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좁은 문 - 앙드레 지드.7

Joyfule 2010. 2. 18. 10:33
  좁은 문 - 앙드레 지드.7   

그러나 두 사람은 천천히 걷고 있었다. 
아마도 알리싸는 여느 때와 마찬가지로 팔에 바구니를 걸고, 
시든 꽃을 따버리기도 하고 자주 끼는 바다 안개 때문에 
울타리 밑으로 떨어진 아직 푸릇푸릇한 열매들을 줍기도 하고 있었을 것이다. 
그녀와 맑은 목소리가 들려 왔다.
"아버지, 펠리씨 고모부는 훌륭한 분이었어요?"
삼촌의  음성은 낮고 희미해서 나는 삼촌의 대답을 알아들을 수가 없었다. 
알리싸는 재차 물었다.
"아주 훌륭하셨어요?"
여전히 희미한 대답이었다. 
그러자 알리싸가 다시 물었다.
"제로옴은 총명하죠?"
내가 어떻게 귀를 기울이지 않을 수 있었을까?... 
그러나 한 마디도 알아들을 수가 없었다. 
그녀는 다시 말을 이었다.
"훌륭한 사람이 되리라 생각하세요?"
여기서 삼촌의 음성이 높아졌다.
"여기서 넌 어떤 뜻으로 '훌륭한'이라는 말을 쓰고 있는지 먼저 알고 싶다. 
겉보기에는 그렇지도 않고, 
적어도 사람들의 눈에는 그렇게 보이지 않으면서도 사실은 아주 훌륭한 사람,
 하느님의 눈으로 보면 아주 훌륭한 사람이 있는 법이다."
"나도 그런 뜻으로 말한 거에요."라고 알리사가 말했다.
"게다가 또... 어디 벌써부터야 알 수 있겠니? 
그 애는 아직 너무 어리니까... 그래 분명히 유망한 애야. 
하지만 그것만으로 성공할 수 있는 것은 아니야..."
"또 무엇이 필요하죠?"
"글쎄, 무엇이라 할까? 신뢰라든가, 조력이라든가, 사랑이라든가...."
"조력이라뇨?"하고 알리싸가 물었다.
"내가 받아 보지 못한 애정이라든가 존경 같은 것 말이다."
삼촌은 쓸쓸하게 대답했다. 
그러고 나서는 두 사람의 말이 전혀 들리지 않았다.
저녁 기도 시간에 나는 본의 아닌 실수를 뉘우치고 
사촌 누이에게 고백하리라 작정했다. 
이때는 좀 더 캐보려는 호기심도 섞여 있었을 것이다. 
그 이튿날 내가 말을 꺼내자마자 그녀는,
"그렇지만 제로옴, 그렇게 엿듣는 건 아주 나쁜 짓이야. 
기척을 내든가 자리를 떠나든가 했어야 할 게 아냐?"하고 말했다.
"정말 난 엿들은 게 아냐. 그저 들려왔을 뿐이야, 
그리고 그쪽도 그냥 지나가 버렸잖아."
"우리는 천천히 걷고 있었는걸."
"그래, 그렇지만 내게는 들릴락말락할 정도였어. 
그리고는 곧 들리지 않게 되었어... 
그런데 성공하려면 무엇이 필요한가 물었을 때 삼촌이 뭐라 대답하셨지?"
"제로옴."
그녀는 웃으며 말했다.
"다 듣고 나서 뭘 그래. 내게 한 번 되풀이시키고 싶은 모양이지?"
"아냐, 정말 첫머리밖엔 듣지 못했어. 
신뢰와 사랑에 대해서 말씀하셨을 때 말이야."
"그리고 나서 또 여러 가지 많은 것이 필요하다고 하셨어."
"그래 뭐라고 대답했어?"
그녀는 갑자기 정색을 하고는,
"인생에 있어서의 도움을 말씀하시길래 
네게는 어머니가 계시다고 대답했어."하고 말했다.
"아아 알리싸, 
어머니가 언제까지나 나와 함께 계실 수 없으리라는 것을 잘 알고 있지 않아... 
그리고 그것은 다른 일 아냐...."
그녀는 고개를 숙이면서 말했다.
"아버지도 그렇게 대답하셨어."
나는 떨면서 그녀의 손을 잡았다.
"내가 장차 어떤 사림이 되든 간에 그것은 모두가 너를 위해서야."
"그렇지만 제로옴, 나도 또한 떠날지 모르잖아?"
나의 영혼은 내 말 속에 들어가 있었다.
"나는 절대 너를 떠나지 않을 테야."
그녀는 어깨를 약간 으슥하더니 이렇게 말했다.
"혼자서 걸어다닐 만큼 강하지 못해? 
하느님께는 혼자 걸어서 도달해야 돼."
"그렇지만 내게 길을 가르쳐 줄 사람은 너야."
"왜 그리스도 외의 다른 인도자를 찾을까... 
우리가 서로 가장 가까이 있을 수 있는 것은 
우리 둘이 저마다 서로를 잊고 하느님께 기도드리는 때라고 생각하지 않아?"
"그래."
나는 말을 가로챘다.
"우리를 결합시켜 주십사고 나는 밤낮으로 기도하고 있어."
"넌 하느님 품안에서 결합한다는 게 무슨 뜻인지 모르겠어?"
"잘 알고 있어. 
그것은 둘이서 꼭같이 찬양하는 동일한 것 속에서 서로를 열심히 찾는 거야. 
네가 찬양하는 것을 나도 역시 찬양하는 것은 
너를 다시 찾아보려는 생각에서인 것 같아."
"너의 찬양은 순수하지가 않구나."
"너무 나를 궁지에 몰아넣지 마. 
천국이라도 거기서 내가 널 찾지 못할 것이라면 난 멸시해  버릴 거야."
그녀는 손가락을 하나 입술에 갖다대더니 약간 엄숙한 말투로 말하는 것이었다.
"너희는 먼저 하느님의 나라와 그 의를 구하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