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좁은 문 - 앙드레 지드.17

Joyfule 2010. 3. 3. 11:14
 
좁은 문 - 앙드레 지드.17   

이모는 스스로 그 이야기를 꺼냈다.
"얘야!"
하고 이모는 말을 이었다.
"내일 아침 알리싸는 크리스마스트리를 꾸미러 올 테니까,
 어떻게 된 영문인지 내 당장 알아보마. 그것을 점심 때 알려 줄게. 
그럼 네가 걱정할 건 아무것도 없다는 걸 깨닫게 될 거야, 틀림없이."
나는 뷔꼴랭 댁으로 저녁 식사를 하러 갔다. 
정말 며칠 전부터 앓고 있던 줄리에뜨는 사람이 변한 듯했다. 
그녀의 눈초리에는 적지 않게 표독스럽고 
또 거의 쏘는 듯한 표정이 깃들어 있었다. 
그 때문에 전보다 훨씬 더 자기 언니와는 달라 보였다. 
그날 저녁 나는 알리싸와 줄리에뜨에게 별다른 이야기를 할 수 없었다. 
게다가 나도 이야기할 맘이 내키지 않았고 
삼촌이 피로해 보여서 식사가 끝난 귀 곧 물러나와 버렸다.
쁠랑띠에 이모가 꾸미는 크리스마스트리는 
해마다 많은 아이들과 친척들, 친구들을 모여들게 하는 것이었다. 
이 트리는 계단 골을 이루는 현관 한 어귀에 세워져 있었는데 
이 현관은 첫 문간방, 응접실, 찬장을 들여놓은 
온실 비슷한 방의 유리문 등으로 되어 있었다.
트리의 장식은 아직 끝나지 않아 축제일 아침, 죽 내가 도착 한 이튿날, 
알리싸는 이모 말대로 꽤 일찍 와서 여러 가지 장식, 
촛불, 과실, 과자, 장난감 등을 나뭇가지에 다는 일을 거들었다. 
나도 그러한 일을 그녀 곁에서 거들고 싶었으나 
이모가 그녀와 이야기를 하도록 해야만 했다. 
그래 나는 그녀를 보지도 않고 집을 나와 
아침 한나절을 불안한 마음을 달래느라고 애썼다.
줄리에뜨를 다시 보고 싶어서 나는 먼저 뷔꼴랭 댁으로 갔다. 
아벨이 나보다 앞서 그녀 곁에 와 있다는 말을 듣고 
나는 중요한 이야기를 방해할까 두려워 
곧 물러나와 점심 때까지 부둣가의 거리를 헤매다녔다.
"이런 바보!"
내가 들어오자 이모가 소리쳤다.
"그런 쓸데없는 걱정을 하며 살아가다니. 
오늘 아침 네가 한 소리는 모두가 당치도 않아. 
나는 단도직입적으로 얘길 꺼냈다. 
우리 일을 거드느라고 피곤해진 미스 아슈뷔르똥을 
산책이나 하라고 내보내고 알리싸와 단들이 있게 되자, 
나는 곧 왜 지난 여름에 약혼하지 않았느냐고 아주 간단하게 물었다. 
아마 그 애가 당황했으리라 너는 생각하겠지? 
그 애는 조금도 당황하지 않고 아주 침착하게 
제 동생보다 먼저 결혼하기가 싫었기 때문이라고 대답하더라. 
만일 너도 그 애에게 솔직히 물어 보았더라면 그렇게 대답했을 거야. 
혼자서 괴로워한 이유가 거기에 있는 거야, 그렇지? 
그봐, 솔직하다는 것은 아주 좋은 일이야. 
가엾은 알리싸는 아버지를 떠날 수가 없다는 거야... 
우리는 별별 이야기를 다 했다. 
그 애는 참 지각이 있어. 제가 네게 적합한지 어떤지 아직 자신이 없대. 
또 너보다 너무 나이가 많은 것을 걱정하며 
네 게는 줄리에뜨 또래의 여자가 차라리 나을 것 같다고...."
이모는 말을 계속했다. 
그러나 나는 더 이상 듣지 않았다. 
내게 중요한 것은 단 한가지, 
즉 알리싸가 제 동생보다 먼저 결혼하지 않겠다는 것이다. 
하지만 아벨이 있지 않은가! 그 녀석 말이 옳았구나. 
그 녀석은 단번에 두 쌍의 결혼을 성사시키려 하고 있는 것이다....
아주 간단하기는 했지만 그래도 이모가 밝혀 준 이야기는 나를 흥분시켰고 
나는 최선을 다해 이 흥분을 이모에게 감추었다. 
이모에게는 너무나 당연한 기쁨, 
그리고 또 그것이 모두 다 자기의 덕택이라고 생각될수록 그만큼 
이모에게 흡족감을 줄 그러한 기쁨만을 보였다. 
점심이 끝나자 나는 구실을 만들어 이모 곁을 떠나 아벨에게로 달려갔다.
"어때! 내가 뭐라고 그랬어!"
내가 기쁨을 알려 주자마자 그는 나를 껴안으며 소리쳤다.
"이봐, 오늘 아침 줄리에뜨와 한 이야긴데, 
거의 결정적인 것이었다고 말할 수 있지. 우리는 거의 네 이야기만 했지. 
그러나 그녀는 피곤해서 마음이 안정되지 않은 것 같았어. 
지나치게 깊이 들어가면 그녀의 신경을 자극할까 두려웠고, 
너무 오래 머물러 있으면 그녀를 흥분시킬까 염려도 되었어. 
네 말을 듣고  나니 일은 다 됐어! 이봐, 내 단장과 모자를 달려가 가져올게. 
혹시 도중에 날아가려고 하면 붙잡아 줄 셈치고 뷔꼴랭 댁 문전까지만 동반해 줘. 
나는 외포리옹보다 더 몸이 가벼워진 것 같애. 
자기 언니가 승낙을 거절하는 이유가 단지 자기 때문이라는 것을 
줄리에뜨가 알게 되면, 그리고 곧 내가 청혼을 하면...
아아! 이봐, 나는 우리 아버지가 오늘 저녁 크리스마스트리 앞에서 
행복에 겨워 눈물을 흘리면서 주님을 찬양하며 축복에 넘치는 손을 
무릎 끓은 네 사람의 약혼자의 머리 위에 뻗치시는 게 벌써 눈에 선해. 
미스 아슈뷔르똥은 한숨 속으로 증발해 버릴 것이고 
쁠랑띠에 이모님도 웃음속에 녹아 버릴 거야. 
그리고 환하게 불 밝혀진 크리스마스트리는 
하느님의 영광을 노래할 것이고 성경에 나오는 산들처럼 손뼉을 칠 거야."
크리스마스트리에 불이 켜지고 아이들, 친척들, 
그리고 친구들이 그 주위에 모여들게 되는 것은 해가 질 무렵으로 정해져 있었다. 
아벨과 헤어지고 나자 불안과 초조로 인해 일이 손에 잡히질 않아, 
나는 기다리는 동안을 잊으려고 생뜨 아드레스의 낭떠러지까지 걸어갔다가 길을 잃어, 
겨우 쁠랑띠에 이모 댁에 왔을 때는 다행히 조금 전부터 축연이 벌어지고 있었다.
현관에 들어서자 나는 알리싸를 보았다. 
그녀는 기다리고 있었던 듯 나를 보자 곧 내게로 왔다. 
엷은 겉옷 깃 사이가 파여진 곳에는 
목에서부터 오래된 자그마한 자수정 십자가를 늘이고 있었다. 
어머니의 기념으로 내가 준 것인데, 
그녀가 달고 있는 것을 보기는 처음이었다. 
긴장된 그녀의 얼굴과 괴로운 표정이 내 가슴을 아프게 했다.
"왜 이렇게 늦었지?"
그녀는 다급하고 숨가쁜 목소리로 말했다.
"네게 하고 싶은 말이 있었는데."
"낭떠러지 길에서 방향을 잃어버렸어...
그런데 왜 안색이 그리 좋지 않지... 아니, 알리싸, 웬일이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