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좁은 문 - 앙드레 지드.13

Joyfule 2010. 2. 25. 11:28
  좁은 문 - 앙드레 지드.13  

 3
나는 그해, 아벨 보띠에를 거의 만나보지 못했다. 
그는 징집되기 전에 지원 입대를 한 것이었고, 
한편 나는 수사학급 강의를 한 번 더 들으면서 학사 시험을 준비하고 있었다. 
아벨보다 두 살 아래인 나는 우리가 그 해 입학할 예정이었던 
'에꼴르 노르말르'(고등사범학교)를 졸업할 때까지 병역을 연기하고 있었다.
우리는 반갑게 다시 만났다. 
제대 후 그는 한 달 이상이나 여행을 했다. 
나는 그가 변하지 않았나 걱정했지만 
그는 좀 더 침착해졌을 뿐 조금도 매력은 잃지 않고 있었다. 
개학하기 전날 오후를 상부르 공원에서 함께 산책하면서 
나는 혼자 간직하고 있던 내 사랑 이야기를 그 이상 숨길 수 없어 길게 해주었다. 
하긴 그도 이미 그 사실을 알고 있었다. 
그 해 몇몇 여인들과 경험을 얻었던 그는 약간 자만심이 깃든 
선배 행세를 하려드는 것이었지만 나는 조금도 불쾌하지 않았다. 
이른바 마지막 말이란 것을 내가 할 줄 몰랐다고 빈정대면서 
여자를 마음이 변하도록 내버려둬서는 절대로 안된다는 것은 
하나의 공리라고 설명하는 것이었다.
나는 그가 지껄이도록 내버려두긴 했지만 
그의 훌륭한 이론이 나나 알리싸에게는 전혀 부질없다는 것, 
그리고 그가 우리를 잘 이해하지 못하고 있다는 것을 
스스로 드러내고 있을 따름이라고 생각했다.
우리가 도착한 이튿날 나는 다음과 같은 알리싸의 편지를 받았다.
그리운 제로옴
나는 네가 제의한 것을 곰곰이 생각해 보았어.
"네가 제의한 것! 우리의 약혼을 이렇게 부르다니!" 
나는 내게 너무 나아가 많지 않은가 두려워. 
너의 아직 여자들을 사귈 기회가 없었으니까 그렇게 생각되지 않을 거야. 
그렇지만 내 생각으로는 내가 너의 것이 되고 나서 
네 마음에 들지 못한다면 후에 나도 괴로와질 거야. 
편지를 읽으면서 무척 화를 내겠지. 
지금 난 네가 좀더 생의 경험을 쌓을 때까지 기다려 달라고 부탁하는 거야. 
이런 말을 하는 것도 너를 위해서라는 것을 이해해줘. 
나로서는 너를 사랑하지 않게 될 수는 결코 없으리라는 걸 잘 알기 때문이야.
--알리싸
사랑하지 않게 되다니! 그것이 새삼스럽게 문제가 될 수 있을까! 
나는 서글펴지기보다도 오히려 어리벙벙했고 
너무나 당황해서 이 편지를 아벨에게 보여 주러 달려갔다.
"그래 어쩔 셈이냐?"
편지를 읽고 나서 아벨은 입술은 꼭 다문 채 머리를 흔들며 말했다. 
나는 불안과 슬픔에 차 두 손을 들었다.
"어쨌든 답장은 하지 않는 것이 좋을 거야. 여자하고 다툴 때는 지는 법이니까. 
이봐, 토요일에 르아브르에 가서 하루 묵으면 
일요일 아침에는 ㅍ궤즈마르에 도착할 수 있고 
월요일 첫째 시간까지는 여기에 돌아올 수 있어. 
나도 입대 후에 네 친척들을 만나뵙지 못했으니까. 
이것으로 핑계는 충분히 되고 또 인사 치레도 되지. 
만일 알리싸가 이것을 한낱 구실에 지나지 않는다고 생각한다면 
일은 더 수월하게 되는 거야! 
네가 알리싸와 이야기하는 동안 난 줄리에뜨를 맡지. 
어린애 짓은 하지 않도록 명심하고. 
사실은 네 이야기 속에는 뭔가 알 수 없는 게 있어. 
아마 내게는 사실을 다 털어놓지 않은 모양이지? 허나 관계 없다. 
내가 알아낼 테니까. 무엇보다도 우리가 간다는 것을 알리지 마. 
불시에 네 사촌 누이를 찾아가서 무장할 틈을 주지 말아야 한단 말이야."
정원의 사립문을 밀면서 내 가슴은 몹시 두근거렸다. 
줄리에뜨는 곧 내려오지 않았다. 
우리가 삼촌이며 미스 아슈뷔르똥과 
이야기를 하고 있을 때에야 비로소 응접실에 들어왔다. 
우리의 느닷없는 방문이 그녀의 마음을 당황케 만든 것 같았으나 
그녀는 내색도 하지 않았다.
나는 아벨이 하던 말을 생각하고, 
그녀가 그토록 한참 동안 나타나지 않고 있었던 것은 
바로 나에 대비할 무장을 하기 위해서라고 생각했다. 
줄리에뜨의 몹시 쾌활한 태도는 알리싸의 신중한 모습을 더욱 두드러지게 하고 있었다. 
그녀는 내가 돌아 온 것을 못마땅해 하는 것 같았다. 
그녀는 적어도 그것을 자기의 태도로써 나타내려는 듯 싶었고, 
나는 그러한 감정 뒤에 숨겨져 있는 더욱 세찬 감정을 찾아내 볼 용기가 나지 않았다.
그녀는 우리와 꽤 떨어진 창가에 앉아, 
수를 놓는 데만 열중하고 있는 듯 입술을 움직이며 바늘 매듭을 세고 있었다. 
다행히도 아벨이 이야기하고 있었다. 
왜냐하면 나는 이야기할 기력도 없었고, 
따라서 그가 군대 생활과 여행 이야기를 하지 않았던들 
이 재회의 첫 순간은 퍽 침울했을 것이다. 
삼촌도 퍽 근심스러운 기색이었다.
점심 식사가 끝난 후 줄리에뜨는 나를 따로 불러 정원으로 데리고 갔다.
"글쎄 네게 청혼을 하는 사람이 다 있다니!"
우리가 단둘이 있게 되자 그녀는 소리쳤다.
"펠리씨 고모님이 어제 아버지께 편지로 청혼을 전한 거야. 
고모님 말로는 뭐 아주 훌륭한 사람이라나. 
올봄에 사교계에서 몇 번 나를 보고 홀딱 반했대."
"너도 그 사람 눈여겨 봤니?"
나는 나도 모르게 그 청혼자에 대해 반감적인 말투로 풀었다.
"그래, 누군지 알아. 사람좋은 돈키호테 타입이야. 
교양도 없고, 못나고 시시한 사람인데 퍽 걸작이어서 
고모도 그 사람 앞에선 웃음을 참지 못하는 모양이야."
"그래, 그 자가 유망해 보이니?"
나는 비웃는 조로 말했다.
"어머나! 오빠, 농담도! 장사치야. 오빠가 그 사람 한 번만 보면 그런 질문은 안할 거야."
"그래서 삼촌은 뭐라고 대답하셨어?"
"내가 대답한 대로지. 시집가기엔 아직 나이가 어리다고...
그런데 곤란하게도."하고 그녀는 웃으며 덧붙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