나게 되었네. 
그 부인은 이미 젊다고는 할 수 없었으나 애교있는 얼굴이었으므로 
그전에도 눈여겨본 적이 있는 여자였지. 
그녀는 미소를 지으며 로테에게 시선을 보내더니 
위협하듯이 손가락 하나를 쳐들고는 우리가 스쳐 지날 때 
의미심장하게 알베르트라는 이름을 두 번씩이나 입밖에 내는 것이었네. 
"알베르트가 누군가요?" 하고 나는 로테에게 물었지. 
"묻는 것이 실례가 될지도 모르지만......"
로테가 대답을 하려는 순간에 우리는 커다란 8자를 그리기 위해 서로 떨어져야만 했네. 
그랬다가 그 도중에 서로 스쳐 지나게 되었을 때 보니, 
그녀의 얼굴에 뭔가 생각에 잠긴 듯한 표정이 나타나 있더군 
"뭘 숨기겠어요" 프롬나드로 이행하기 위해 나에게 손을 내밀면서 그녀가 말했네. 
"알베르트는 착실한 분으로, 저하고는 약혼한 것이나 다름없는 사이에요" 
그건 처음 듣는 말은 아니었지(오는 도중에 그 아가씨들한테 들었으니까). 
그런데도 나는 처음 듣는 소리 같았네. 
잠깐 사이에 나에게 이토록 소중한 존재가 된 이 여인과 
그 이야기를 결부시켜 생각하지 않았었기 때문이지. 
나는 머리가 혼란해지고 멍청해져서, 엉뚱한 조의 두사람 사이로 비집고 들어가 버렸네. 
그 바람에 전체적인 진행이 뒤범벅이 되었지. 
그런데 로테가 침착하게 나를 이끌어 주었으므로, 곧 원상으로 회복이 되었네. 
댄스가 아직 끝나기 전에 번개 치는 도수가 잦아지기 시작했네. 
벌써 아까부터 지평선 저 쪽에서 번쩍번쩍했는데, 
나는 그 것을 기온이 내려가고 있기 때문이라고 설명했지. 
그런데 이젠 천둥소리가 음악을 압도해 버릴 지경이 되었네. 
이윽고 여자 셋이 대열에서 빠져나가자, 그 파트너인 남자들이 그 뒤를 쫓아갔네. 
홀 전체가 뒤숭숭해지고, 음악소리가 그쳤네. 
한창 즐겁게 놀고 있을 때 불행이나 공포가 엄습해 오면, 
보통 때보다 더 강한 인상을 받게 되는 것은 지극히 자연스러운 일이지. 
그 이유 가운데 하나는 앞뒤의 감정적인 대조가 뚜렸하게 느껴지기 때문이요, 
또 한 가지 더 근본적인 이유는 우리의 감각이 활짝 열려 
그만큼 강한 인상을 받기 쉽게 되어 있기 때문일세. 
몇몇 여자들이 갑자기 얼굴을 기묘하게 찌푸린 것도 
그러한 원인에서 빚어진 결과라고 생각할 수 있겠지. 
분별이 있는 한 여자는 홀 한구석에 가서 창문을 등진 채 귀를 막고 있었네. 
또 어떤 여자는 그 앞에 꿇어앉아서 상대방 여자의 무릎에 얼굴을 파묻고 있었네. 
또 한 여자는 그 두 사람 사이에 파고들더니, 눈물을 흘리며 친구를 껴안았네. 
이성을 잃고 어쩔 줄 몰라하며, 
엉큼한 젊은 남자들의 무례한 행동을 막아 내지 못하는 여자들도 있었지. 
그 뻔뻔스러운 젊은 남자들은, 하늘을 향해 올려지는 불안에 잠기 여인들의 기도를, 
그 아름다운 입술에서 고스란히 자기 것으로 가로채기에 바쁜 것 같았네. 
몇몇 신사들은 천천히 담배나 피우려고 아래로 내려갔네. 
나머지 사람들은 이 집 여주인이 임기웅변의 제안으로, 
덧문이 있고 커튼이 쳐져 있는 방을 제공하겠노라고 해서 그리로 가게 되었지. 
우리가 그 방에 들어서자 로테는 바지런히 오락가락하며 의자들을 둥그렇게 놓더니, 
사람들을 자리에 앉히고 뭔가 게임을 하는 게 어떠냐고 제안을 하는 것이었네. 
"키스타는 달콤한 벌을 받게 될 수도 있겠는걸"하고 
벌써부터 입술을 쑥 내밀며 신명을 내는 사람들도 있었지. 
"숫자 세기 놀이를 해요"하고 로테가 말했네. 
"자, 잘 들으세요. 제가 오른쪽에서 왼쪽으로 차례대로 숫자를 세는 거예요. 
각자 자기 차례의 숫자를 부르고 그 다음 차례로 넘기는 거지요. 
그걸 도화선의 심지가 타 들어가듯이 빨리빨리 불러야만 애요. 
막히거나 틀린 숫자를 부르는 분은 뺨을 맞게 됩니다. 
자, 그럼 시작하겠어요. 천까지예요" 정말 그건 가관이었다네. 
그녀는 한쪽 팔을 내뻗고서 돌아가기 시작했네. 
<하나>하고 첫 번째 사람이 부르고 그 다음 사람이 부르고 그 다음 사람이 <둘>, 
또 그 다음 사람이 <셋>, 이런 식으로 진행되어 가는 거야. 
로테는 차츰 더 빨리 돌아가기 시작했네 
그러자 누군가가 틀렸네. 찰싹, 로테가 뺨을 때렸네. 
와아 하고 웃는 사이에 그 다음 사람도 찰싹! 
그러고는 더욱더 빨리 돌아가는 거야. 나도 두 번 뺨을 얻어맞았는데, 
다른 사람보다 더 세게 때리는 것 같아서 무척 흡족스러웠네. 
온통 웃고 떠들어 대는 바람에 천까지 가기 전에 게임은 끝나 버렸지. 
가까운 사람끼리 저마다 짝을 지어 자리를 뜨기 시작했네.
 소나기는 어느새 그쳐 있었거든. 나는 로테를 따라 다시 홀로 나갔지. 
그 도중에 그녀는 말했네. 
"뺨 때리는 데 정신이 팔려 모두들 소나기고 뭐고 다 잊어버린 것 같더군요" 
나는 대답할 말이 없었네 
"저는" 하고 그녀는 말을 이었네. 
"누구보다 겁이 많은 편인데도, 용기가 있는 체하고 
다른 분들의 기분을 북돋우어 주려 하고 있는 사이에 저도 모르게 힘이 나기 시작하더군요" 
우리는 창가로 다가갔네. 
천둥소리가 멀리서 울리고 아름다운 비가 조용히 땅을 적시고 있었네. 
더할 수 없이 상쾌하고 향기로운 장미냄새가 따뜻한 공기 속에 충만하여 
우리 있는 데까지 풍겨 왔네. 
로테는 창틀에 팔꿈치를 괴고 서서 조용히 바깥을 내다보고 있었네. 
하늘을 우러러보다가 이윽고 나를 보았는데, 그녀의 눈에는 눈물이 괴어 있었네. 
그녀는 자기 손을 내 손위에 얹으며"클롭시록!" 하고 말했네 
나는 곧 로테가 생각하고 있는 클롭시록의 그 장려한 찬가를 마음속에 되새기며, 
그녀가 암호와도 같은 그 말로써 나에게 전달하려 한 감정의 흐름 속에 잠겨들었네. 
나는 벅찬 감명을 억누를 길이 없어, 
몸을 구부려 환희에 넘치는 뜨거운 눈물을 흘리며 그녀의 손에 키스를 했네. 
그러고는 다시 그녀의 눈을 쳐다보았지 거룩한 시인 클롭시록이여! 
이 눈앞으로 다시는 그대의 이름이 사람들의 입에 오르내리며 더럽혀지지 않기를 바라노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