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좁은 문 - 앙드레 지드.18

Joyfule 2010. 3. 4. 07:41
 
좁은 문 - 앙드레 지드.18   

그녀는 잠시 당황한 듯 내 앞에서 입술을 떨고 있었다. 
이러한 고뇌의 표정을 보자 마음이 아파 나는 감히 묻지를 못했다. 
그녀는 내 얼굴을 끌어 당기려는 듯 내 목에 손을 갖다댔다. 
무언가 이야기를 하려는 눈치였다. 
그러나 바로 그 순간에 손님들이 들어왔다. 
힘이 빠진 그녀의 손이 다시 아래로 떨어졌다
"이제는 시간이 없어."하고 그녀는 중얼거렸다. 
그러고는 내 눈에 눈물이 글썽이는 것을 보고 마치 그런 하잘것없는 변명으로 
나를 진정시킬 수 있을 것처럼 내 눈길의 질문에 대답했다.
"아냐...안심해, 단지 머리가 좀 아플 뿐이야. 
어린애들이 너무 소란을 피워서...이리로 피해 온 거야...
이제는 그 애들 곁에 돌아가 봐야지..."
그녀는 급히 내게서 멀어져 갔다. 
사람들이 들어오면서 나를 그녀에게서 떼어 놓았다. 
나는 응접실에 가서 다시 그녀를 만나리라 생각했다. 
그녀는 방 저 끝에서 아이들에게 둘러싸인 채 놀이를 짜주고 있었다. 
그녀와 나 사이에는 여러 사람들이 보였고 
그녀에게로 가려면 필시 누구에게 붙잡힐 것 같았다. 
인사나 이야기를 나눌 수 있을 것 같지가 않았다. 
혹시 벽을 따라 살짝 빠져나간다면...나는 그렇게 해보았다.
정원으로 난 커다란 유리문 앞을 막 지나가려는 순간, 
누가 내 팔을 잡는 것을 느꼈다. 
문에 반쯤 몸을 숨기고 커튼으로 몸을 휘감은 줄리에뜨가 거기 있었다.
"온실로 가!"하고 그녀는 재빨리 말했다.
"꼭 할 말이 있어, 그쪽으로 혼자 가. 곧 따라갈게."
그러고는 문을 조금 열더니 정원으로 사라졌다.
무슨 일이 있었을까? 나는 곧 아벨을 보고 싶었다. 
아벨은 무슨 이야기를 했을까? 
현관으로 되돌아온 나는 줄리에뜨가 기다리고 있는 온실로 갔다.
그녀는 얼굴이 새빨갛게 달아 있었다. 
눈썹을 찌푸리고 있어 그녀의 눈초리는 날카롭고 괴로운 표정을 띠고 있었다. 
목소리마저 거칠고 경련을 일으킬 듯 싶었다. 
그녀는 뭔가 분노로 흥분되어 있었다. 
나는 불안한 마음에도 불구하고 그 아름다움에 놀라 어색할 지경이었다. 
우리는 단둘이었다.
"알리싸가 이야기 했어?"하고 그녀는 내게 다그쳐 물었다.
"겨우 두어 마디, 내가 아주 늦게 와서 말야."
"언니는 내가 자기보다 먼저 결혼하길 바라고 있다는 것을 알아?"
"응."
그녀는 뚫어지게 나를 쳐다보고 있었다....
"그리고 언니는 내가 누구와 결혼하기를 바라고 있는지 알아?"
나는 잠자코 있었다.
"그건 오빠야!"하고 그녀는 소리쳤다.
"무슨 소리야!"
"그렇대도!"
그녀의 목소리에는 절망과 승리감이 동시에 섞여 있었다. 
그녀는 다시 몸을 일으켰다기보다 되로 몸을 젖혔다.
"이제는 내게 남은 할 일이 무엇인지 알겠어."
정원으로 통하는 문을 열면서 
희미하게 덧붙여 말하더니 그녀는 문을 쾅 닫고 버렸다.
내 머리와 가슴 속에서 모든 것이 비틀거렸다. 
관자놀이에서 맥박이 뛰논 것을 느꼈다. 
단 한 가지 생각만이 그런 내 마음의 혼란을 버티고 있었다. 
아벨을 찾자, 그러면 그는 아마도 
이 두 자매의 기이한 이야기를 설명해 줄 수 있을 것이다. 
그러나 나의 혼란된 모습이 누구에게나 뜨일 것 같아서 
응접실에서 다시 들어갈 용기가 나지 않았다. 
나는 밖으로 나왔다. 정원의 차가운 공기가 내 마음을 가라앉혔다.
나는 잠시 그대로 정원에 머물러 있었다. 
어둠이 짙어지면서 바다 안개가 도시를 감싸고 있었다. 
나뭇가지는 앙상했고 땅과 하늘은 한없이 쓸쓸해 보였다... 
노랫소리가 들려 왔다. 크리스마스트리에 둘러선 어린이들의 합창인 모양이었다. 
나는 현관을 통해 다시 들어갔다. 
응접실과 문간방의 문이 모두 열려 있었다. 
이제는 텅 빈 응접실에서 피아노 뒤에 반쯤 몸을 가린 이모가 
줄리에뜨와 이야기하는 것이 보였다. 
문간방에는 잔뜩 장식된 크리스마스트리를 둘러싸도 손님들이 빈틈없이 모여 있었다. 
어린애들은 이미 찬송가를 마친 때였다. 
갑자기 조용해지더니 크리스마스트리 앞에서 
보띠에 목사가 설교 비슷한 이야기를 시작했다. 
그의 얘기는 이른바 '좋은 씨를 뿌리기' 위해서는 
어떠한 기회도 놓치지 말라는 것이었다. 
불빛과 훈기가 나는 싫었다. 
나는 다시 나가고 싶었다. 
문에 기대어 선 아벨이 보였다.
그는 얼마 전부터 그곳에 서 있었던 모양이었다. 
그는 적의에 찬 눈초리로 나를 쳐다봤는데 
우리의 시선이 마주치자 어깨를 들먹였다. 나는 그에게로 갔다.
"바보!"
그는 낮은 목소리로 말하더니 갑자기,
"아아, 이봐, 나가자. 좋은 말씀은 이제 지긋지긋해!"했다. 
우리가 밖으로 나오자 그는 다시 한번 "바보!"하고는 
아무 말 없이 걱정스럽게 쳐다보고 있는 나에게 말하는 것이었다.
"그 애가 사랑하는 건 바로 너야, 이 바보야! 나한테 그런 것을 말해 줄 수도 없었니?"
나는 아찔했다. 더 알고 싶지도 않았다.
"말할 수 없었지? 너 혼자선 그것을 깨달을 수가 없었을 테니까!"
그는 내 팔을 잡더니 미친 듯이 흔들어 댔어. 
악문 이빨 사이로 새어나오는 그의 목소리는 떨리고 숨찼다.
"아벨, 제발 부탁이야."
잠시 후 나는 떨리는 목소리로 말했다. 
그리고는 성큼성큼 그가 나를 끌고가는 동안 말했다.
"그렇게 흥분하지 말고 무슨 일이 일어났는지 내게 말을 좀 해. 
나는 아무것도 모르겠어."
가로등 불빛 밑에서 그는 느닷없이 나를 세우더니 
내 얼굴을 찬찬히 뜯어보는 것이었다. 
그리고는 와락 나를 끌어안고 내 어깨에 얼굴을 파묻고는 
흐느끼며 중얼거리는 것이었다.
"잘못했어, 나도 바보야. 너와 마찬가지로 나도 잘 몰랐어."
울고 나더니 다소 마음이 진정되는 듯싶었다. 
그는 머리를 들더니 다시 울기 시작하면서 말을 계속했다.
"무슨 일이 일어났느냐고?...
이제 와서 다시 그 이야기를 한들 무슨 소용이 있어. 
네게 말했지만 아침에 줄리에뜨와 이야기했어. 
굉장히 예쁘고 쾌활했지. 
난 그것이 다 나 때문인 줄 알았어. 
알고 보니 그것은 순전히 우리가 너의 이야기를 한 까닭이었어."
"그때는 짐작을 못했니?"
"못했어, 확실히는. 하지만 지금에 와서 
아무리 작은 대목이라도 환히 짐작이 가...."
"그렇다면 알리싸는...."
"알리싸가 희생을 하는 거지.
 동생의 비밀을 알자 자기 자리를 양보하려 한 거지.
 어때, 넌! 뭐 이해하기 어려운 일도 아니지... 
나는 줄리에뜨에게 다시 한번 이야기하고 싶었어. 
내가 말을 꺼내자마자...아니, 내 말을 알아듣기 시작하자마자 
그녀는 우리가 앉아 있던 소파에서 벌떡 일어서더니 몇 번이고 되풀이해서
 [그런 줄 알고 있었어요.] 하는 거야. 
그런데 그 어조는 그런 줄 몰랐던 사람의 어조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