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좁은 문 - 앙드레 지드.ㅡ 終

Joyfule 2010. 3. 29. 00:37
 
좁은 문 - 앙드레 지드.39   

오늘 아침 심한 구토로 온몸이 부서지는 것 같았다. 
그 직후에 너무도 심신이 약해지는 것 같아서 잠시 동안은 죽고 싶은 생각이 들었다. 
아니, 그런 것이 아니라 처음엔 온몸에 아주 조용한 평온이 깃들었다. 
그리고는 심한 고통, 육체와 영혼의 전율이 나를 사로잡았다.
그것은 내 생애의 급격하고도 명료한 계시와도 같은 것이었다. 
이 방의 벽이 보기 흉하게 노출되어 있는 것을 처음으로 보는 것 같은 느낌이었다. 
나는 겁이 났다. 
지금도 마음을 안정시키고 가라앉히기 위해 이렇게 쓰고 잇는 것이다.
오오, 주여! 당신을 모독함이 없이 종말에 이르도록 하여 주시옵소서.
나는 아직 일어날 수가 있었다. 어린애처럼 무릎을 끓었다.
이제는 자신이 홀로라는 것을 또다시 깨닫기 전에 빨리 죽고 싶다.
지난 해 나는 줄리에뜨를 다시 만났다.
알리싸의 죽음을 알린 그녀의 마지막 편지를 받은 뒤로 10년 이상이 지났다.
**********************
나는 프로방스 지방에 여행을 갔던 길에 잠시 밈므에 들렀다. 
소란한 도시 중심지인 프쉐르 거리에 위치한 떼씨에르 댁은 퍽 훌륭해 보였다.
 이미 통지는 했지만 막상 문턱을 넘을 때 내 마음은 적지 않게 설레었다.
하녀의 안내로 응접실에 올라가 있노라니 잠시 후에 줄리에뜨가 들어왔다.
쁘랑띠에 이모를 보는 듯했다. 
걸음걸이, 몸맵시하며 반가와 어쩔 줄 모르는 품이 판에 박힌 듯했다. 
곧 내게 여러 가지를 물어 댔다. 
나의 대답은 기다리지 않고, 그간 어떻게 지냈느냐,
 빠리의 거처는 어떠냐, 무슨 일을 하느냐, 
대인 관계는 어떠냐, 남프랑스에는 무슨 일로 왔느냐, 
왜 에그비이브까지 가지 않느냐, 
그곳에 가면 에뜨와르도 퍽 반가와 할 텐데 등. 
그리고는 자기 남편, 어린애들, 자기 동생, 추수 이야기,
그리고 불경기 등 여러 가지 소식을 들려 주었다.
로베르는 퐁궤즈마르 집을 팔고 에그비이브에 와 산다는 것, 
지금도 에뜨와르와 동업을 하고 있어 에뜨와르는 여행도 하고 
자기 사업상의 판매고를 더욱 확장하는 데 전심할 수도 있다는 것, 
한편 로베르는 밭에 남아 여러 가지 계획을 
확장 개선하고 있다는 것을 나는 알았다.
그러는 동안 나는 불안한 마음으로 
과거를 회상시켜 줄 것이 없나 찾아보았다. 
나는 응접실의 새 가구 중에 퐁궤즈마르에 있던 
가구가 몇 개 끼어 있는 것을 분명히 알아보았다. 
그러나 내 마음 속에서 떨고 있는 이 과거를 
줄리에뜨는 모르거나 그렇지 않으려고 애쓰고 있는 것 같았다.
열 두서너 살짜리 사내아이 둘이 계단에서 놀고 있었다. 
그녀는 그들을 부러 내게 인사를 시켰다. 
맏딸인 리즈는 제 아버지를 따라 에그비이브에 가고 없었다. 
산책 나간 열 살짜리 사내 아이도 
곧 낳게 되리라던 아이가 바로 이 아이였던 것이다. 
이 마지막 출산은 난산이었으며 
그로 인해 줄리에뜨는 오랫동안 고생을 했다는 것이었다. 
그리고 지난해, 마음을 돌이킨 듯 그녀는 또 딸을 낳았는데 말
하는 걸 들어보니 다른 아이보다 
이 아이를 특히 더 귀여워하고 있는 모양이다.
"그 애가 자고 있는 방이 바로 내 옆방이에요."하고 그녀는 말했다.
"가보지 않겠어요?"
그래서 내가 따라가자,
"오빠, 편지로는 부탁할 용기가 나질 않았는데...
이 애 대부가 돼주시겠어요?"
"좋다면야 그렇게 하지."
나는 약간 놀란 채 요람을 들여다보며 말했다.
"이름이 뭐지?"
"알리싸...."
줄리에뜨는 나지막한 소리로 대답했다.
"좀 닮은 것 같지 않아요?"
나는 대답 없이 줄리에뜨의 손을 꼭 쥐었다. 
그 작은 알리싸는 어머니가 안아 일으키자 눈을 반짝 떴다. 
나는 어린애를 받아 안았다.
"오빠는 정말 훌륭한 아빠가 될 거예요."
줄리에뜨는 애써 웃으면서 말했다.
"언제까지 결혼하지 않을 작정이세요?"
"여러 가지 일을 잊을 때까지."
나는 그녀의 얼굴이 붉어지는 것을 보았다.
"곧 잊고 싶으세요?"
"언제까지나 잊고 싶지 않아."
그녀는 불쑥,"이리로 오세요."하고는 
좀더 작고 벌써 어둠이 깃든 방으로 앞장서 들어갔다.
그 방에는 두 개의 문이 있어 하나는 줄리에뜨의 방으로 통해 있고 
다른 하나는 응접실로 통했다.
"잠시라도 틈이 있으면 이 방에서 쉬곤 해요. 
이 집에선 제일 조용한 방이에요. 
여기에 오면 생활의 피난처 같은 느낌이 들어요."
이 작은 방의 창은 다른 방들처럼 시가지의 소음이 
들리는 곳으로 나 있지 않고 나무가 있는 안뜰을 향하고 있었다.
"앉으세요." 그녀는 안락의자에 힘없이 앉으면서 말했다.
"내 생각이 틀리지 않는다면, 
오빠는 언제까지나 알리싸의 추억에 성실하려는 거죠?"
나는 잠시 대답 없이 앉아 있었다.
"오히려 알리싸가 나에 대해 생각하여 주던 것에 관해서겠지..
.아니, 내가 무슨 칭찬받을 일이나 한 것처럼 생각지는 말아.
그렇게 할 수밖엔 없었다고 생각해. 
설사 다른 여자와 결혼을 한다 할지라도 
나는 단지 그 여자를 사랑하는 척 할 수밖엔 없을 것 같아."
"아아!" 그녀는 짐짓 무관심한 척했다. 
그리고는 내게서 얼굴을 돌리더니 무슨 잃어버린 물건이라도 
찾아내려는 것처럼 마룻바닥을 내려다보고 있었다.
"그렇다면 아무런 희망도 없는 사랑이 
그처럼 오래도록 마음 속에 간직될 수 있다고 생각하세요?..."
땅거미가 잿빛 밀물처럼 몰려와 물건들을 하나하나 어둠 속에 잠기게 하자, 
이러한 물건들은 어둠 속에서 되살아나 
제각기 지난날의 추억을 속삭이는 것 같았다. 
나는 알리싸의 방을 다시 보는 듯했다. 
줄리에뜨가 이 방에 그 모든 가구를 옮겨다 놓은 것이었다. 
이제 그녀는 다시 내게로 얼굴을 돌렸다. 
이미 얼굴을 윤곽을 구별할 수 없어, 
그녀가 눈을 감고 있었는지 알 수가 없었다. 
그녀는 몹시 아름다워 보였다. 
그리고 우리 두 사람은 아무 말 없이 앉아 있었다.
"자! 이젠 잠을 깨야죠...."
마침내 그녀가 입을 열었다.
나는 그녀가 일어서는 것을 보았다. 
그리고는 한걸음 내밀더니 맥이 빠진 듯 
곁에 있는 의자에 다시 털썩 주저앉는 것이었다. 
그녀는 두 손을 얼굴로 가져갔다. 울고 있는 것 같았다.
램프를 들고 하녀가 들어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