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감성을 위한 ━━/세계문학

좁은 문 - 앙드레 지드.27

Joyfule 2010. 3. 15. 02:21
 
좁은 문 - 앙드레 지드.27   

마드레느와 함께 네가 나가버리자마자 
그것은 도저히 있을 수 없으며 또 참을 수 없는 일로 생각되었어. 
그래서 내가 다시 뛰쳐나갔다는 것을, 너는 짐작도 못했을 거야! 
좀 더 너와 이야기하고 싶었고 
아직 내가 하지 않았던 많은 이야기를 네게 들려주고 싶었어. 
벌써 나는 펠리씨 고모 댁을 향해 달리고 있었어. 
하지만 너무 늦었어. 시간도 없고, 용기도 없었어. 나는 맥없이 돌아왔어... 
이별의 편질 쓰기로 했어. 왜냐하면 결국 우리가 편지를 주고받는 건 
단지 커다란 환영에 지나지 않으며 너나 나나 자기 자신에 대하여 
편지를 쓰고 있음에 불과하다는 생각이 너무도 뚜렷이 떠올랐기 때문이야. 
그리고 제로옴! 제로옴! 
아! 우리는 늘 떨어져 있어 왔다는 생각! 
나는 이 편지를 찢었어. 정말이야. 하지만 지금 다시 쓰고 있어. 
처음 편지와 별다름 없어. 오오, 내가 전보다 너를 더 사랑하는 건 아니야! 
제로옴! 오히려 반대로 네가 내 곁에 오는 순간 나는 마음이 혼란해지며 
어색해졌지만 또 그때처럼 사무치도록 너를  사랑하고 있다고 느껴 본 적도 없었어.
하지만 거기에는 절망감이 깃들어 있었어. 
왜냐하면 솔직히 말해서 나는 너와 멀리 떨어져 있을 때 더욱 너를 사랑했기 때문이야.
벌써부터 그렇지나 않을까 걱정하고 있었어.
아아! 그렇게도 보고 싶던 너를 다시 만나자 이러한 걱정이 옳았다는 것을 나는 깨달았어. 
그리고 제로옴, 너도 그것을 인정해야 돼. 잘 있어, 
이토록 사랑하는 제로옴, 하느님이 너를 지켜 주시고 인도해 주시기를. 
안심하고 우리가 접근해 갈 수 있는 것은 하느님 뿐이야.
그리고 마치 이 편지만으로는 아직 나를 충분히 괴롭히지 못한 것처럼 
다음날 그 편지에 다음과 같은 추신을 덧붙였다.
이 편지를 부치기 전에 우리 두 사람에 관한 일에 대하여 
좀더 신중한 태도를 지녀 달라는 부탁을 하고 싶었어. 
너와 나만이 알고 있어야 할 일을 줄리에뜨나 아벨에게 들려줌으로써 
내 마음을 아프게 한 것이 몇 번인지 몰라. 
바로 이런 점에서도 네가 눈치 채기 훨씬 전부터 나는 
너의 사랑이 무엇보다도 머릿속의 사랑, 
애정과 신뢰에 대한 아름답고 지적인 집착에 불과하다는 것을 생각하게 됐어.
내가 이 편지를 아벨에게 보여 주지나 않을까 하는 염려에서 
이 몇 줄을 덧붙였음에 틀림이 없었다. 
어떤 날카로운 예감에서 그녀는 그다지도 신중하게 되었을까? 
전에 내가 한 이야기 종에서 아벨의 조언을 눈치 챈 것일까?
그로부터 나는 나와 아벨 사이에 커다란 거리가 있음을 느꼈다! 
우리는 상이한 두 갈래길을 걷고 있었던 것이다. 
내 슬픔의 쓰라린 짐을 나 혼자 짊어지도록 가르쳐 주기 위한 것이라면 
그러한 조언은 아무런 필요도 없는 것이었다.
그후의 사흘간을 나는 고통 속에서 지냈다. 나는 알리싸에게 회답을 하고 싶었다. 
그렇지만 너무 지나친 논쟁이나 심한 항의가 한 마디라도 실수를 하여 
우리의 상처를 고칠 수 없을 정도로 깊게 만들지 않을까 두려웠다.
내 사랑이 몸부림치는 편지를 나는 몇 번이나 썼다가 지우고 썼다가 지우곤 했다. 
결국은 부치기로 결심했던 그 편지의 사본, 
눈물에 씻긴 이 종이를 오늘에 와서도 눈물 없이 나는 다시 읽을 수가 없다.
알리싸! 
나를, 우리 둘을 불쌍히 여겨 줘! 너의 편지는 너무도 괴로운 것이었어. 
네 걱정을 그저 웃어 버릴 수만 있다면 얼마나 좋을까! 
그래, 네가 써보낸 모든 것을 나도 느끼고 있었어.
 하지만 그렇게 생각하기가 두려웠어. 
단지 가상에 지나지 않는 것을 어째서 너는 소름이 끼치는 사실로 생각하는지! 
그리고 어째서 그것을 어와 나 사이에 자꾸 두텁게 만들고 있는지! 
만일 네가 나를 그 전체가 부인하고 있는 이 잔인한 가정을 멀리 떨어버리고 싶어! 
하지만 일시적인 너의 두려움이 무슨 상관이 있어? 
알리싸, 
이론을 캐려고 하니 말이 얼어붙어. 단지 내 가슴에 울부짖는 소리만 들릴 뿐이야. 
나는 기교를 부리기에 너무나 너를 사랑하고 있고 
또 사랑하면 할수록 무엇이라 말을 해야 할지 모르겠어.
'머릿속의 사랑'... 거기에 대해 나는 무엇이라 대답해야 할까.
 나는 온 영혼을 기울여 너를 사랑하고 있는데 
어떻게 나의 지성과 애정을 구별할 수 있을까? 
그러나 우리의 편지 왕래가 너의 가혹한 비난의 원인이 되어 있기 때문에, 
그리고 또 그러한  편지 왕래 때문에 고무되었던 우리에게 
뒤이어 찾아 온 현실에의 전락이 그토록 쓰라린 상처를 줬기 때문에, 
또한 네가 편지를 한다 하더라도 이제는 단지 
너 자신에게 편지할 뿐이라고 생각할 것이기 때문에 
제발 당분간은 편지 왕래를 끊기로 해.
그리고 이어서 그녀의 판단에 항의하면서
생각을 돌이켜 주도록 호소하고 다시 한번 만날 약속을 해달라고 청했다. 
지난번에 만났을 때는 만사가 어긋나 있었다. 
무대 장치나 단역배우나 계절도 신통치 못했고 
열이 올라 있던 우리의 편지 왕래까지도 
우리의 재회에 대비해서 별다른 준비를 하지 못했던 것이다. 
이번에는 다시 만날 때까지 침묵을 지키리라. 
나는 돌아오는 봄 퐁궤즈마르에서 우리의 재회를 갖고 싶었다. 
거기서라면 지나간 날의 추억도 내게 유리하게 작용할 것이고 
사촌도 반가이 맞아 주실 것이기 때문이었다. 
그리하여 부활제 방학을 이용해서 
며칠이고 알리싸가 좋다고 생각하는 동안 퐁궤즈마르에 머무르고 싶었다.
내 결심은 확고한 것이었다. 
편지를 부치자 나는 곧 학업에 열중할 수가 있었다.
그 해가 끝날 무렵 나는 알리싸를 다시 보게 되었다. 
몇 달 전부터 건강이 나빠지고 있었던 미스 아슈뷔르똥이 
크리스마스를 나흘 앞두고 세상을 떠났기 때문이다. 
제대 후에 나는 다시 그녀와 함께 살았으며 
거의 함께 있었기 때문에 임종에도 그 곁에 있을 수가 있었다.
알리싸에게서 온 엽서를 받아 보고 나는 이번 나의 슬픔보다도 
우리의 침묵의 맹세를 그녀가 더욱 중요시하고 있다는 것을 알았다. 
삼촌이 참석을 못하시기 때문에 
자기가 매장에만 잠시 참례하러 오겠다고 적혀 있었다.
장례식에서도 그리고 상여를 따라갈 때도 거의 그녀와 나 둘뿐이었다. 
나란히 걸으면서 우리는 별로 말을 하지 않았다. 
그러나 교회에서 그녀가 내 곁에 앉아 있을 때 
나는 몇 번이고 그녀의 다정한 눈길이 내게로 오는 것을 느꼈다.
"그럼 알았지."
헤어질 무렵 그녀는 말했다.
"부활절 전에는 아무것도...."
"그래, 하지만 부활절에는...."
"기다리고 있겠어."
우리는 묘지입구에 있었다. 
나는 역까지 바래다 주겠다고 말했다 
그러나 그녀는 지나가는 마차를 세우더니 잘 있으란 말 한 마디 없이 나를 두고 가버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