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좁은 문 - 앙드레 지드.10

Joyfule 2010. 2. 22. 00:59
  좁은 문 - 앙드레 지드.10   
이모가 따난 며칠 후인 어느 날 저녁 
우리는 식탁에 앉아 이모 이야기를 했다. 
지금도 그것이 생각난다.
"왜 그렇게 법석이람!"하고 우린 말했다.
"인생의 파도는 그다지도 그의 영혼에 휴식을 줄 수 없는 것일까? 
아름다운 사랑의 모습이여, 그의 그림자는 여기서 무엇이 되었는가?"
...라고 한 건 괴에테가 슈타인 부인을 두고 
'이 영혼 속에 세계가 비치는 것은 보기에도 아름다우리라'고 
쓴 말이 생각았기 때문이었다. 
그러고 나서 우리는 대번 무슨 등급 같은 것을 정하고 
가장 으뜸가는 등급은 명상의 능력이라는 판단을 내렸다.
그때까지 잠자코 계시던 삼촌이 쓸쓸히 웃으면서 이야기를 이으셨다.
"얘들아, 비록 부서져 있다 하더라도 하느님은 당신의 모습은 알아 보신단다. 
사람의 생애 중에 어느 한 시기만을 가지고 그 사람을 판단하는 것은 피하자. 
너희들이 싫어하는 모든 점은 더 여러 가지 사건 때문에 그렇게 된 것이고, 
그런 사건을 너무나 잘 알고 있는 나로서는 
너희들처럼 가혹하게 그를 비난할 수가 없다. 
젊은 시절에 남들이 좋아하는 성격도 늙어 갈수록 타락되는 거란다. 
지금 너희들이 분주하다고 부르는 펠리씨 이모의 성격도 
처음에는 생기 발랄하여 귀엽고 생각나는 대로 해버린다든가 
소탈하다든가 애교가 있다든가 하는 것으로 여겨졌던 것이다.
 ...우리도 지금의 너희들과 비슷하다. 
나는 너와 퍽 비슷했었다. 제로옴, 
아마 지금 생각하기보다도 훨씬 더 비슷했었을 거야. 
펠리씨는 또 지금의 줄리에뜨와 아주 비슷했다... 그래, 몸맵시까지도...."
그리고 문득 삼촌은 그 딸을 돌아보면서 말했다.
"네 목소리를 들으면 펠리씨 목소리를 듣는 것 같다. 
미소지을 때도 너와 같았다. 
그리고 이건 얼마 안 가서 없어졌지만 
가끔 아무것도 안하고 의자에 앉아서 팔꿈치를 짚고 
깍지 낀 두 손을 이마에다 갖다대곤 가만히 있곤 했었다."
미스 아슈뷔르똥은 나를 돌아보고 속삭이듯이 말했다.
"네 어머니 모습을 지닌 것은 알리싸다."
그해 여름은 찬란했다. 
만물에 푸른 하늘이 스며든 것 같았다. 
우리의 열정은 불행도 죽음도 극복하고 있었다. 
어둠은 우리 앞에서 물러났다. 
아침마다 나는 기쁨으로 잠을 깼다. 
동틀 무렵이면 일어나서 해를 맞으러 달려가곤 했다
... 지금도 그때를 회상해 보면 이슬로 함빡 젖은 시절이었다. 
늦도록 자지 않는 습관이 있었던 알리싸에 비해 
아침 일찍 일어나는 줄리에뜨는 나와 함께 정원으로 내려가곤 했다. 
자기 언니와 나 사이에서 그녀는 심부름꾼의 역할을 하고 있었다.
나는 끊임없이 그녀에게 우리의 사랑을 이야기했고 
그녀도 내 이야기에 싫증을 내는 것 같지 않았다. 
알리싸 앞에서는 너무나 격정적인 사랑으로 인한 조심과 압박감 때문에 
감히 하지 못하던 이야기도 줄리에뜨에게는 털어놓았다. 
알리싸도 나의 이런 장난을 눈치챈 것 같았다. 
우리가 자기에 관한 이야기를 하고 있다는 사실을 몰랐는지 
혹은 모르는 척한 것인지, 자기 동생 앞에서 내가 
아주  쾌활하게 이야기하는 것을 보고도 재미있어 하는 것 같았다.
아! 사랑의, 벅찬 사랑의 가장된 미묘함이여! 
어떤 비밀의 길을 거쳐 그대는 우리를 웃음에서 눈물로, 
가장 천진한 기쁨에서 덕행의 요구로 이끌어 가는가!
그 여름은 너무도 맑게, 너무도 매끄럽게 가버렸기 때문에
 나는 그 가버린 날들에 대해 이제 아무런 기억도 남은 것이 없다. 
그 무렵에 있었던 일이란 단지 이야기와 독서 뿐....
"슬픈 꿈을 꾸었어."
방학이 끝날 무렵의 어느 날 아침 알리싸가 내게 말했다.
"난 살아 있었는데 넌 죽어있었어. 
아니, 네가 죽는 걸 본 건 아니고 단지 네가 죽어 버렸다는 거야. 정말 무서웠어. 
그건 너무나도 터무니없는 일이어서 네가 잠시 어디 가고 없을 따름이라고 마음 먹었어. 
우리가 떨어져 있기는 했지만 꼭 다시 만날 길이 있는 것처럼 느껴졌어. 
어떻게 하면 되나 하고 안간힘을 쓰다가 잠이 깼어."
"아침에도 꿈속에 있는 것 같았어. 
꼭 그 꿈을 계속하는 것 같았어.
 여전히 너와 떨어져 있는 것 같았고, 앞으로도 오래오래..."
하고는 낮은 소리로 덧붙였다.
"일생 동안 떨어져 있게 될 것 같았어. 
그리고 일생 동안 몹시 애를 써야 될 것 같았어...."
"어째서?"
"저마다 서로를 만나기 위해 몹시 애써야만 할 것 같았어."
나는 그녀의 이야기를 정색해서 받아들이지 않았거나 
혹은 정색해서 받아들이기가 두려웠다. 
나는 가슴을 두근거리며 그녀에게 반박이나 하려는 듯이 
갑자기 용기를 내어 이렇게 말했다.
"그런데 난 오늘 아침 어찌나 너와 결혼하려고 했던지, 
죽음 밖에는 아무것도 우리를 떼어 놓지 못하리라는 꿈을 꾸었어."
"너는 죽음이 우리를 떼어 놓을 수 있으리라 생각해?"하고 그녀는 말을 받았다.
"말하자면...."
"나는 오히려 죽음이 접근시켜 줄 것 같은 생각이 드는데... 
그래 생전에 떨어져 있던 것을 접근시켜 줄 거야."
이 이야기는 모두가 골수에까지 사무쳐 지금도 그 말의 억양까지 들리는 둣하다. 
그러나 나는 그 말이 지닌 중대한 뜻을 훨씬 후에야 깨닫게 되었던 것이다.
여름은 사라져 가고 있었다.
벌써 들판은 대부분 텅 비어 있었고 
시야는 더욱 허전하게 넓어졌다. 
내가 떠나기 전날, 아니 그 전전날  
줄리에뜨와 같이 나는 아래 정원 숲으로 내려가고 있었다.
"어제 저녁 알리싸에게 암송해 준 게 뭐지?"줄리에뜨가 물었다.
"언제 말야?"
"그 폐광 벤치에서 말이야. 둘이만 남겨놓고 우리가 먼저 와버렸을 때...."
"아아, 보드레르의 시 구절이었을 거야...."
"어느 거지? 내게는 말해 주고 싶지 않아?"
이윽고 우리는 차가운 어둠 속에 잠기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