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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라카미 하루키 : 침 묵2

Joyfule 2010. 3. 31. 10:29
 
 무라카미 하루키 : 침  묵2  
그는 그렇게 말했다. 
"한마디로 고독이라지만 실은 여러 종류의 고독이 있습니다. 
신경을 갉는것 처럼 괴롭고 슬픈 고독도 있습니다. 
그러나 그렇지 않은 고독도 있어요. 
그러한 고독을 얻기 위해서는 자신의 살을 깎지 않으면 안됩니다. 
하지만 노력하면 그만한 것이 되돌아옵니다. 
그것이 내가 복싱에서 배운것 중의 하나였습니다." 
오사와 씨는 한 20초 정도 침묵하였다. 
"나는 정말 이 이야기는 하고 싶지 않았습니다."라고 그는 말했다. 
"가능하다면 그런 일은 깨끗하게 잊고 싶습니다. 
그러나 물론 잊을 수 는 없지요. 
잊고 싶은 것은 절대로 잊혀지지 않는 법입니다."
오사와 씨는 그렇게 말하며 웃었다. 
그리고는 자기 손목 시계를 보았다. 시간은 아직도 충분히 있었다. 
그는 천천히 이야기를 시작했다. 
2) 그때 오사와 씨가 때린 남자는 같은 반 학생이었다. 
아오키라는 이름 이었다. 오사와 씨는 원래부터 그 남자를 싫어했다. 
왜 그렇게 싫어하게 되었는지 그 자신도 잘 이해할 수 없었지만,
처음 보았을 때부터 그 남자 가 견딜 수 없이 싫었다. 
누군가를 그렇게 명료한 형태로 싫어해 보기는 난생 처음이었다. 
"그런 일이 있잖습니까?"라고 그가 말했다. 
"어떤 사람이든 일생에 한번은 누군가를 싫어하게 되는 
그런 일이 있지 않나 생각합니다. 
아무 까닭없이 그냥 싫은것이죠. 
나 자신은 아무 이유없이 타인을 싫어하는 인간은 아니라고 생각하는데, 
그래도 역시 그런 상대가 있더군요. 
앞뒤를 따져서 그렇다는 것이 아닙니다. 
그리고 문제는 대부분의 경우 상대방 역시 
비슷한 감정을 나에게 품고 있다는 것입니다. 
아오키는 공부도 아주 잘하는 남자였죠. 
거의 늘 일등을 차지했습니다.
내가 다니던 학교는 남자들만 다니는 사립고등학교였는데, 
그는 인기도 꽤 좋았습니다. 
반에서도 눈에 띄었고 선생님들도 귀여워했어요. 
성적 이 좋은데도 절대로 우쭐거리지 않고 성품도 시원스럽고 
부담없이 농담도 하는 그런 남자였습니다. 
그런데다 조금은 정의파 같은 구석도 있어서... ... 하지만 나는 
그 배후로 언뜻언뜻 비치는 잔꾀와 본능적인 계산벽이 
못 마땅해서 참을 수가 없었습니다. 
구체적으로 어떤 것이냐고 물어도 대답하기가 곤란합니다. 
구체적인 예를 들 수 없으니까요. 
다만 나만은 그것을 알 수 있었다고밖에 표현할 길이 없습니다. 
나는 그 남자의 몸에서 발산되는 
에고와 자존심의 냄새를 생리적으로 견딜 수 없었습니다. 
어떤 사람의 체취를 생리적으로 견디지 못하는 것과 똑같습니다. 
아오키는 머리가 좋은 남자라서 그런 냄새를 아주 교묘하게 감추고 있었죠. 
그래서 대부분의 반 친구들은 
그를 머리가 상당히 좋은 친구라고만 여기고 있었습니다. 
나는 그런 의견을 들을 때마다 -물론 불필요한 말을 하지는 않았지만-
어쩐지 몹시 불쾌해졌습니다. 
아오키와 나는 모든 의미에서 대조적인 입장이었습니다. 
나는 오히려 말이 없고 반에서도 별로 눈에 띄지 않는 인간이었죠. 
애당초 눈에 띄기를 그다지 좋아하지도 않았고, 
혼자 있어도 그렇게 고통스럽지 않았습니다. 
물론 친구도 몇명 있었습니다. 
하지만 그렇게 친밀한 관계는 아니었어요. 
나는 어떤 의미에서는 조숙한 인간이었습니다. 
같은 반 아이들과 사귀기보다는 
혼자서 책을 읽거나 아버지의 클래식 음반을 듣거나 
체육관에 다니면서 손위 사람들의 이야기를 듣는 편이 좋았습니다. 
나는 보시다시피 용모도 별로 특별한 구석이 없는 편입니다. 
성적은 뭐 그런대로 나쁜편은 아니었지만 그렇다고 좋은 것도 아니었고 
선생님들은 곧잘 내 이름을 잊었습니다. 
그런 타입이었던 거죠. 
그래서 나 역시 자기자신을 밖으로 드러내지 않도록 애를 썼습니다. 
체육관에 다닌다는 이야기는 물론이고 
읽은 책이나 음악 이야기도 아무한테도 하지 않았죠. 
그런 나에 비하면 아오키라는 남자는 
무슨 일을 하는 뻘구덩이속의 백조처럼 눈에 띄었습니다. 
아무튼 머리가 좋았어요.그 점은 나도 인정합니다. 
회전이 빨라요. 
상대방이 무얼 원하는지, 무슨 생각을 하고 있는지 
그런것을 마치 자기 손바닥을 들여다보듯 아무 어려움없이 순식간에 알아차려요. 
그리고는 그에 따라 자신의 태도를 바꿉니다. 
그래서 모두들 아오키 한테 감탄하고 말죠.
저 놈은 머리도 좋고 굉장한 놈이라고 말입니다. 
하지만 나는 그렇게 생각지 않았어요. 
내가 보기에 아오키라는 인간은 너무 천박했습니다. 
저런 녀석의 머리를 좋다고 한다면 
나는 머리 따위 좋지 않아도 상관없다고 그런 생각까지 했습니다. 
어쨌든 그 남자의 머리는 칼처럼 정확하고 날카롭게 돌아가죠. 
그러나 그 남자에게는 자기자신이란 것이 없었어요. 
타인에게 이것만큼은 주장하고 싶다. 
뭐 그런게 없었다는 말입니다. 
모두가 자기를 인정해 주기만 하면 그것으로 만족이었죠. 
그런 자신의 재능에 도취되어 있었어요. 
바람 부는대로 그저 빙글빙글 돌기만 했어요. 
하지만 아무도 그의 그런 이면을 깨닫지 못했습니다. 
그것을 알고 있는 것은 오로지 나뿐이었습니다. 
아오키 쪽도 그런 나의 심리를 암암리에 알고 있었으리라 생각합니다. 
눈치가 빠른 남자였으니까요. 
아니 그는 나를 불길한 존재로 느끼지 않았나 싶은 기분마저 듭니다. 
나도 바보는 아닙니다. 별 대수로운 인간은 아니지만, 
나는 그때부터 내 자신의 세계를 갖고 있었습니다. 
반에서 나만큼 책을 많이 읽은 인간은 없었을 겁니다. 
나자신은 표시내지 않으려 애썼지만, 아직 철이 덜 든 때였기도 하니 
어쩌면 그런것을 은연중에 내세우며 
타인을 깔보는 구석이 있었을지도 모르겠군요. 
그리고 그런 무언의 자부심 같은 것이 아오키를 자극하지 않았나 싶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