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좁은 문 - 앙드레 지드.26

Joyfule 2010. 3. 13. 08:55
 
좁은 문 - 앙드레 지드.26   

그리하여 우리들 세 사람은 짐짓 쾌활한 척하는, 속된, 
그리고 이면에는 각기 근심이 숨어 있으면서도 
표면으로는 생기가 나는 듯한 그러한 이야기를 주고받곤 했다. 
다음날은 삼촌이 점심에 청했기 때문에 우리는 다시 만나기로 되어 있었다. 
그래서 우리는 그 첫날 오후 그러한 희극을 끝마칠 수 있음을 
다행으로 생각하면서 아무렇지도 않게 헤어지고 말았다.
나는 식사 시간보다 훨씬 전에 갔으나 
알리싸는 자기 친구 하나와 이야기를 하고 있었다. 
알리싸도 그 친구에게 돌아가 달라고 말하지 못하는 것 같았고 
그 친구도 도무지 돌아갈 생각을 하지 않는 것 같았다. 
이윽고 그 친구가 나가 버리고 단둘이 있게 되자 
나는 알리싸가 점심을 같이 하자고 그 친구를 붙들지 않은 걸 짐짓 놀라는 척했다. 
전날 밤 잠을 자지 못해 피곤했던 우리는 도무지 마음이 안정되지 않았다. 
삼촌이 들어왔다. 
삼촌도 이제는 많이 늙었구나 하고 내가 생각하고 있음을 알리싸는 눈치챘다. 
삼촌은 귀가 어두워져 내 이야기를 잘 듣지 못했다. 
그 때문에 나는 음성을 높여야 했고 따라서 내 이야기는 어설프게 됐다.
점심 식사 후에 미리 약속했던 대로 쁠랑띠에 이모가 마차로 우리들을 데리고 왔다. 
이모는 우리들, 알리싸와 내가 돌아오는 도중 
가장 아름다운 코오스를 걸어서 오도록 할 의도에서 오르쉐까지 태워다 주셨다.
계절에 비해서 날씨는 더운 편이었다. 
우리가 걷게 된 언덕은 햇빛만 쬐고 아무런 운치도 없었다. 
나무들은 잎이 져서 앉아 쉴 그늘도 없었다. 
이모가 우리를 기다리고 있는 마차로 
빨리 가야 되겠다는 생각에 우리는 걸음을 재촉했다. 
두통이 나는 머리에서는 아무런 생각도 떠오르질 않았다. 
태연한 체하기 위해서, 혹은 그렇게 함으로써 이야기를 하지 않아도 되었기 때문에 
나는 걸으면서 알리싸가 내게 맡긴 손을 꼭 잡고 있었다.
흥분한 데다가 빨리 걸어 숨이 가빠지고 
침묵으로 어색해져서 우리는 얼굴이 달아올랐다. 
내 귀에는 관자놀이가 뛰는 소리가 들렸다. 
알리싸의 얼굴은 민망할 정도로 붉어 있었다. 
이윽고 우리는 땀에 젖은 손을 잡고 있다는 어색함을 느껴 
서로 손을 슬그머니 놓아 버리고 말았다.
우리는 너무나 서둘러 걸었기 때문에 우리에게 이야기 할 시간을 주려고 
다른 길을 거쳐서 아주 천천히 몰고 온 이모의 마차보다 훨씬 먼저 네거리에 이르렀다. 
우리는 언덕의 비탈에 앉았다. 
갑자기 불기 시작한 찬바람에 몸이 오싹했다. 
우리는 땀에 젖어 있었던 것이다. 
우리는 이모의 마차를 마중 가려고 일어섰다. 
그러나 이모의 성가신 친절은 더 견디기 못해 
눈에 눈물까지 글썽글썽해진 알리싸는 심한 두통이 난다고 말했다.
돌아오는 길엔 모두들 조용했다.
이튿날 잠이 깨자 몸이 무겁고 감기가 들어 아팠기 때문에 
오후에야 뷔꼴랭 댁에 가볼 생각이 났다. 
공교롭게도 알리싸는 혼자 있지를 않았다. 
펠리씨 이모의 손녀인 마들레느 쁠랑띠에가 거기 있었다. 
나는 알리싸가 곧잘 그 애와 이야기하기를 좋아한다는 것을 알고 있었다. 
그 애는 며칠을 자기 할머니 집에서 묵고있던 참이었는데 내가 들어서자,
"돌아갈 때 언덕으로 해서 가시거든 같이 올라가요." 하고 소리쳤다.
나는 무심코 승낙했다. 그래서 나는 알리싸와 단둘이 걷질 못했다. 
그러나 이 귀여운 어린애가 어떤 면에서는 도움이 되기도 했다. 
전날의 그 어색한 기분은 느끼지 않게 된 것이다. 
우리 셋 사이에 이야기는 곧 쉽게 벌어졌고 
내가 처음 염려했던 것처럼 쑥스러운 것도 아니었다. 내가,
"잘 있어."하고 인사를 하자 알리싸는 이상한 미소를 지었다. 
내가 다음날 떠난다는 사실을 그녀는 그때까지 깨닫지 못하는 것 같았다.
더구나 얼마 안 있으면 또 만나리라는 희망이 있었기 때문에 
'잘 있어'라는 이별의 말이 어떤 서글픈 감을 자아내지도 않았다.
그러나 저녁 식사 후에도 막연한 불안감에 사로잡혀 
나는 다시 시내로 내려가서 거의 한 시간을 헤매다가 뷔꼴랭 댁에 다시 갈 작정을 했다. 
나를 맞으러 나온 것은 삼촌이었다. 
알리싸는 몸이 불편해서 벌써 자기 방으로 올라갔고 올라간 후엔 곧 잠이 든 모양이었다. 
나는 잠시 삼촌과 이야기하다가 다시 나왔다.
모든 일이 이처럼 빗나가 화가 나기도 했지만 
그렇다고 불평을 한들 또 무슨 소용이 있으랴. 
설령 만사가 우리에게 유리하게 진행되었다 하더라도 
우리는 역시 그런 어색한 느낌을 꾸며냈을지도 모른다. 
그러나 알리싸도 그것을 느꼈다는 것이 무엇보다도 슬펐다.
빠리에서 돌아오자 나는 곧 다음과 같은 편지를 받았다.
제로옴, 얼마나 슬픈 재회였어! 
그 잘못을 너는 다른 사람에게 돌리는 것 같았지만 
너 자신도 그 점을 확신하지는 못했어. 
그리고 이제는 앞으로도 늘 그러하리라는 생각이 들어. 
항상 그러하리라는 것만을 나는 잘 알고 있어. 
아아! 정말 이제는 다시 만나지 않기로 해.
서로 할 이야기가 태산같이 많은데도 왜 그런 거북한 감정, 
어색한 느낌, 마비 상태, 침묵 같은 것이 우리를 엄습했을까?
 네가 돌아온 첫날은 그 침묵마저도 즐거웠어. 
왜냐하면 침묵은 곧 사라지고 너는 굉장한 이야기를 들려 줄 것이라 믿었기 때문이야. 
그러기 전에 네가 떠나가 버릴 수는 없을 것이라 생각했어.
그러나 오르쉐에서 우리의 침울한 산책이 침묵 속에 끝나는 것을 보고, 
더구나 우리의 손이 서로 떨어져 아무런 희망도 없이 내려뜨려졌을 때, 
내 가슴은 슬픔과 괴로움으로 무너지는 것 같았어. 
그리고 무엇보다도 슬펐던 것은 너의 손이 나의 손을 놓아 버렸다는 사실이 아니라 
만일 너의 손이 그렇게 하지 않았더라면 
아마 나의 손이 그렇게 하였으리라는 생각이야. 
왜냐하면 나의 손은 이미 너의 손 안에서 즐거움을 잊었으니까. 
그 다음 날, 어제였지. 아침결에 나는 미친 듯이 너를 기다렸어. 
집안에 있기에는 너무나 마음이 뒤숭숭해서 네가 오더라도 
내가 있는 곳을 알 수 있도록 하기 위해 방파제로 오라고 
쪽지를 적어 두고 집을 나와 버렸어. 
오랫동안 파도가 센 바다를 바라보았지만 
너도 없이 혼자서 바라보기엔 너무도 가슴이 아팠어. 
문득 네가 내 방에서 나를 기다리고 있다는 생각이 떠올라 다시 집으로 돌아와 버렸어.
오후에는 혼자 있지 못하리라는 것을 나도 알고 있었어. 
왜냐하면 마들레느가 오겠다고 그 전날 말하길래 
너와는 아침에 만날 생각으로 와도 좋다고 했지.
하지만 생각해 보면 그 애가 함께 있었기 때문에 
그만큼이라도 좋은 시간을 이번 재회에 가질 수 있었던 것 같애. 
잠시 동안 나도 그처럼 힘들지 않은 우리들의 대화가 
오래오래 계속될 것만 같은 이상한 환상에 빠졌어. 
그래서 내가 그 애와 함께 않아 있던 소파 가까이로 
네가 다가와서 나를 향해 몸을 굽히며,
"잘 있어."하고 말했을 때 난 대답조차 할 수 없었어. 
모든 것이 끝아 버리는 것 같았어. 갑자기 네가 떠난다는 사실을 깨달았기 때문이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