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젊은 베르테르의 슬픔 - 괴테 8.

Joyfule 2009. 12. 3. 06:10
  젊은 베르테르의 슬픔 - 괴테 8.  

6월 19일
지난번 편지는 어디서 끝냈는지 생각이 나지를 않네. 
다만 생각나는 것은, 내가 집에 돌아와서 누운 것이 새벽 2시였다는 것, 
그리고 편지를 쓰지 않고 이야기를 했더라면 
아마도 아침이 될 때까지 자네를 붙잡고 지껄였으리라는 것뿐일세. 
무도회가 끝나고 집으로 돌아올 때의 일은 이야기하지 않았는데, 
오늘도 역시 그런 이야기를 하기에 알맞은 날은 아닌 것같네.
그야말로 근사한 해돋이였어. 
사방은 온통 이슬에 젖은 수풀과 싱그럽게 되살아난 들판이야. 
마차 안에서, 동행한 여자 둘은 꾸벅꾸벅 졸기 시작하였네. 
로테는 나를 보고, 선생님도 좀 주무세요, 하고 권했네. 
자기 때문에 체면 차릴 필요는 없다는 거야 
"아가씨가 잠자지 않는 동안에는" 나는 그렇게 말하며 그녀의 눈을 응시하였지. 
"그 동안엔 나도 졸립지 않아요"그리하여 우리 두 사람은 
로테네 집에 닿을 때까지 그대로 깨어 있었네.
 하녀가 문을 열어 주었는데, 로테의 물음에 대하여, 
아버님도 애들도 여느 때와 같이 아직도 자고 있어요, 하고 대답했네. 
헤어질 때 나는 그 날 중으로 한 번 더 만날 수 있게 해 달라고 그녀에게 말했지. 
로테는 승낙했네. 
그래서 나는 그녀를 찾아갔지 
그 때 이후로, 해와 달과 별들은 물론 변함없이 그 궤도를 돌고 있겠지만, 
나에게는 이제 낮도 없고 밤도 없어졌다네.
 세계가 온통 내 주위에서 사라져 버린 걸세. 
6월 21일
나는 하느님이 성자들을 위해 마련해 둔 것 같은 그런 행복한 나날을 보내고 있네. 
설령 앞으로 내 몸이 어떻게 되든 간에, 내가 인생의 기쁨, 
가장 순수한 기쁨을 맛보지 못했다고는 말할 수 없을 걸세. 
나의 발하임을 자네 알고 있지? 나는 그 곳에 아주 정착하였네. 
거기서 불과 반시간이면 로테네 집에 갈 수가 있다네. 
그 집에 가면 나는 나 자신의 존재를 느낄 수 있는 걸세. 
그리고 인간에게 주어진 모든 행복을.... 
발하임을 산책의 목적지로 선정했을 때, 
나는 그곳이 그토록 천국에 가까운 곳이라고는 꿈에도 생각지 못했네. 
멀리까지 산책을 나가, 나의 모든 소망을 간직하고 있는 그 사냥별장을, 
때로는 언덕 위에서, 때로는 강 건너편의 평지에 서서 바라보기 그 몇 번이었던가! 
사랑하는 친구여! 
나는 인간의 내부에 숨겨져 있는 욕망에 대하여 여러 가지로 생각해 
보았네. 인간은 자기를 발전시키고 새로운 발견을 하기 위하여 여기저기를 헤매어 다니지.
그런가하면 자진하여 속박에 몸을 내맡기고, 
습관이란 궤도를 전혀 돌아보지 않는 내적 충동도 간직하고 있는 걸세. 
신기한 일이지. 이 곳에 와서 언덕 위에서 아름다운 계곡을 내려다보고 있노라면,
내 주위의 모든 것이 내 마음을 매료하는 거야. 
저 작은 숲! 아아, 저 숲 그늘에서 휴식을 취할 수 있었으면! 
저 산봉우리! 아아, 저기서 이 고을 전체를 내려다보았으면! 
연이어져 뻗어 있는 언덕과 정다운 계곡들! 
아아, 저 속에 융합될 수 있었으면! 
나는 서둘러 그 곳으로 갔다가 되돌아왔네. 
내가 바라던 것은 그 곳에 없었네. 
아아, 저 너머 먼 곳은 미래와 비슷해!
크고도 어렴풋한 것이 우리 앞에 조용히 가로놓여 있지. 
우리의 감정도 또 우리의 눈도 그 속에 융합되어 가네. 
그리하여 우리는 동경하는 걸세. 
아아! 우리의 전존재를 내팽개치고, 
단 하나의 위대하고 숭고한 감격의 환희에 충만하고 싶구나, 하고 말일세. 
그러나 아아! 서둘러 그 것에 가 닿아
<저 너머 먼 곳>이 <여기>가 되고 보면, 모든 것이 지금까지와 마찬가지인 걸세. 
우리는 여전히 비관과 옹색 속에 서 있는 거야. 
그리고 우리의 영혼은 어느 틈에 빠져 달아나 버린 청량제를 추구하여 헐떡이는 거지. 
그래서 아무리 마음을 잡지 못하는 방랑자라도 
최후에는 자기의 고향을 그리워하게 되는 걸세. 
자기의 작은 집, 자기 아내의 품, 자식들의 재롱, 처자를 부양하는 일, 
그런 것들 속에서, 넓고 넓은 세계를 돌아다니며 찾아도 찾을 수 없었던 
기쁨을 발견하게 되는 거라네. 
나는 아침해가 떠오름과 동시에 발하임으로 나가네. 
주막집 채소밭에서 완두콩을 따 가지고, 걸상에 앉아 그 깍지를 까며 호메로스를 읽지. 
좁은 부엌에 가서 냄비를 하나 찾아내어 버터를 떠 넣은 다음, 
냄비를 불 위에 얹고 완두콩을 볶는다네. 냄비뚜껑을 덮고 그 옆에 앉아서, 
때때로 냄비를 흔들어 완두콩을 뒤섞기도 하지. 
그러고 있을 때 나는, 
오딧세우스의 정숙한 아내 페넬로페에게 구혼하는 뭇사나이들이 
소와 돼지를 잡아서 각을 떠 그것을 불에 굽는 광경을 눈앞에 떠올린다네. 
나로 하여금 이렇게 평온하고 진실한 감정으로 충만케 해 주는 것은 
부족사회 시대의 생활상, 바로 그것이라네. 
다행이도 나는 그것을 아무런 꾸밈없이 내 생활 속에 얽어 넣을 수가 있는 걸세.
행복한 기분일세. 내 마음은 순진하고 단순한 인간의 기쁨을 감지할 수가 있네. 
그 사람들은 손수 가꾼 양배추를 식탁에 올리고 그것을 맛본다네. 
아니, 양배추만이 아니지. 그것을 심었던 맑게 갠 아침, 
거기에 물을 주며 무럭무럭 자라나는 과정을 즐겼던 흐뭇한 저녁, 
좋았던 나날의 그 모든 것을, 식탁 앞에 앉은 그 시간에 다시 맛볼 수가 있는 것이지.
6월 29일
그저께, 시내의 의사가 법무관 집에 찾아왔었네. 
그 때 나는 로테의 동생들에게 둘러싸여 놀고 있었지. 
어떤 아이는 내몸에 매달리고, 또 어떤 아이는 나에게 장난을 걸었으며, 
나는 또 그들을 간질이면서 한데 어울려 떠들어 대고 있었다네. 
그 의사는 줄곧 커프스 주름이나 칼라 장식을 매만지는 위인인데, 
우리가 놀고 있는 광경을 보고, 인간의 품위를 손상시키는 행동이라고 생각한 모양이었네. 
그의 표정을 보고 그것을 알 수 있었지. 
그러나 나는 그런 것에는 아랑곳없이, 점잖은 설교 따위 할 테면 하라지, 하고 
아이들이 무너뜨린 카드로 만든 집을 다시 지어 주었네. 
그런 일이 있은 후에 그 의사는 온 시내에 험담을 퍼트리고 다닌 걸세. 
법무관네 아이들은 원래 버릇이 없었는데, 
베르테르가 들어서 더욱 못쓰게 되어 버렸다는 거지. 
빌헬름이여, 
이 지상에서 내 마음과 가장 가까운 것은 아이들이라네. 
아이들을 지켜보고 있으면, 사소한 일에서도 
장차 그들이 지녀야만 할 일체의 덕성과 힘이 싹트고 있음을 알 수 있네. 
그들의 거짓 속에 미래의 의연하고 꿋꿋한 성격을 볼 수 있으며, 
장난 속에 세상살이의 위험을 극복해 나가는 유머와 재치를 엿볼 수 있지. 
그 모든 것들이 조금도 손상되지 않고 그대로 나타나는 걸세. 
그 모습을 바라보고 있으면, 나는 언제나 이류의 스승인 
예수의<너희가 어린아이와 같이 되지 아니하면...>
이라고 하는 황금 같은 말씀이 생각나네. 
그런데 현실은 어떤가. 친구여, 
우리와 같은 동등한 존재, 우리가 모범으로 삼아야 할 어린아이들을 
우리는 마치 예속물처럼 다루고 있지 않은가. 
우리네 어른들은, 어린아이들은 그들의 의지를 가져서는 안 되는 줄 알고 있네 
그렇다면 우리네 어른들도 의지를 갖고 있지 않단 말인가?
 나이가 많고 분별이 있기 때문인가! 
오오, 하느님, 당신의 눈에는 다만 
나이 많은 어린이와 나이 적은 어린이가 있을 뿐일 것입니다. 
그리고 어느 쪽을 당신이 더 기뻐하시는지는 
당신의 아들 예수께서 벌써 옛날에 가르쳐 주셨습니다. 
그런데도 사람들은 당신의 아들은 믿으면서도, 
그 분의 말씀에는 귀를 기울이려 하지 않습니다. 
물론 어제 오늘에 비롯된 일은 아니지만, 
어른들은 아이들을 어른의 틀에 넣어서 기르고 있네 
안녕, 빌헬름이여! 더 이상 수다를 떠는 건 그만두기로 함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