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감성을 위한 ━━/세계문학

좁은 문 - 앙드레 지드.38

Joyfule 2010. 3. 27. 06:30
 
좁은 문 - 앙드레 지드.38   

10월 2일
오늘 내 영혼은 하늘에 등지를 친 새처럼 가볍고 즐겁다.
그는 틀림없이 오늘 올 것이다. 
나는 그것을 느끼고 또 알고 있다. 
모든 사람들에게 그것을 외치고 싶다. 
여기에도 그것을 적어야겠다. 
내 기쁨을 숨기고 싶지는 않다. 
평소에는 그처럼 방심한 채 내게 무관심한 로베르조차도 나의 기쁨을 알아챘다. 
그가 묻는 말에 나는 당황했고 또 무엇이라 대답해야 할지 몰랐다. 
저녁까지 어떻게 기다릴까? 
알 수 없는 투명한 띠가 어느 곳을 보아도 
그의 모습을 크게 확대시켜 내 눈에 비추어 주며 
사랑의 모든 빛을 내 마음의 단 하나 초점 위에 집중시키고 있다.
오오! 기다림이란 이다지도 나를 지치게 하는 것일까!
주여, 행복의 그 큰 문을 잠시 동안만이라도 제게 보여 주시옵소서!
10월 3일
모든 것이 꺼져 버렸다. 
아아! 그는 마치 그림자처럼 나의 두 팔에서 빠져나갔다. 
바로 저기에, 저기에 그가 있었다. 
아직도 나는 그를 느끼고 있다. 
나는 그를 부르고 있다. 
내 손, 내 입술이 어둠 속에서 그를 찾고 있다. 헛되이....
나는 기도할 수도 없고 잠들 수도 없다. 
다시 어두운 정원으로 나갔다. 
내 방에서나 집안 어디서나 그저 무섭다. 
슬픈 마음에 못이겨 나는 그를 뒤에 남긴 채 돌아와 버린 문까지 다시 갔다. 
어리석은 희망을 품고 그 문을 열어 보았다. 
그가 돌아와 있었으면! 
나는 불러 보았다. 어둠 속을 더듬었다. 
그에게 편지를 쓰려고 집으로 돌아왔다. 
이 슬픔을 지탱할 길이 없다.
무슨 일이 있었던가? 
그에게 무엇이라 이야기했던가? 내가 무엇을 했던가? 
부슨 필요로 나는 그의 앞에서 언제나 나의 덕을 과장하는 것일까? 
나의 온 마음이 부정하는 덕이 무슨 가치가 있는 것일까?
하느님이 나의 입술에서 나오게 하신 말씀을 나는 몰래 배반하고 있었다. 
내 마음 속에 가득 차 있던 것은 하나도 이야기하지 않았다. 
제로옴, 제로옴! 곁에 있으면 내가 죽을 것 같은 나의 불쌍한 벗, 
내가 이야기한 것 중에서 내 사랑이 네게 들려 주었던 것 외에는 다 잊어 줘.
편지를 썼다가 찢어 버렸다. 
그리고 다시 썼다. 벌써 새벽이다. 
내 마음처럼 슬프고 눈물에 함빡 젖은 잿빛의 새벽...
농장에서 일 시작하는 소리가 들리고 
잠들었던 모든 것이 다시 활기를 띠기 시작한다.
'이제는 일어나라. 때가 왔느니라.'
편지는 부치지 않겠다.
10 월 5일
저를 앗아가 버리신 질투심 많은 하느님, 
이제는 저의 마음을 독점하시옵소서. 
이제는 어떠한 열정도 이 마음을 저버릴 것이오며, 
어느 하나 이 마음을 움직이지 못할 것입니다. 
그러하오니 아직도 제 마음에 남아 있는 
슬픔의 찌꺼기를 이겨내도록 도와 주시옵소서. 
이 집, 이 정원이 어쩔 수 없이 제 사랑을 북돋우고 있습니다. 
당신만을 볼 수 있는 곳으로 달아나고 싶습니다.
제가 가지고 있는 재산은 
가난한 사람을 위해 처분하도록 도와 주시옵소서. 
제가 쉽사리 팔 수 없는 퐁궤즈마르의 이 집만은 
로베르에게 주는 것을 허락하여 주시옵소서. 
유언장은 썼지만 필요한 수속 절차는 거의 아무것도 모른다. 
그리고 어제 공증인을 만났을 때도 그가 내 결심을 눈치채고 
줄리에뜨나 로베르에게 알릴가 두려워서 충분히 이야기하지 못했다. 
빠리에 가서 이 일을 마치자.
10월 10일
이곳에 도착하자 너무도 피곤해서 처음 이틀간은 꼼짝 못하고 누워 지냈다.
내가 싫다는 데도 청해 온 의사는 꼭 수술을 해야 한다고 말했다. 
하지만 반대한들 무슨 소용이 있으랴? 
그러나 나는 수술하기가 무섭다는 것과 
기운이 좀 회복될 때까지 기다리는 것이 좋을 것 같다는 것을 
쉽사리 의사에게 납득시킬 수가 있었다.
이름과 주소도 숨길 수가 있었다. 
나를 이곳에 받아들이고 또 하느님께서 필요하다고 생각하시는 동안은 
아무런 곤란이 없도록 나는 이곳 사무실에 충분히 돈을 맡겨 놓았다.
방도 마음에 든다. 
깨끗하다는 것만으로도 충분히 벽의 장식이 된다. 
나 자신 스스로 기쁨마저 느끼는 데 놀랐다. 
생에 대한 아무런 애착이 없기 때문이다.
이제는 하느님만으로 만족해야 하고 
또한 하느님의 사랑은 우리의 마음을 완전히 차지하실 때 
비로소 기쁨을 주기 때문이다.
성경 외에는 아무 책도 가져오지 않았다. 
하지만 오늘은 그 안에 적혀 있는 말씀보다도 
빠스깔의 그 열광적인 흐느낌 소리가 
더 강하게 내 마음속에서 메아리치고 있다.
'하느님이 아니라면 아무것도 나의 기다림을 채워 줄 수 없다.'
오오, 경솔한 내 마음이 바랐던 것은 너무나도 인간적인 기쁨이었다. 
주여! 이 외치는 소리를 듣기 위해 당신은 나를 절망 속에 빠뜨렸나이까?
10월 12일
당신의 통치가 군림하옵기를! 
저의 마음 속에 군림하옵기를. 
그리하여 당신만이 나를 다스려 주소서. 
이제는 아낌없이 이 마음을 송두리째 당신께 바치겠나이다.
퍽 노쇠한 것처럼 피곤하면서도 내 영혼은 이상한 동심을 간직하고 싶다.
방안의 모든 것이 잘 정돈되고 머리맡에 벗어 둔 옷이 잘 개어 있지 않으면 
잠들 수 없었던 지난날의 소녀 그대로의 마음이다.
죽을 준비도 그렇게 했으면 좋겠다.
10월 13일
찢기 전에 다시 한번 일기를 읽었다. 
'자기가 느끼는 괴로움을 털어놓는 것은 
훌륭한 마음을 지닌 사람으론 할 수 없는 일이다.' 
이 아름다운 말은 끌로떨드 드보가 한 것이라고 생각한다.
(실증주의 사상가 오귀스뜨 꽁뜨의 애인이 젊은 미망인)
이 일기를 불 속에 던지려는 순간 일종의 경고와 같은 것이 나는 제지했다.
이미 이 일기는 내 것이 아닌 것처럼 생각되었다. 
그것을 제로옴에게서 빼앗을 권리가 내게는 없다는 것, 
그리고 그것은 단지 그를 위해서 썼다는 생각이 들었다. 
내가 품었던 걱정이나 근심도 이제 와서는 너무도 어리석은 것으로 생각되어 
이제는 거기에 아무런 중요성도 없게 되었고 
제로옴이 그로 인해 고민하리라고는 생각지 않는다.
주여, 저 자신은 이미 도달할 수 없어 단념해 버린 덕의 절정까지 
그만이라도 밀어올리려고 미칠 듯이 바랐던 이 마음의 어설픈 표현을 
그가 이일기장 속에서 때로 찾아볼 수 있도록 하여 주옵소서.
'주여, 제가 이르지 못한 
그 바위 위로 저를 인도하여 주시옵소서.'(시편 31편 3절)
10월 15일
'기쁨, 기쁨, 기쁨, 기쁨의 눈물...'
(빠스깔이 결정적인 개종 후 옷 속에 꿰매어 넣고 다녔다는 기도문)
인간적인 기쁨과 모든 고통을 초월한 곳에서, 
그렇다! 나는 이 찬란한 기쁨을 예감한다. 
내가 다다르지 못한 그 반석의 이름이 '행복'이라는 것을 나는 안다. 
나는 행복에 도달하기 위한 것이 아니라면 
나의 삶은 헛된 것이라는 사실을 잘 알고 있다. 
그러나 아아! 주여! 
그러하오나 당신께서는 욕심 없는 깨끗한 영혼에게는 그것을 약속하셨습니다. 
당신의 성스러운 말씀은 
'주 안에서 죽는 자는 지금부터 행복하리라'라고 말씀 하셨습니다. 
저는 죽을 때까지 기다려야 하옵니까? 
여기에서 저의 신앙은 동요된 것입니다. 
주여, 힘껏 당신께 외치옵니다. 저는 어둠 속에 있사옵니다. 
새벽을 기다리고 있사옵니다. 
목숨이 다하도록 당신께 외치고 있나이다. 
제 마음의 갈증을 풀어 주시옵소서. 
저는 바로 이 행복에 대한 갈증을 느끼고 있사옵니다. 
혹은 이 행복을 가지고 있다고 자위해야 하겠나이까? 
새벽도 되기 전에, 날이 밝아 오는 것을 알린다기보다는 
그것을 부르고 있는 애타는 새처럼 
저는 밤이 새기를 기다리지도 않고 노래를 불러야 하겠나이까?
10월 16일
제로옴, 나는 네게 완전한 기쁨을 가르쳐 주고 싶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