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감성을 위한 ━━/세계문학

좁은 문 - 앙드레 지드.20

Joyfule 2010. 3. 6. 09:33
 
좁은 문 - 앙드레 지드.20   

알리싸를 쉬 만날 수 없다는 것은 퍽 마음 아픈 일이었다. 
그러나 반면 다시 그녀를 만나는 것이 두렵기도 했다. 
동생의 병을 내 탓으로 돌리지나 않을까 두려웠고, 
따라서 그녀가 성이 난 것을 보느니 보다는 
차라리 만나지 않는 편이 나을 것 같았다.
하지만 아벨만은 다시 만나고 싶었다. 
그의 방문 앞에서 하녀가 쪽지 하나를 전해 주었다.
네가 염려하지 않도록 몇 마디 적는다. 
르아브르에서 이처럼 줄리에뜨 가까이 머물어 있다는 것이 도저히 견딜 수 업었다. 
간밤에 너와 헤어진 후 사잠프톤 행 배표를 샀다. 
런던의 S 집에서 방학을 보낼 셈이야. 에꼴르에서 다시 만나자.
인간의 무든 도움이 한꺼번에 나를 저버렸다. 
고통밖에 남지 않은 이 체류를 단축하고 나는 개학이 되기 앞서 빠리로 돌아왔다.
 나는 하느님에게로, '모든 참 된 은혜, 
완전한 혜택을 주시는'하느님에게로 눈길을 돌렸다. 
나의 온갖 고행도 하느님에게 바쳤다.
나는 알리싸도 또한 하느님에게서 안식처를 구하고 있으리라 생각했다. 
그녀도 기도를 드릴 수 있었다.
알리싸의 편지와 내가 쓴 답장 외에는 
이렇다 할 별다른 일 없이 명상과 공부의 긴 세월이 흘렀다. 
나는 그녀의 편지를 모두 간직해 두었다. 
이제부터 희미한 내 추억을 이 편지들을 참고하며 더듬어 갈 생각이다.
이모를 통해서...
처음에는 이모만을 통해 처음 며칠간을 
줄리에뜨의 병세가 심해 모두들 얼마나 근심했는가를 알았다. 
떠나온 지 이틀 만에 비로소 나는 알리싸로부터 다음과 같은 쪽지를 받았다.
그리운 제로옴, 좀 더 일찍 편지 못한 걸 용서해.
 가엾은 줄리에뜨의 상태가 그럴 겨를을 주지 않았어. 
네가 떠난 후 나는 거의 그 애 곁을 떠나지 못했어. 
고모에게 이곳 소식을 전해 주십사고 당부했는데, 그렇게 하셨겠지. 
그래서 알겠지만 사흘 전부터 줄리에뜨는 좀 나았어. 
나는 벌써부터 하느님께 감사드리고 있지만 아직 마음이 놓이자 않아.
이제까지 로베르에 관해서는 별로 이야기하지 않았지만 
그는 나보다 며칠 후에 빠리에 와서 제 누이들의 소식을 전해 주었다. 
오로지 그의 누이들 때문에 나는 마음내키는 이상으로 그를 보살펴 주었다. 
그가 다니던 농업 학교가 쉴 때마다 나는 그를 돌봤으며 즐겁게 해주려고 애썼다.
내가 알리싸나 이모에게 감히 물을 수 없던 일도 그를 통해 알았다. 
에뜨와르 떼씨에르는 줄리에뜨의 병세를 알아보려고 꾸준히 찾아왔으나 
로베르가 르아브르를 떠날 때까지는 
줄리에뜨는 아직 그를 만나지 않았다는 것이었다.
그리고 내가 떠나온 이래로 줄리에뜨는 
자기 언니 앞에서 항구 무언을 고집하고 있다는 것이었다.
그러자 얼마 안 있어 나는 이모를 통해, 
내가 예측하기로는 알리싸가 곧 깨어지기를 바랐던 줄리에뜨의 약혼은 
줄리에뜨 자신이 하루 바삐 공식적인 것으로 해주길 바라고 있다는 사실을 알았다. 
충고도 명령도 애원도 소용이 없게 된 이 결심은 
그녀의 가슴에 아로새겨졌고, 그녀의 눈을 가렸고, 그녀를 침묵 속에 가두었다.
세월이 흘렀다. 
하긴 나도 그녀에게 무엇이라 써야 할지 몰랐지만 
알리싸로부터는 너무나 실망적인 쪽지밖에는 받지 못했다. 
짙은 겨울 안개가 나를 둘러싸고 있었다.  
학업도, 그리고 나의 사랑과 신앙의 모든 열정도, 
아아! 가슴으로부터 어둠과 추위를 털어내지는 못했다. 세월이 흘렀다.
느닷없이 찾아든 어느 봄날 아침, 
그때 마침 르아브르에 없었던 이모에게 부쳐 온 
알리싸의 편지를 이모가 내게 전해 주었다. 
그 편지 가운데 이야기를 밝혀 줄 수 있는 몇 부분을 여기에 적는다.
...제가 온순하다고 칭찬해 주세요. 
고모님이 시키신 대로 떼씨에르 씨를 만났어요. 
그 분과 한참 이야기 했어요. 
나무랄데 없는 사람이라는 것도 알게 되었고, 
또 솔직히 말씀드리면 이 결혼이 제가 처음 두려워했던 것처럼 
불행하게 되진 않으리라는 것도 거의 믿게 될 정도였어요. 
확실히 줄리에뜨는 그 분을 사랑하지 않아요. 
하나 제가 보기에는 그 분은 한 주일 한 주일 
점점 사랑을 받을 가치가 있는 사람이라고 생각되는군요. 
그 분은 사정도 잘 알고 줄리에뜨의 성격도 잘 파악하고 계셨어요. 
그런데다 그 분은 줄리에뜨에 대한 자기 사랑의 능력에 자신을 갖고 
자신의 꾸준한 마음이 반드시 모든 것을 극복하고 말 것이라 확신하고 계세요. 
말하자면 줄리에뜨에게 홀딱 반하신 거죠.
정말 제로옴이 그처럼 동생을 돌봐 주는 데 대해 
무어라 말해야 좋을지 모르겠어요. 
일종의 책임감에서 그렇게 해주고 있는 것 같아요. 
왜냐하면 그의 성격과 로베르의 성격은 퍽 다르니까요--
그리고 아마도 저를 기쁘게 해주고 싶어서 그러는 것 같아요--
하지만 수행할 의무가 벅찰수록 의무는 
영혼을 가꾸고 향상시켜 준다는 것을 그는 이미 터득했을 거예요. 
아주 지고한 생각이죠. 큰조카딸의 이런 이야기를 너무 웃지 마세요. 
왜냐하면 줄리에뜨의 결혼을 좋은 일로 바라보도록 힘쓰는 저를 
받쳐 주고 도와 주는 것이 바로 이러한 생각이기 때문이에요.
그처럼 살뜰하게 염려해 주시니 얼마나 기쁜지 몰라요. 
고모님, 하지만 제가 불행하다고는 생각지 말아 주세요. 
'저는 오히려 그 반대예요.'라고 말씀 드릴 수 있어요. 
줄리에뜨를 휩쓸고 간 시련이 제 마음 속에서 그 반동을 일으켰기 때문이에요. 
잘 이해하지도 못한 채 되풀이해 읽던 성경 말씀이  갑자기 이해가 되었어요. 
'인간을 믿는 자는 불행하니라', 
이 말씀은 제가 성경에서 찾아내기 훨씬 전에 
제로옴이 아직 열 두 살도 채 못되고 제가 열 네 살이 되던 해 
제로옴이 제게 보내 준 자그마한 크리스마스카드에서 읽은 적이 있어요.
그 카드에는 그 당시 저희들에게도 퍽 아름다워 보였던 꽃다발 곁에
꼬르네이유의 다음과 같은 주석시가 적혀 있었어요.
오늘의 사바 세계로부터 나를 주께로 인도해 올리는 힘은
어떤 불가항력의 매력인가?
인간의 무리 위에 주추를 세우는 자는 불행하리라.
솔직히 말씀드려 저는 이 시구보다는 에레미야의 그 간결한 구절을 좋아합니다. 
필경 제로옴도 그 당시에는 이 구절에 별다른 주의를 하지 않은 채 카드를 골랐을 거예요. 
그래서 저는 날마다 저희들을 동시에 하느님께로 
접근시켜 주신 것을 하느님께 감사 드리고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