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좁은 문 - 앙드레 지드.30

Joyfule 2010. 3. 18. 06:53
 
좁은 문 - 앙드레 지드.30   

다음날도 그녀는 그 머리 모양이나 옷차림을 바꾸지 않았다. 
집 앞에 내놓은 벤치에서 앉아 그녀는 
전날 저녁부터 손에서 떼지 않던, 
바느질이라기보다는 꿰매는 일을 계속하고 있었다. 
자기 옆의 벤치였는지 혹은 탁자 위엔지 
낡은 양말이 가득든 바구니를 놓고 
그 속에서 줄곧 일거리를 꺼내는 것이었다. 
며칠 뒤에는 냅킨과 홑이불을 만지고 있었다... 
이러한 일에 그녀는 완전히 몰두해 있는 것 같았고 
이로 인해 입술은 표정을 잃었고 눈에는 광채가 없었다.
"알리싸!"
어느 날 저녁 나는 그녀의 얼굴이 너무나 멋없게 변한 것을 보고 놀라 소리를 쳤다. 
그녀의 모습을 찾아보기가 힘들 정도로 변해 버렸고 
내가 조금 전부터 뚫어지게 그녀를 쳐다보았으나 내 눈길을 느끼지 못하는 것 같았다.
"왜 그래?"
그녀는 머리를 들며 말했다.
"내 말이 들리는지 알아 보고 싶었어. 
네가 하고 있는 생각이 내게서 멀리 가 있는 것 같아서."
"아니야, 난 여기 있어. 하지만 여간 조심을 하지 않고는 꿰매질 못해."
"바느질하는 동안에 책을 읽어 줄까?"
"잘 들을 수 있을 것 같지가 않아."
"왜 그렇게 신경 쓰이는 일을 하지?"
"내가 하지 않으면 다른 사람이 해야 돼."
"이런 일로 하루하루 벌어 사는 여자들이 많지 않아. 
절약을 하려고 이런 보람 없는 일을 하는 건 아니겠지?"
그녀는 대뜸 그 일이 어떤 일보다 더 재미가 있으며
벌써 오래 전부터 다른 일은 하지 않아 
다른 일에는 서툴러져 버렸다고 단언하는 것이었다. 
말을 하면서 그녀는 줄곧 미소를 띠고 있었다. 
그녀의 음성이 그 순간보다 더 부드러웠던 적은 없었지만 
그러나 나는 한없이 서글펐다 
그녀의 표정은 '당연한 이야기를 하고 있는데 
왜 그렇게 슬퍼하지?'라고 말하는 듯 싶었다.
그리하여 내 마음 속의 모든 항의는 입술에까지 올라오기도 전에 목에서 막혀 버렸다.
그로부터 이틀 뒤 둘이서 장미꽃을 꺾고 나자 그녀는 나에게 
그 해에는 아직 한번도 들어가 보지 못했던 자기 방으로 꺾은 꽃을 옮겨 달라고 했다. 
나는 얼마나 희망에 부풀었던가! 
나는 이 말을 듣고 슬퍼해서는 안된다고 다시 한번 마음 먹었다. 
그녀의 말 한 마디로 내 마음은 나을 수도 있을 것이다.
그 방에 들어설 때마다 나는 감격에 사로잡히곤 했다. 
거기에는 무엇인지 모르게 아늑한 고요함이 감돌아 
알리싸의 모습을 떠오르게 하는 것이었다.
창과 침대 둘레에 친 커튼의 푸른 그늘, 반들반들한 마호가니 가구들, 
정돈되고 정결하고 조용한 방안 분위기가 
그녀의 티없는 순결함과 사색적인 우아로움을 이야기해 주는 것이었다.
그날 아침 그녀의 침대 곁 벽에 내가 전에 이탈리아에서 가져온 
두 개의 커다란 마사치오 의 사진이 걸려 있지 않은 것을 보고 나는 놀랐다. 
어떻게 됐느냐고 물으려던 찰나에 내 시선은 바로 그 옆, 
그녀가 애독하는 책들을 얹어 주는 선반 위로 갔다.
이 조그마한 장서는 절반은 내가 준 책과 
또 절반은 우리가 같이 읽은 책으로 오랜 간을 두고 꾸며졌던 것이다.
나는 그 책들이 모두 없어지고 대신 그녀가 경멸해 주었으면 싶던 
저속한 신앙에 관한 너절한 작은 책자들만이 꽂혀 있는 것을 보았다. 
갑자기 눈을 드니 알리싸는 웃고 있었다. 
그렇다, 알리싸는 나를 바라보며 웃고 있었다.
"미안해."하고 그녀는 곧 말했다.
"네 표정을 보고 웃었어. 내 장서를 보며 갑자기 얼굴을 찌푸리길래...."
나는 농담할 기분이 내키지 않았다.
"아니, 알리싸, 정말로 요즘은 저런 책을 읽고 있어?"
"응, 이상해?"
"자양이 많은 양식에 익숙해 온 지성은
 이런 무미 건조한 것을 맛보면 구역질이 날 것이라 생각했는데."
"무슨 소리지?"하고 그녀는 말했다.
"이건 모두 경건한 사람들로서 열심히 자기들이 생각하는 바를 설명하고, 
나와 솔직히 이야기해 주는 사람들이야. 
그리고 나는 이런 사람들과 함께 있는 것이 퍽 좋아. 
처음부터 이 사림들은 미사 여구의 함정에도 빠지지 않았으며, 
나 또한 이 사람들의 쓴 것을 읽으면서 
세속적인 찬양은 하지 않을 것이라는 것을 알고 있어."
"그래 이제는 이런 것밖에는 읽지 않아?"
"그렇다고 할 수 있지. 
그래, 몇 달 전부터는. 게다가 이제는 독서할 시간도 별로 없어. 
사실은 아주 최근에도 네가 전에 감탄할 만하다고 가르쳐 주려고 해보았지만, 
성경에 나오는, 제 키를 한 자 늘여 보려고 애를 쓴 사나이와 같은 결과가 되어 버렸어."
"네게 그런 이상한 생각을 일으키게 한 그 '위대한 작자'란 누구야?"
"그 작자가 내게 그런 생각을 일으키게 한 건 아니야. 
단지 그의 작품을 읽으면서 그렇게 생각했을 따름이야, 
빠스깔이야. 아마도 벌로 좋지 않은 구절을 읽었던 모양이야..."
나는 초조한 몸짓을 했다. 
그녀는 아직 손질하지 않은 꽃다발에서 눈을 들지도 않은 채 
마치 교과서나 암송하듯이 맑고 단조로운 목소리로 이야기하고 있었다. 
내 몸짓에 잠시 말을 끊더니 같은 어조로 계속했다.
"그와 같은 호언 장담이나 열성에는 놀라지 않을 수 없어. 
하지만 그것을 증명하는 것은 거의 없어. 
빠스깔의 그 비상한 어조가 신앙에서라기보다는 
오히려 회의의 결과가 아닌가 하고 나는 가끔 생각했어. 
완전한 신앙이란 그처럼 눈물을 흘린다거나 목소리를 떠는 법이 없으니까."
"빠스깔의 음성이 아름다운 것은 바로 그 떨림, 
그 눈물에 있는 거야."라고 나는 반박을 하려 했으나 용기가 없었다. 
왜냐하면 그러한 말 속에는 내가 알리싸에게서 
귀히 여기던 것을 아무것도 찾을 수 없었기 때문이었다. 
나는 그때의 대화를 고치거나 논리적인 것으로 다듬지 않고 그대로 여기에 옮긴다.
"만일 그가 현세의 생활에서 먼저 즐거움을 제거해 버리지 않았더라면."
하고 그녀는 말을 이었다.
"현세의 생활을 저울에 달아본다면 아마도...."
"어떻단 말이야?"
나는 그녀의 이상한 이야기에 놀라 물었다.
"그가 풀이하는 막연한 행복보다 더  무거울지 몰라."
"그렇다면 그 행복을 믿지 않아?"하고 나는 소리쳤다.
"그건 아무래도 좋아."
그녀는 말을 계속했다.
"거래같이 이해타산이 있는 의심을 피하기 위해서는 
그 행복은 차라리 막연한 편이 좋겠어. 
하느님을 사모하는 마음이 덕행에 몸을 바치는 것은 
무슨 보수를 바라서가 아니라 타고난 고귀한 마음씨 때문이 아니겠어?"
"바로 거기에서 저 빠스깔과 같은 
고귀한 마음의 피난처인 그 비밀의 회의주의가 나온 거야."
"회의주의가 아니지, 장세니즘이야."하고 그녀는 미소지으며 말했다.
"하지만 그것이 나와 무슨 상관이 있어? 
여기 이 불쌍한 사람들은--하고 그녀는 자기 책을 돌아보았다.--
자기들이 장세니스트인지 또는 
다른 그 무엇인지 대답하라고 하면 퍽 당황해 할 거야. 
이들은 마치 바람에 불리는 풀잎처럼 당황해 할 거야. 
이들은 마치 바람에 불리는 풀잎처럼 아무런 악의도 괴로움도 
또 아름다움을 보이려는 마음도 없이 그저 하느님 앞에서 고개를 숙이고있는 거야. 
자기들이 보잘 것 없는 존재라 생각하면서, 
단지 자기들에게 어떤 가치가 있다면 그것은 하느님 앞에서 
자기들 스스로의 모습을 지워 버림으로써 그러할 수 있다는 것을 알고 있어."
"알리싸."하고 나는 소리쳤다.
"왜 너는 너의 날개를 떼어 버리려는 거야?"
그녀의 음성이 너무나 잔잔하고 자연스러웠기 때문에 
그만큼 내 고함 소리는 우스울 정도로 과장된 것처럼 생각되었다. 
그녀는 고개를 저으면서 미소를 지었다.
"이번에 빠스깔을 읽고 얻은 것은...."
"뭐야?"
그녀가 말을 중단했기 때문에 내가 물었다.
"예수님의 이 말씀이야. 
'생명을 구하려고 애쓰는 자는 그것을 잃을 것이다.' 그 나머지 것은...."
그녀는 한층 더 환히 미소를 지으며 나를 똑바로 바라보면서 말을 계속했다.
"사실은 잘 모르겠어. 
이 조그마한 사람들과 얼마 동안 살고 있다가 
위대한 사람들의 숭고한 정신에 접하게 되면 당장 숨이 가빠져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