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좁은 문 - 앙드레 지드.33

Joyfule 2010. 3. 22. 02:38
 
좁은 문 - 앙드레 지드.33   

"알리싸! 내가 누구와 결혼을 하겠어? 
내가 너밖에는 사랑할 수 없다는 것을 잘 알고 있지 않아...."
그리고는 갑자기 미친 듯이 난폭하게 그녀를 껴안으면서 나는 마구 키스를 했다. 
얼마동안 나는 거의 뒤로 몸을 젖힌 채, 
온몸을 내맡긴 듯한 그녀를 꼭 껴안고 있었다 
나는 그녀의 눈길이 흐려지는 것을 보았다. 
그러자 그녀는 눈시울이 닫혀지며 
비길 데 없을이만큼 뚜렷하고 아름다운 목소리로 말했다.
"우리들 서로를 불쌍히 여겨 줘, 제로옴. 우리의 사랑에 상처를 주지 마."
아마 그때도 그녀는 말했을 것이다.
"비겁한 짓은 하지 말아."
혹 이것은 내 자신 스스로 한 말인지도 모른다. 
그러나 갑자기 그녀 앞에 무릎을 꿇고 경건한 마음으로 
그녀를 두 팔로 감싸면서 말했다.
"그렇게도 나를 사랑했다면 어째서 항상 나를 밀어냈어? 
이것 봐! 처음에 나는 줄리에뜨의 결혼을 기다렸어. 
너도 또한 그녀가 행복해지기를 기다리고 있다는 것을 알았어. 
그녀는 이제 행복해. 이건 너 자신이 네게 한 이야기야. 
오랫동안 나는 네가 아버지를 모시고 계속 그 곁에서 지내길 바란다고 생각했어. 
하지만 이제는 우리 단 둘 뿐 아냐?"
"오오! 지난 일엔 마음을 쓰지 않기로 해."하고 그녀는 중얼거렸다.
"이제는 이미 페이지를 넘기고 난 뒤야."
"그러나 아직 늦지 않았어, 알리싸!"
"아니야  제로옴, 이제는 늦었어. 
사랑을 통해 우리가 서로를 위해 사랑보다 
더 훌륭한 것을 엿보게 되었을 때부터 때는 이미 늦었던 거야. 
네 덕택으로 내 꿈은 그처럼 높이높이 올라갔고 
따라서 이지는 인간 세상의 어떤 충족감도 
그것을 손상시키진 못할 것일까 하고 나는 종종 생각해 봤어. 
우리의 사랑이 완전치 못한 순간부터 
나는 우리의 사랑을 지탱해 낼 수가 없을 것 같았어."
"서로가 떨어져 살 때 우리의 삶이 어떠한 것일까 생각해 봤어?"
"아니! 전혀."
"이젠 알겠지! 
나는 3년 전부터 테가 없어 쓰라린 마음으로 헤매다녔어...."
저녁이 다가오고 있었다.
"추워."
그녀는 일어서더니 내가 팔을 다시 잡을 수도 없을 정도로 
쇼올을 바싹 죄어서 몸을 감싸면서 말했다.
"우리를 불안하게 만들고 또 우리가 
잘못 이해하지나 않았나 걱정하던 이 성경 구절이 생각날 거야,
 '하느님이 우리를 위하여 좋은 것을 예비하셨은즉 
우리가 아니면 저희로 온전함을 이루지 못하게 하려 하심이니라....'"
"그 말을 항상 믿고 있어?"
우리는 잠시 동안 말없이 걸었다. 그녀가 다시 말을 이었다.
"그 더욱 좋은 것, 그것을 상상학 수 있어, 제로옴?"
갑자기 눈에서 눈물이 솟아오르는 채 그녀는 여전히
 '그 더욱 좋은 것!'을 되풀이하고 있었다.
우리는 조금 전에 그녀가 나왔던 채소밭의 비밀문 앞에 이르렀다. 
그녀는 나를 돌아다보며,
"안녕."하고 말했다.
"아니야, 더 오지 마. 안녕, 사랑하는 나의 벗, 
이제부터 시작되는 거야, 더 좋은 것이."
그녀는 팔을 뻗쳐 내 어깨 위에 두 손을 얹고 
형언할 수 없는 사랑에 가득 찬 눈으로 붙드는 듯 
혹은 가라는 듯 한동안 나를 물끄러미 바라보았다.
문이 닫히고 그 위로 빗장 지르는 소리가 들리자 
나는 참을 수 없이 복받치는 절망에 사로잡혀 그 문에 기잰 채 쓰러졌다. 
그리고는 캄캄한 어둠 속에서 오랫동안 울고 흐느꼈다.
그러나 그녀를 붙잡았더라면, 
그 문을 밀치고 들어갔더라면. 
어떻게든지 해서--하긴 내가 못 들어가도록 잠겨 있지도 않았겠지만--
집안으로 들어갔더라면. 하지만 아니다. 
지금에 와서 이 모든 과거를 훑어보아도...아니다.
그것은 내게는 불가능한 일이었다.
지금 나의 심정을 모르는 사람은 그때의 내 심정도 몰랐을 것이다.
걷잡을 수 없는 불안에 사로잡혀 나는 며칠 뒤 줄리에뜨에게 편지를 썼다. 
내가 퐁궤즈마르에 갔었다는 것, 알리싸의 창백하고 여윈 모습에 놀랐다는 것을 썼다. 
알리싸의 건강에 주의해 달라는 부탁과 
알리싸 자신에게서는 이제 편지를 기대할 수 없게 되었으니 
그녀 대신 가끔 소식이나 전해달라고 부탁했다. 
그후 한 달도 채 못되어 다음과 같은 편지를 받았다.
제로옴
너무나도 슬픈 소식을 전해 드립니다.
우리의 가엾은 알리싸는 이미 이 세상에 있지 않습니다. 
아아! 오빠가 편지 속에서 걱정을 한 것도 다 근거가 있는 일이었군요. 
몇 달 전부터 언니는 확실한 병 증세도 없이 점점 쇠약해 졌어요. 
그래 언니는 애 애걸에 못이겨 르아브르의 A 의사의 진찰을 받기도 했어요. 
그 후 의사 선생님으로부터 편지가 왔는데 걱정할 게 없다는 내용이었어요. 
그러나 오빠가 다녀가신 뒤 사흘 만에 언니는 갑자기 퐁궤즈마르를 떠났습니다. 
그것도 로베르의 편지를 받고서야 알았습니다. 
언니가 편지를 하는 일은 극히 드물어서 
로베르가 아니었던들 그런 줄은 까맣게 모르고 있었을 거예요. 
언니한테서 소식이 없다고 걱정하지도 않았을 테니까요. 
언니를 그대로 떠나도록 내버려 둔 것과 
또 빠리까지 따라가지 않은데 대해 나는 로베르를 호되게 나무랐습니다. 
그 뒤에는 언니의 주소조차 모르게 되었답니다. 
언니를 볼 수도 없고 편지도 낼 수가 없으니 내가 얼마나 마음이 아팠겠습니까?
며칠 뒤에 로베르가 빠리에 갔지만 아무것도 알아내지를 못했습니다. 
어찌나 게으른지 그의 성의를 의심할 지경이었습니다. 
결국 경찰에 알리는 수밖에 없었습니다 
에뜨와르가 가서 언니가 숨어 있던 작은 요양원을 찾아냈어요. 
아아! 그러나 이미 늦었어요. 
언니의 죽음을 알리는 원장의 편지와 
언니를 다시 보지도 못한 에뜨와르의 전보를 동시에 받았습니다. 
마지막 날 언니는 우리가 통지를 받을 수 있도록 
한 장의 봉투 위에 우리의 주소를 적어 놓았습니다. 
다른 한 장의 봉투에는 르아브르의 우리 공증인에게 보낸 
유언장 사본이 들어 있었습니다. 
그 편지의 한 부분은 오빠에 관한 것인 듯 생각됩니다. 
근간 알려 드리겠습니다. 
그저께 치른 장례식에는 에뜨와르와 로베르가 참석했습니다. 
상여를 따라간 것은 그 둘만이 아니었습니다. 
요양원 환자 몇 사람이 자진하여 식에 참석했고 묘까지 상여를 따라갔습니다.
나는 다섯째 아이의 출산이 오늘 내일 해서 섭섭하게도 집을 나서지 못했습니다.
오빠, 언니의 죽음이 얼마나 오빠를 슬프게 할 것인가를 알고 있어요. 
편지를 쓰는데도 퍽 힘이 드는군요. 
하지만 나 아닌 다른 사람에게, 에뜨와르나 로베르조차도 
우리 둘만이 이해할 수 있었던 알리싸에 관한 이야기를 맡기고 싶지는 않았어요. 
이제는 나이 먹은 가정 주부가 됐고 쌓이고 쌓인 잿더미가 
뜨겁게 불타오르던 과거를 뒤덮어 버린 지금, 
오빠를 다시 한번 만나고 싶어해도 되겠지요. 
어느 날이고 볼일이 있거나 혹은 마음이 내키셔서 
님므에 오시게 되거든 에그비이브에 들러 주세요.
에뜨와르도 오빠를 만나게 되면 퍽 기뻐할 거고 
우리 둘이 알리싸 이야기도 할 수 있겠죠. 
그럼 안녕히 계세요, 
오빠. 서글픈 마음으로 키스를 보내 드립니다.
며칠 뒤 나는 알리싸가 퐁궤즈마르를 로베르에게 남겨 주었으나 
자기 방에 있던 모든 물건과 몇 개의 가구만은 
줄리에뜨에게 보내도록 부탁했다는 것을 알았다. 
알리싸가 내 이름을 적어 내가 마지막으로 그녀를 방문했을 때 
내가 받기를 거절했던 그 조그만 자색 수정 십자가를 
알리싸가 자기 목에 달아달라고 부탁했다는 것을 알았다. 
또 그렇게 했다는 것도 나는 에뜨와르를 통해 알았다.
공증인이 내게 발송해 온 봉함 봉투에는 알리싸의 일기가 들어 있었다. 
그 중 여러 부분을 나는 이곳에 옮겨 보겠다. 
아무런 설명도 가하지 않은 채 그대로 옮길 생각이다. 
이 일기를 읽으면서 내가 여러 가지로 반성해 본 점, 
그리고 붓으로는 도저히 표현할 수 없는 나의 심적인 혼란을 
여러분은 충분히 짐작해 주시리라 믿는다.@ff