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좁은 문 - 앙드레 지드.25

Joyfule 2010. 3. 12. 10:42
 
좁은 문 - 앙드레 지드.25   

에뜨와르 씨와 줄리에뜨는 오늘 아침에 떠났어. 
무엇보다도 그 갓난애가 떠나서 서운해. 
여섯 달 후에 다시 보면 그 몸집도 퍽 달라지겠지. 
지금까진 그 애의 동작을 하나도 빼지 않고 보아 왔어. 
생성이란 언제나 퍽 신비롭고 놀라운 거야. 
우리가 평소에 주의만 하면 놀라운 일을 더 많이 보게 될 거야. 
희망에 가득 찬 그 잠든 모습을 바라보면서 나는 얼마나 많은 시간을 보냈는지 몰라. 
발전이란 그 무슨 이기심, 자기 만족, 선에 대한 갈망의 결핍 때문에 
그처럼 빨리 정지되고, 또 모든 생물이 
그리도 멀리 하느님에게서 떨어져 머물러 버리는 것일까?
오오! 그렇지만 만일 우리가 좀 더 하느님께 가까이 갈 수 있다면, 
좀 더 가까이 가기를 원한다면 얼마나 마음의 격려를 받을 것인가!
줄리에뜨는 퍽 행복해 보여. 
나는 그 애가 피아노와 독서를 그만둔 것을 보고 처음에는 슬펐어. 
하지만 에뜨와르 떼씨에르 씨는 음악이나 독서에는 별로 취미가 없어. 
확실히 남편이 따라 오지 못하는 즐거움을 찾지 않는 것은 줄리에뜨의 현명한 처사 같애. 
반대로 줄리에뜨는 남편이 하는 일에 흥미를 갖고 
또 그이도 자기가 하는 모든 사업을 그 애에게 가르쳐 주고 있어. 
금년엔 그 사업도 꽤 번창하고 있어.
다 결혼을 인해 르아브르에 많은 고객이 생긴 덕택이라고 그이는 농담을 하지. 
이번에 그이가 사업 관계로 여행을 하게 될 때 로베르도 따라 갔어. 
에뜨와르는 여러 가지로 그 애를 돌보아 줄 뿐 아니라 
그 애의 성격도 잘 알고 있다고 하면서 
그 애가 그런 일에 정말 취미를 갖게 될 거라고 생각하고 있어.
아버지는 훨씬 좋아지셨어. 딸이 행복해진 걸 보니  젊어지시는 모양이야. 
농장 일, 정원 일에 다시 흥미를 느끼시고 되었고 
또 미스 아슈뷔르똥과 셋이서 전에 시작했다가 떼씨에르씨 가족이 와서 중단했던 
소리를 높여 읽던 독서를 다시 계속하자고 때로는 말씀하셔, 
두 분에게 휴브너 남작의 여행기를 읽어 드리고 있는데 나도 퍽 재미를 느끼고 있어.
나도 이제는 독서할 시간을 더 많이 가질 거야. 
하지만 네게 서 무슨 지시가 오기를 기다리고 있어. 
오늘 아침 몇 권의 책을 하나하나 들춰 보았지만 마음에 드는 것은 한 권도 없었어.
이 무렵부터 알리싸의 편지는 차츰 혼란되고 절박해졌다. 
여름이 끝날 무렵 다음과 같은 편지가 왔다.
네가 걱정을 할까 두렵기는 하지만 
내가 얼마나 너를 기다리고 있는가를 말해야만 하겠어. 
너를 다시 만날 때까지의 하루하루가 짐이 되어 무겁게 나를 누르고 있어. 
아직도 두 달! 지금까지 너와 떨어져 지내 온 기간보다도 더 긴 것 같애! 
이 가다리는 마음을 좀 잊어 보려고 기울이는 모든 노력이 
우스꽝스러운 일시적인 것으로만 여겨져서 
이제 나는 아무것에도 노력을 기울일 수가 없게 됐어. 
책에서도 이제는 아무런 힘이나 매력도 느끼지 못하게 되었고 산책도 재미가 없어.
대자연 전체가 그 위력을 잃은 채 정원도 퇴색되고 향기를 잃은 것 같애. 
오히려 너의 그 고역, 의무적이고 강제적인 그 훈련, 
언제나 너로부터 너 자신을 빼앗아 너를 피곤하게 하고 하루하루를 빨리 지나가게 하며 
저녁이 되면 피곤에 지친 너를 잠들게 하는 그 고역이 내게는 부러워.
훈련에 관해서 써보낸 감동적인 너의 편지가 나를 사로잡고 
기상 나팔 소리에 벌떡 튀어 일어나곤 했어. 
확실히 그 소리가 들리는 것 같았어. 
네가 이야기하는 그 가벼운 도취, 아침 잠을 깨면서 느끼는 기쁨, 
그 절반쯤 황홀한 경지, 이 모든 것을 나는 아주 손쉽게 상상할 수 있어. 
새벽의 얼어붙은 눈부신 광명 속에서 말제빌르의 그 고지는 얼마나 아름다웠을까...
얼마 점부터 몸이 좀 불편한 것 같아. 아니, 대수로운 건 아니야.
단지 너를 좀 지나치게 기다리는 탓이라 생각해.
 그리고 여섯 주일 뒤에
이것이 마지막 편지야. 제로옴, 
너의 돌아올 날까지 아직 확정되지 않았다 하더라도 그리 늦어지지야 않겠지. 
나는 퐁궤즈마르에서 너를 만나고 싶었으나 
기후가 나빠지고 추워져서 아버지는 자꾸 시내로 돌아가자고 하셔. 
지금은 줄리에뜨도 로베르도 없으니 얼마든지 집에 와서 머무를 수 있지만 
너는 역시 펠리씨 고모도 그렇게 하는 걸 기뻐하시리라 생각되고.
다시 만날 날이 다가올수록 점점 불안한 마음으로 기다리고 있어. 
거의 두려움에 가까운 그러한 기분이야. 
네가 돌아오기를 그처럼 기다렸는데 막상 네가 돌아온다니 두려워지는 것 같애. 
이 이상 거기에 대해서 생각지 않으려고 애쓰고 있어. 
네가 누르는 초인종 소리, 계단을 올라오는 너의 발자국 소리를 
상상하기만 해도 숨이 끊어지는 것 같고 가슴이 꽉 막히는 것 같아. 
무엇보다도 내게서 어떤 말이 나오기를 기대해서는 안 돼. 
내 과거가 거기서 끝나 버리는 것 같아. 
그 너머 저쪽에는 아무 것도 보이지 않아. 내 삶이 정지된 듯....
그로부터 나흘 후에, 
다시 말하면 내가 제대하기 일주일 전에 극히 짧은 편지를 다시 한 통 받았다.
제로옴, 너무 오랫동안 르아브르에 머물러 
우리들의 첫 재회의 기간을 길게 끌지 않기로 하려는 데는 절대 찬성이야. 
지금까지 서로 편지에 쓴 것 외에 또 무슨 할 말이? 
그러나 학교 등록 때문에  28일까지 빠리에 가야 한다면 조금도 주저하지 말고 가.
이틀밖에는 함께 있지 못한다고 섭섭히 생각지도 말아. 
우리 앞에는 한평생이 있지 않아.
우리는 쁠랑띠에 이모 댁에서 처음으로 만났다. 
군 복무 탓인지 나는 갑자기 둔하고 어색해진 것 같았다. 
그리고 내가 변했다는 것을 그녀도 알고 있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다. 
하지만 그런 헛된 인상이 우리 둘 사이에 무슨 상관이 있으랴?
나는 그녀의 옛 모습을 이제는 완전히 찾아보지 못하지나 않을까 
두려워서 처음에는 그녀를 똑바로 쳐다보지도 못했다. 
아니, 우리를 어색하게 만든 것은 오히려
 모든 사람들이 우리에게 강요하려는 약혼자끼리의 어리석은 역할, 
우리 둘만을 한 자리에 남겨 두려는 친절, 우리 앞에서 물러나려는 그 친절이었다.
"고모님, 정말 아무 상관없어요. 남이 들어서 어색할 이야기는 아무것도 없어요."
알리싸는 이모가 물러나가고 수선을 피우는 것을 보고 소리쳤다.
"아니다! 그래도 그렇지 않은 거다! 난 너희들을 잘 알고 있어. 
오랫동안 떨어져 있으면 자질구레하게 할말이 태산 같은 법이야."
"정말이에요, 고모님. 나가시면 오히려 저희들이 쑥스러워져요."
그 목소리에는 노기마저 서려 거의 알리싸의 목소리 같지가 않았다.
"이모님, 나가시면 저희는 한 마디도 이야기하지 않겠어요."
나는 웃으면서, 그러나 단둘이 남게 되면 어떻게 할까 하는 
일종의 두려움에 살 잡혀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