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좁은 문 - 앙드레 지드.9

Joyfule 2010. 2. 20. 09:13
  좁은 문 - 앙드레 지드.9   
그로부터 며칠 후에 시작된 부활절 방학을 나는 르아브르에서 지냈다. 
묵기는 쁠랑띠에 이모 댁에서 묵었지만 
식사는 거의 뷔꼴랭 삼촌 댁에서 했다. 
펠리씨 쁠랑띠에 이모는 더할나위 없이 훌륭한 부인이었지만 
내 사촌 누이들과 나는 그리 친숙하게 지내지 못했다. 
늘 숨이 턱에 닿을 정도로 분주했다. 
태도나 음성이 다같이 거칠었다. 
아무 때나 우리들이 귀여워 죽겠다는 듯 귀찮을 정도로 애무를 하는 것이었다. 
뷔꼴랭 삼촌도 이모를 퍽 좋아했지만 
이모와 이야기하는 목소리만으로도 
얼마나 어머니를 더 좋아했던가 넉넉히 짐작할 수가 있었다.
"얘야."
어느날 저녁 이모가 말했다.
"네가 올 여름엔 뭘 할 작정인지 모르지만 
내 할 일을 결정하기 전에 네  계획부터 좀 알았으면 좋겠다. 
혹 네게 도움이 될 수 있다면...."
"아직 별로 생각해 보지 못했어요."하고 나는 대답했다.
"여행이나 해볼까 생각합니다."
이모가 말을 이었다.
"알겠지만 퐁궤즈마르와 마찬가지로 
우리 집에서도 애가 오는  것은 언제든지 환영이다. 
하긴 거기에 가면 삼촌이랑 줄리에뜨가 반가와하겠지만...."
"알리싸 말씀이죠?"
"참 그렇구나! 미안하다. 
네가 좋아하는 건 줄리에뜨라고 생각했구나! 
네 삼촌이 이야기해 주기 전까지는... 
그게 아직 한 달도 채 못됐다... 
알다시피 난 너희를 퍽 사랑하지만 잘 알지는 못하는구나. 
너희들을 만나볼 기회가 별로 없었으니 말이다. 
게다가 난 또 살피는 성격이 못돼서 나와 관계 없는 일은 살펴볼 겨를이 없었다. 
너는 노상 줄리에뜨하고만 놀길래... 
난 생각하길... 그 애는 참 예쁘고 활달하니까."
"네, 저는 여전히 그 애하고 잘 놀아요. 
하지만 제가 사랑하는 건 알리싸입니다."
"옳아! 옳아, 그야 다 너 좋을 대로가 아니냐. 
난 말하자면 그 내를 전혀 모른다 해도 과언이 아니니까. 
그 애야 어디 그렇게 말이 있니? 
어쨌든 네가 그 애를 택했을 때야 무슨 그만한 이유가 있었겠지."
"하지만 이모님, 저는 알리싸를 골라서 사랑한 것은 아닙니다. 
그리고 또 이유 같은 것도 생각해 본 적이 없어요..."
"화낼 건 없다. 제로옴. 악의로 한 말은 아니니까... 
네 말을 듣다 보니 무슨 말을 하려했는지 깜빡 잊었구나... 
옳지 옳지! 그러니 결국 만사는 혼인을 해야 끝장이 나는 건데, 
네 복장 때문에  벌써 청혼을 할 수야 없지 않니? 예법상 말이다. 
게다가 넌 또 아직 어리고... 
그래 내 생각으로는 어머니와 함께도 아니고 하니 
네가 퐁궤즈마르에  가는 것도 좀 쑥스러워 보일지 모르고...."
"글쎄, 제가 여행 이야길 꺼낸 것도 바로 그 때문입니다."
"그래, 그러니 말이다. 내가 있으면 만사가 순조로울 것 같아서 
이번 여름 한 달 동안만은 여유를 두었단다."
"제가 말만 하면 미스 아슈뷔르똥이 와줄 텐데요."
"그녀가 와 주리라는 건 나도 알고 있다. 
하나 그것만으론 충분치가 못해! 나도 함께 가지. 
아니, 내가 가엾은 어머니 구실을 대신 하겠다는 건 아니다."
이모는 갑자기 흐느끼면서 말했다.
"단지 집안 일을 돌볼 작정이다... 
그러면 너나 삼촌이나 알리싸가 어색해지지 않을 테니 말이다."
펠리씨 이모는 자신이 우리와 함께 있는 일의 효과를 착각하고 있었다. 
사실 우리는 단지 이모 때문에 거북살스러웠다. 
예정대로 이모는 7월부터 퐁궤즈마르에 와 있었고 
미스 아슈뷔르똥과 나도 곧 따라왔다. 
알리싸의 집안 일을 거들어 준다는 구실로 
그처럼 조용하던 이 집안을 늘 시끄럽게 했다. 
우리의 마음을 편안하게 해주려고 또 이모 말을 빌면
 '만사를 수월하게'하기 위해 서두르는 폼이 너무도 심해서 
알리싸와 나는 이모 앞에서 늘 어색한 채 반벙어리가 되는 것이었다.
이모는 우리가 퍽 쌀쌀하다고 생각했을 것인지 이해할 수 있었을 것인가? 
반대로 줄리에뜨의 성격은 호들갑스런 이모의 성격과 잘 어울렸다. 
그리고 이모가 작은 조카딸을 유별나게 귀여워하는 것을 보는 데서 오는 
어떤 반감이 이모에 대한 애정을 줄게 했던 것 같다.
어느 날 아침 우편물을 받고 나서 이모는 나를 불렀다.
"제로옴, 정말 딱하게 됐다. 
내 딸아이가 앓는다고 나를 부르니 아무래도 널 두고 떠나야할까 보다...."
부질없는 걱정에 사로 잡혀 나는 삼촌을 보러 갔다. 
이모가 떠난 후에도 그대로 퐁궤즈마르에 머무를 것인지 몰랐기 때문이었다. 
그러나 서두를 꺼내자마자 삼촌은,
"자연스러운 일들을 누이는 왜 또 복잡하게 생각할까? 
그래 넌 무엇 때문에 우리 곁을 떠나겠다는 거냐, 제로옴?"하고 소리쳤다.
"너는 이제 내 자식이 아니냐?"
이모는 단지 두 주일을 퐁궤즈마르에 머물렀을 뿐이다. 
이모가 떠나자 집은 다시 잠잠해졌다. 
내 복장은 우리의 사랑을 흐리게 하기는커녕 더욱 깊게 했다. 
단조로운 나날이 시작되었다. 
거기에서는 마치 메아리치는 곳처럼 우리 마음의 작은 움직임도 들려 오는 것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