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감성을 위한 ━━/세계문학

좁은 문 - 앙드레 지드.15

Joyfule 2010. 2. 28. 23:44
  좁은 문 - 앙드레 지드.15  

이윽고 줄리에뜨와 아벨이 우리를 찾아와 
너도밤나무 숲의 벤치에 앉아 한 사람씩 번갈아 가며 
스윈번의 '시대의 개가'를 한 구절씩 읽고 
또 되풀이 해서 읽으면서 우리는 나머지 시간을 보냈다.
저녁이 됐다.
"자!"
우리가 떠날 무렵 나의 입을 맞추면서 알리싸가 말했다. 
반은 농담 같기도 하고 반은 누님같은 태도였다. 
무분별한 내 행동 때문에 아마도 그런 태도를 취한 듯했고 
또 그것을 알리싸가 즐겨 취한 듯싶은 태도였다.
"자, 이제부터는 그렇게 공상적인 사람이 되지 않겠다고 약속해...."
"그래 약혼했니?"
우리가 또다시 단둘이 있게 되자 아벨이 내게 물었다.
"이젠 그런 건 문제가 아냐."라고 나는 대답했다. 
그리고는 모든 다른 질문을 딱 잘라 버리는 어조로 덧붙였다.
이대로가 훨씬 좋아. 오늘 오후 만큼 행복했던 때는 없었어."
"나도 그래!"하고 그는 소리쳤다. 
그리고는 갑자기 내 목을 끌어안더니,
"기막히고 희한한 이야기를 하나 해줄까? 제로옴, 
난 줄리에뜨가 미칠 듯이 좋아! 지난해에도 그런 생각을 좀 하긴 했지만. 
그러나 나도 세상 맛을 보았고 해서 너의 사촌누이들을 한 번 더 보기 전에는 
아무것도 네게 말하고 싶지 않았어. 이제는 됐어, 내 인생도 결정이 됐어."
사랑하노라, 사랑하노라기보다는 -나는 줄리에뜨를 예찬하노라.
"오래 전부터 난 네게 의형제 같은 애정을 느꼈어...."
그러고는 웃다가 장난을 치다가 하면서 팔을 벌려 나를 끌어 안고는 
우리가 탄 빠리 행 열차 속 좌석 위를 어린애처럼 딩구는 것이었다. 
나는 그의 고백을 듣고 숨이 막힐 지경이었다. 
거기에는 느껴지는 과장된 표현은 나로서는 듣기에 좀 어색했다.
 하지만 그처럼 벅찬 감격과 희열에 대해 어떻게 항거할 것인가?
"그래, 어떻게 됐어! 고백을 했다?"
그가 이야기를 털어놓는 사이에 나는 물었다.
"천만에!"하고 그는 소리쳤다
"이야기의 가장 멋진 대목을 태워 버리고 싶진 자아."
 가장 아름다운 사랑의 순간은
 '그대를 사랑하노라'고 말할 때가 아니니...
"이봐 나를 책망하지는 못하겠지, 느림보 대장인 너로선 말야?"
"하지만 네 생각엔 그녀가 그녀 편지에서...."
나는 다소 신경질적으로 물었다.
"그녀가 나를 보면서 당황해 하던 것을 못봤어? 
우리가 거기 있는 동안 줄곧 흥분해서 얼굴을 붉히고 이야기를 쉬지 않고...
아니, 넌 아무것도 눈치채지 못했을 거야. 
너야 알리싸한테만 정신이 쏠려 있었으니 말이야. 
줄리에뜨가 어찌나 이것저것캐묻는지! 
또 얼마나 내 말을 솔깃히게 들으며 좋아했는지 몰라! 
1년 동안에 굉장히 총명해 졌어. 
어떻게 해서 그녀가 독서를 좋아하지 않는다고 
네가 생각하게 되었는지 난 도무지 알 수가 없어. 
독서란 단지 알리싸만을 위한 것이라고 너는 늘 생각하는 모양이지... 
하지만 그녀는 놀랄 만큼 많이 알고 있단 말야. 
저녁 식사 전에 우리가 무엇을 하고 놀았는지 알아? 
단테의 칸쪼네를 암송하며 즐겼어. 
둘이서 번갈아가며 암송했는데 내가 틀리면 그녀가 척척 고쳐 줬어, 왜 너도 알지?
내 마음 가득 채워 주는 사랑의 마음이여.
그녀가 이탈리아 말을 배운걸 너는 말해 주지 않았지."
"나도 그건 몰랐는데!"
나는 놀라서 말했다.
"아니, '칸쪼네'를 시작할 때 너한테서 배웠다고 하던데."
"아마 내가 그 언니한테 읽어 주는 것을 들었던 모양이지. 
그녀는 흔히 우리 곁에서 바느질을 하고 있었거나 수를 놓고 있었으니까. 
하지만 이해하고 있는 듯한 기색은 전혀 보이지 않았는데."
"그랬을 거야. 알리싸와 너는 지독한 이기주의자니까. 
자기네 사랑에만 열중하여 이 지능, 이 영혼이 
놀랍도록 꽃피는 건 거들떠보지도 않았으니 말이야. 
내가 나 자신을 추켜 세우는 건 아니지만 아무튼 나는 때맞추어 나타난 거야. 
아니, 천만에 널 탓하는 것 아니야. 너도 알다시피...."
그는 다시 나를 끌어안으며 말했다.
"단지 이것만 약속해 줘. 이 일에 대해서는 한 마디도 알리싸에게 알리지 않겠다고. 
내일은 내가 알아서 처리할 테니까. 
줄리에뜨는 내 것이야. 그건 틀림없어. 
다음 방학까지 그대로 내버려두어도 아무일 없을 정도야. 
그때까지는 편지도 쓰지 않을 작정이야. 그렇지만 새해 방학만 되면 
너와 나는 르아브르에 가서 방학을 지내고, 그러고...."
"그러고는?"
"그러고 나서 알리싸는 갑자기 우리의 약혼을 알게 되는 거야. 
이 일을  나는 깨끗이 해치울 작정이야. 그리고 어떻게 되는지 알아? 
네가 획득하지 못한 그 알리싸의 승낙을 내가 본을 보여 줌으로써 얻어 준단 말야. 
너희들 결혼 전에는 우리도 결혼할 수 없지 않느냐고. 
우리 둘이는 알리싸를 설득시킬 작정야."
그는 줄곧 이야기를 계속하여 기차가 빠리에 도착했을 때까지도, 
노르말르에 우리가 돌아왔을 때까지도, 
그칠 줄 모르는 이야기의 조수 속으로 나를 잠겨들게 했다. 
우리가 역에서 에꼴르 노르말르까지 걸어왔음에도 불구하고, 
또 밤이 깊어졌는데도 아벨은 내 방에 따라 들어와서 
아침이 될 때까지 이야기를 주고 받았다.
아벨은 현재와 미래를 다루는 데 열중했다. 
그는 이미 우리 두 쌍의 결혼을 예견하고 이야기하는 것이었고, 
각자의 놀라움과 기쁨을 상상하여 그리기도 했고 우리의 아름다운 이야기, 
우정 그리고 내 사랑에서 자기가 한 역할의 아름다움에 도취하기도 했다. 
나는 이처럼 솔깃한 열정에 별반 저항도 못한 채 공상적인 그의 제안에 
매력을 느낀 나머지 마침내 자신도 그런 기분에 점점 끌려들어갔다. 
사랑의 덕택으로 우리의  야망과 용기는 부풀어 오르기만 했다.
에꼴르를 졸업하면 곧 보띠에 목사의 주례로 
우리 두 쌍의 결혼이 이루어질 것이고 넷이서는 여행을 떠난다. 
그런 다음 우리가 거창한 일에 착수하면 
우리의 아내들은 즐거이 거기에 협력해 줄 것이다. 
교수직엔 별로 마음이 없고, 글쓰는 소질을 타고 났다고 자신하는 아벨은 
몇 편의 희곡에서 성공을 거두어 별로 없던 재산을 삽시간에 굉장하게 만들 것이다. 
학문에서 오는 이익보다 학문 그 자체에 마음이 끌리는 나는 
종교 철학의 연구에 몰두하고 그 역사를 써 보리라... 
그러나 그 많은 희망들을 여기서 회상한들 무슨 소용이 있을 것인가?
다음날 우리는 다시 공부에 열중했다.@ff