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좁은 문 - 앙드레 지드.6

Joyfule 2010. 2. 17. 09:16
  좁은 문 - 앙드레 지드.6   

이 준엄한 교훈은 의무를 받아들일 준비가 되어 있을 뿐아니라 
천성적으로 그 터전이 마련되어 있는 하나의 영혼을 발견하였으며, 
또한 부모님이 보여 주신 모범은 내 마음에서 싹트기 시작한 
충동을 억눌러 주던 청교도적 규율과 결합되어 
이 영혼을 '덕'이라 하는 것에로 이끌어가 버렸다. 
자신을 억제하는 것은 남들이 방종하는 것만큼 내게는 자연스러웠고 
네가 굴종했던 이 엄한 규율도 혐오감을 주기는커녕 
오히려 내 마음을 기쁘게 했다. 
나는 행복 그 자체보다도 행복에 이르기에까지의 
무한한 노력을 미래에서 찾았으며 이미 행복과 덕을 혼돈하고 있었다.
물론 열 네 살된 소년으로서 막연히 기다리는 상태였다. 
그러나 알리싸에 대한 나의 사랑이 단연 그러한 방향으로 이끌어가게 하였다. 
그것은 급작스러운 마음의 계시였는데 그로 인해 나는 나 자신을 의식하게 되었다.
즉 나는 내성적이며 활발치 못하고 늘 기다리고 있는 상태로서 
남의 일에는 별로 신경을 쓰지 않고 과감성도 없이 
자신과 싸워 이겨낸다는 외에 다른 승리를 
꿈꾸어 보지 못하는 그러한 인간으로 보였다 
나는 공부하기를 좋아했으며 장난도 깊이 생각을 하거나 
혹은 힘드는 것이 아니면 열중할 수 없었다. 
내 나이 또래 아이들과는 별로 사귀지 않았고 
같이 어울린다해도 그것은 단지 우정이나 호의로서일 뿐이었다.
그러나 그 이듬해 빠리에 와 내 동급생이 된 아벨 보띠에와는 잘 어울렸다. 
그는 상냥한, 만사 태평의 소년으로서 
나는 그에 대해 존경이라기보다는 오히려 애정을 느꼈다. 
적어도 그와 어울리고 있으면 내 마음이 늘 날아가고 있던 
르아브르와 퐁궤즈마르에 관한 이야기를 할 수가 있었던 것이다.
그가 내 사촌 누이의 동생이 아니었던들--
게다가 그는 누이들과 별로 닮은 점도 없었다--
나는 그를 만날 생각이 별로 나지 않았을 것이다.
당시 나는 사랑에 열중해 있었기 때문에 
로베르나 아벨에 대한 우정도 어떤 의미를 가질 수가 있었던 것이다. 
알리싸는 복음서에 나오는 값진 진주와 같았고 
나는 그 진주를 얻기 위해 내가 가진 모든 것을 팔아 버린 사람이었다. 
비록 내가 아직 어린애이긴 했지만 지금 그것을 사랑이라 이야기하고 
사촌 누이에 대해 느낀 감정을 그렇게 부르는 것은 잘못된 일일까? 
그 후 내가 경험한 중에 이보다 더 사랑이라는 이름에 적합하다고 여겨진 것은 없다. 
그뿐만 아니라 내가 육체적인 가장 뚜렷한 고민으로 
괴로워할 나이가 됐을 때도 내 기질은 별로 변하지 않았다. 
즉 어렸을 때 내가 그녀에게 적합한 인간이 되려고 했던 
그녀를 보다 직접적인 방법으로 내것을 만들 생각은 없었다.
공부, 노력, 경건한 행위 등 모든 것을 나는 신비롭게 알리싸에게 바쳤으며 
그녀만을 위해 한 일을 그녀에게 알리지 않는 것이 보다 깨끗한 덕행이라고 생각했다. 
이처럼 나는 독한 술 같은 겸양에 도취해 있었다. 
내 자신의 즐거움이란 별로 염두에 두지도 않고...
아! 나는 어떤 노력이 필요치 않은 일에는 만족 할 수 없게 되었던 것이다.
나만이 이러한 덕행에 대한 경쟁심에 사로잡혀 있었던가? 
알리싸는 그러한 내 마음을 눈치 채고 있는 것 같지도 않았고, 
단지 그녀를 위해서만 노력을 기울였던 나 때문에, 
나를 위해, 특별히 어떤 일을 하고 있는 것 같지도 않았다. 
꾸밈없는 그녀의 영혼 속에서는 모든 것이 아주 단순한 아름다움이었던 것이다. 
그녀의 덕은 너무나도 자유롭고 우아했기 때문에 방임 상태에 있는 것 같았다.
그 앳된 미소로 인해 그녀의 눈길에 깃든 엄숙한 빛도 오히려 매력적이었다. 
그녀가 너무나도 부드럽고 다정한, 
무엇인가를 묻고 있는 듯한 시선을 위로 치켜올리는 모습을 나는 지금도 다시 그려본다. 
그러고 보면 삼촌이 마음이 괴로울 때면 
이 맏딸에게서 조력과 의견을 구하시던 까닭도 이해할 수가 있었다.
그 이듬해 여름 나는 자주 삼촌이 그녀와 이야기하는 것을 볼 수 있었다. 
슬픔으로 인해 삼촌은 훨씬 더 늙으셨다. 
식사 때도 삼촌은 통 말이 없다가 때때로 갑자기 
쾌활한 표정을 애써 지어내곤 하셨는데, 그것은 침묵보다도 더 쓸쓸하게 느껴졌다. 
알리싸가 찾으러 갈 때까지 삼촌은 서재에서 담배만 피웠고 
알리싸가 빌다시피 해야 겨우 방에서 나왔다. 
알리싸는 삼촌을 마치 어린애처럼 정원으로 인도했다. 
둘이는 꽃이 만발한 오솔길을 내려가 채소밭 층계 근처, 
몇 개의 의자가 놓인 둥그런 갈림길에 가서 앉는 것이었다.
어느 날 석양 무렵, 나는 크고도 붉은 한 그루의 너도밤나무 그늘 밑 
잔디밭에 누워 늦도록 책을 읽고 있었다.
꽃이 만발한 그 오솔길과 나 시이에는 월계수 울타리가 있을 뿐이어서 
보이지는 않아도 소리는 그대로 들리는 곳인데, 
알리싸와 외삼촌의 말소리가 들려 왔다. 
아마도 막 로베르 이야기를 하고 난 듯 싶었다. 
알리싸가 내 이름을 말하는 소리가 들려, 
내가 그들의 이야기에 귀를 기울이자 삼촌은 큰 소리로 말씀하시는 것이었다.
"음! 그 애, 그 애는 늘 공부하길 좋아할 거야."
나도 모르게 엿듣게 된 나는 자리를 떠나거나 
그렇지 않으면 적어도 내가 있다는 것을 알리기 위해서 무슨 기척이라도 내고 싶었다. 
하지만 어떻게?... 기침을 할 것인가? 
'나 여기 있어요! 이야기 소리가 들려요!'라고 소리를 칠 것인가? 
내가 잠자코 있었던 것은 더 들어 보고 싶은 호기심에서가 아니라 
어색하고 수줍었기 때문이었다. 
더구나 둘이는 그냥 내 앞을 지나갔을 뿐이고 
나 또한 그들의 이야기를 자세히 듣지도 못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