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좁은 문 - 앙드레 지드.35

Joyfule 2010. 3. 24. 08:30
 
좁은 문 - 앙드레 지드.35   

7월 16일
줄리에뜨는 행복하다. 
그 애 자신이 그렇게 이야기하고 있고 또 그렇게 보인다. 
나는 그것을 의심할 권리도 없고 이유도 없다. 
그런데 지금 그 애 곁에서 내가 느끼는 이 불만족감, 
어색한 기분은 어디에 연유하는 것일까?....
아마도 그것은 이 행복이 너무나 쉽사리 획득되었고 
또 너무나 빈틈없이 '들어맞는' 그러한 것이기 때문에 
영혼을 죄고 질식시킨다는 느낌에서 오는 것이 아닐까... 
그리고 지금 나는 내가 바라는 것이 행복 그 자체인지 
혹은 행복에 이르기까지의 과정인지 묻고 있다. 
오오, 주여! 
제가 너무 쉽게 도달할 수 있는 행복은 제게서 멀리 해 주소서! 
제가 당신에게 이를 때까지 제 행복을 미루고 연기 할 수 있도록 가르쳐 주시옵소서.
그 다음은 여러 장이 뜯겨져 나갔다. 
아마 르아브르에서의 우리의 쓰라린 재회에 관한 대목이었을 것이다. 
일기는 그 다음해에 다시 시작되었다. 
날짜는 적혀 있지 않으나 틀림없이 내가 퐁궤즈마르에 머물러 있던 때에 쓴 것이다.
때때로 그 이야기하는 데 귀를 기울이고 있노라면 
생각하고 있는 나 자신을 내가 바라보고 있다는 느낌이 든다. 
그는 나에게 나 자신을 내가 설명해 주고 또 밝혀 준다. 
그가 없이 내가 존재할 수 있을까? 그가 있기 때문에 나는 존재하는 것이다.
즉 나는 그에 대해서 내가 느끼는 것이 
과연 남들이 사랑이라고 부르는 그것인가 망설여진다. 
흔히 사람들이 그려내는 사랑이란 내가 그리는 사랑과는 너무나 다르다. 
나는 아무 말 없이 나 자신 그것을 깨닫지 못한 채 그를 사랑하고 싶다.
그가 없이 살아야 한다면 무엇 하나 내게 기쁨을 줄 것은 없다. 
내가 덕을 행하는 것도 모두 그의 마음에 들기 위해서이다. 
그런데도 그의 곁에 있으면 그것이 흔들거리는 걸 느낀다.
나는 피아노 연습하기를 좋아했다. 
하루하루 진전이 있을 것 같았기 때문이었다. 
그것은 또한 내가 외국어로 된 책을 읽을 때 맛보는 
즐거움을 설명해 주는 것이기도 하다. 
그렇다고 해서 외국어가 더 좋다든가 
내가 좋아하는 몇몇 작가들이 외국 작가들만 못하다는 것은 아니다. 
단지 그 뜻과 감정을 이해하기가 좀 어렵다는 것과 
그 어려움을 극복해 나가며 차츰차츰 
보다 더 잘 극복해 나갈 수 있다는 데서 느끼는 무의식적인 자만심이, 
지적인 쾌락에 알지 못할 영혼의 만족감을 더해 주기 때문이다. 
그런데 나는 이 영혼의 만족 없이는 살아가지 못할 것 같다.
아무리 행복해도 나는 진보가 없는 상태는 바랄 수가 없다. 
신성한 기쁨이란 하느님 안에서의 융합이 가는 것이라고 생각한다. 
만일 언어의 희롱을 꺼리지 않는다면 
나는 진보적이 아닌 기쁨을 경멸한다고 말할 것이다.
오늘 아침 우리 둘이는 가로수가 있는 길가의 벤치에 앉아 있었다. 
우리는 아무 말도 하지 않았고 또 할 필요도 없었다... 
별안간 그는 나에게 내세라는 것을 믿느냐고 물었다.
"물론이야 제로옴."하고 나는 소리쳤다.
"내게 그것은 희망 이상의 것이야. 그것은 확신이야."
그러나 갑자기 내가 외친 이 말 속으로 
나의 모든 신앙이 쏟아져 들어간 것처럼 생각되었다.
"그런데."하고 잠시 말을 중단하더니,
"신앙이 없다면 넌 지금과는 행동이 달라질까?"하고 그는 덧붙였다.
"그걸 어떻게 알 수 있어?"하고 나는 대답했다. 
그리고 나는 이렇게 말했다.
"너는 역시 너 자신의 생각이야 
어떻든간에 일단 열렬한 신앙에 잠긴 이상 달리 행동할 수 없는 거야. 
그리고 만일 달라진다면 난 너를 사랑하지 않을 거야."
아니야, 제로옴, 아니야,
 우리가 덕을 행하는 것은 미래의 보상을 위해서가 아니야. 
고귀하게 태어난 영혼에게는
 스스로의 고행에 대한 보상을 생각한다는 것은 모욕적인 말이야. 
그것은 이러한 영혼이 지니는 아름다움의 형상이야.
아버지의 건강이 다시 나빠졌다. 
제발 대단한 병이 아니시기를 바라지만 사흘 전부터 우유로만 연명을 하고 계신다.
어젯 저녁 제로옴이 자기 방으로 올라간 후에 
나와 함께 늦도록 앉아 있었다기보다는 오히려 거의
--그런 일이 없었는데 어째서 그랬는지--누워 있었다. 
등갓이 내 눈과 내 몸의 상체에 불빛을 가려 주고 있었다. 
나는 옷에서 비죽이 나와 불빛에 드러나 있는 
두 발끝을 기계적으로 바라보고 있었다.
아버지가 들어오시더니 문 앞에 서신 채로 미소하시는 듯 
이상한 표정으로 나를 뚫어지게 바라보시는 것이었다. 
어쩐지 당황해져서 나는 몸을 일으켰다. 
그러자 아버지는 손짓을 하시며,
"이리 와 내 옆에 앉아라."하고 말씀하시는 것이었다. 
밤이 퍽 깊었는데도 가려 하시지 않고 헤어지신 이래 
처음으로 나에게 어머니에 관한 이야기를 하시기 시작했다. 
어떻게 해서 어머니와 결혼하시게 되었는지, 
얼마나 어머니를 사랑하셨는지, 
또 처음에 어머니가 아버지에게 
얼마나 귀중한 존재였던가 하는 이야기를 들려 주셨다.
"아버지."하고 나는 마침내 말했다.
"왜 오늘 저녁에 그런 이야기를 하세요? 하필 오늘 저녁에...."
"그건 방금 응접실로 들어서면서 소파 위에 누워 있는 너를 보았을 때, 
잠깐 동안이지만 네 어미를 보는 것 같은 생각이 들었기 때문이야."
내가 그렇게 고집해서 물어 본 이유는 
그날 저녁 제로옴이 내가 앉은 안락의자에 기대어 서서 내게 몸을 굽혀 
나의 어깨 너머로 내가 읽던 책을 함께 읽었던 일이 생각났기 때문이다. 
나는 그의 모습을 볼 수는 없었지만 그 숨결을 느낄 수가 있었고 
그의 체온과 떨림도 느껴지는 것 같았다. 
나는 여전히 책을 읽는 척하고 있었지만 
이미 아무 것도 머리에 들어오지 않고 있었다.
책 줄조차 가려 볼 수 없을 지경이었다. 
너무도 이상한 심적 동요에 사로 잡혔기 때문에 
아직 그럴 기력이 있을 때 서둘러 일어섰다. 
다행히도 그가 눈치채지 못하는 사이에 나는 잠시 밖으로 나올 수가 있었다. 
하지만 잠시 후 응접실에서 홀로 그 소파에 누워 있었을 때 
나는 정말 어머니의 생각을 하고 있었다.
불안하고 답답하고 나 자신 비참하게 여겨졌을 뿐 아니라 
회한처럼 마음 속에 솟아오르는 지난 날의 추억에 쫓겨 
그날 밤 나는 거의 잠을 이룰 수가 없었다.
주여, 악의 모습을 띤 모든 것이 얼마나 무서운 것인가를 가르쳐 주시옵소서.
가엾은 제로옴! 
그가 약간의 몸짓을 하기만 하면 되리라는 것, 
그리고 때로는 내가 그것을 기다리고 있다는 것을 알기만 한다면....
아직 어렸을 때 나는 벌써 그가 있기 때문에 아름다워지고 싶었다. 
지금에 와서 생각해 보면 내가 '완전'을 지향했던 것도 그를 위해서였다. 
그런데 이 완전을 이룩하기 위해서는 반드시 그가 없어야 된다는 것, 
이것이 오오, 주여! 바로 당신의 모든 가르침 중에서 
무엇보다도 저의 영혼을 당황케 하는 것입니다.
덕과 사랑이 융합되는 영혼을 지닐 수 있다면 그것은 얼마나 행복한 것인가! 
사랑한다는 것, 힘껏 더욱 더 사랑하는 것 외에 다른 덕이라는 것이 있을까? 
나는 때때로 의심해 본다. 
하지만 아아! 어떤 날에는 덕이란 사랑에 대한 항거로밖에는 생각되지 않는다. 
그럴 수가 있을까? 내 마음의 가장 자연스러운 경향을 감히 덕이라 부를 수 있을까? 
오오 매혹적인 궤변! 
허울 좋은 권유! 종잡을 수 없는 행복의 환영이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