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감성을 위한 ━━/세계문학

좁은 문 - 앙드레 지드.8

Joyfule 2010. 2. 19. 07:01
  좁은 문 - 앙드레 지드.8   

우리들의 대화를 여기에 옮기면서 
나는 아이들이 얼마나 애써 심각한 이야기를 하는가를 
모르는 사람들에게는 이런 이야기가 어린애답지 않아 
어색하게 생각도리라고 짐작한다. 
그러나 어쩔 것인가? 
변명이라도 할 것인가? 
나는 우리의 대화를 좀 더 자연스럽게 보이도록 꾸며 대고 싶지 않다. 
우리는 라틴어판 복음서를 구해서 긴 구절들을 외곤 했다. 
동생 로베르를 도와 준다는 구실로 알리싸는 나와 함께 라틴어를 배웠다. 
그러나 지금 사실 그녀가 따라올 것 같지 않은 
공부에는 나도 별로 마음이 내키지 않았다. 
이것이 때때로 내게 방해가 외었다 할지라도 
남들이 생각하듯이 내 정신적인 비약을 저해하지는 않았다. 
오히려 그 반대로 그녀는 어디서나 자유롭게 나보다 앞서고 있는 것 같았다.
나의 마음은 그녀를 따라 방향을 정하는 것이었으며 
그 당시 우리의 마음을 사로잡고 있었던 것, 
우리가 '사색이라 부르던 것도 흔히는 좀 더 
그럴 듯한 마음의 일치에 대한 하나의 구실, 
감정의 가장 ,사랑을 덮는 겉치레에 지나지 않았다.
어머니는 그 깊이를 알 수 없었던 
나의 그러한 감정에 대해 처음에는 염려하셨을 것이다. 
그러나 차츰 기력이 약해짐에 따라 우리 둘을 어머니로서 포옹해 주고 싶어하셨다. 
어머니는 오래 전부터 숙환이었던 심장병의 고통이 차츰 더해 가셨다. 
발작이 매우 심하던 어느 날 어머니는 나를 곁으로 부르셨다.
"얘야, 너도 보다시피 나도 이제는 퍽 늙었다."하고 어머니는 말씀하셨다.
"언제 갑자기 너를 두고 가버리게 될지...."
숨이 가빠져서 어머니는 말을 끊으셨다. 
나는 더 참을 수가 없어 내가 말을 꺼내기를 기다리는 듯한 그 말을 그만 하고 말았다.
"어머니, 아실 테지만 난 알리싸하고 결혼하고 싶었다."
그러자 이러한 내 말이 필경 어머니의 가장 깊은 속마음에 있던 생각과 
바로 이어졌음인지 어머니는 곧 이렇게 받으셨다.
"그래, 내가 하려던 이야기가 바로 그거다, 제로옴."
"어머니!"
나는 흐느끼면서 말했다.
"알리싸는 날 사랑하죠?"
"그럼, 얘야."
어머니는 몇 번이나 정답게 '그럼 얘야' 하고 반복하셨다.
어머니는 말씀하시기가 힘든 모양이었다. 
어머니는 이어,
"만사를 하느님이 하시는 대로 맡겨 두어야 하는 법이다."
그리고는 곁에서 고개를 숙이고 있던 내 머리 위에 손을 얹으시고 다시,
"하느님이 너희를 보호하여 주시옵기를, 
하느님께서 너희를 보호하여 주시옵기를."
하시고는 잠속에 빠지셨는데 나는 끼우려고 생각지 않았다.
이 이야기는 두 번 다시 되풀이되지 않았다. 
그 다음 날은 어머니의 기분도 좀 나으셨다. 
나는 또 다시 학교로 되돌아갔고 
절반밖에 못한 고백담 같은 이야기는 또 다시 침묵에 싸였다. 
뿐만 아니라 그 이상 내가 무엇을 알 수 있었을 것인가? 
알리싸가 나를 사랑한다는 사실은 조금도 의심할 여지가 없었다. 
설혹 그때까지도 내가 그 점에 대해 다소 의심쩍었다 하더라도 
뒤이어 일어난 슬픈 사건을 당하여서는 
그러한 의심은 영원히 내 마음에서 사라졌을 것이다.
어느 날 저녁 어머니는 미스 아슈뷔르똥과 
내가 지켜보는 앞에서 아주 조용히 운명하셨다. 
어머니의 생명을 앗아간 마지막 발작은 
처음에는 그 이전의 발작에 비해 그다지 심한 것 같지 않았다. 
임종에 가까워서야 위험한 증세가 나타났기 때문에 친척들도 달려올 틈이 없었다.
첫날밤은 나는 어머니의 옛 친구 곁에서 이 그리운 이의 주검을 지키면서 새웠다. 
나는 어머니를 생전에 깊이 사랑했다. 
그러나 눈물이 흘러내리는데도 마음속은 슬픔을 느끼지 못하는 데 놀랐다. 
내가 눈물을 흘린 것은 자기보다. 훨씬 나이가 적은 친구가 
이렇게 자기보다 앞서 하느님 곁으로 가는 것을 보고 있는 
미스 아슈뷔르똥이 측은히 여겨졌기 때문이었다. 
그러나 어머니가 돌아가심으로써 사촌 누이가 보다 속히 
내게 가까이 오리라는 숨은 생각이 나의 슬픔을 억누르고 있었다.
다음날 삼촌이 오셨다. 
삼촌은 당신 딸의 편지를 내게 전하셨는데, 
그녀는 그 다음날 쁠랑띠에 이모와 같이 왔다.
...제로옴, 나의 벗, 나의 동생, 기다리고 계시던 큰 만족을 드릴 수 있었을 
몇 마디 말을 돌아가시기 전에 드리지 못한 것이 얼마나 마음 아픈지 몰라. 
이제는 어머님께서 용서해 주시고 앞으로는 하느님께서 우리를 인도해 주시길 빌 뿐이야. 
그럼 안녕히, 내 가엾은 벗! 어느 때보다도 더욱 다정한 너의 알리싸.
이 편지는 무엇을 뜻하는 것이었을까? 
여쭈어 드리지 못해 마음 아프다는 그 몇 마디 말이란 
바로 우리 두 사람의 앞날을 기약하는 말이 아니고 무엇이랴! 
그러나 나는 아직 너무도 어렸기 때문에 대번 구혼을 하지 못했다.
그 외에 그녀와 무슨 약속이 필요했던가? 
우리는 이미 약혼한 사이나 다름없지 않았던가? 
어머니와 마찬가지로 삼촌도 거기에 아무런 이의가 없었다. 
오히려 삼촌은 벌써부터 나를 자식처럼 대해주고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