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패밀리 어페어 - 무라카미 하루키.2

Joyfule 2011. 1. 6. 09:00

 

패밀리 어페어 - 무라카미 하루키.2


 그건 공정하지가 못해, 하고 나는 생각했다.
나와 동생은 이제까지 23년이나 사귀어 왔단 말이다.
우리는 온갖 것을 정직하게 서로 이야기 할 수 있는 사이 좋은 남매였으며,
싸움도 거의 해 본 적이 없었다.
동생은 나의 마스터베이션 같은 걸 알고 있으며,
나는 동생의 초경 같은 걸 알고 있다.
동생은 내가 처음으로 콘돔을 샀을 때-나는 그때 열 일곱 살이었다-의 일을 알고 있고,
나는 동생이 처음으로 레이스 속옷을 샀을 때
-동생은 그때 열 아홉 살이었다-의 일을 알고 있다.

나는 동생의 친구와 데이트 한 일-물론 자지는 않았다-도 있으며,
동생은 내 친구와 데이트한 일-물론 자지 않았었다고 믿는다-도 있다.
아무튼 우리는 그렇게 자라왔단 말이다.
그런 우호적인 관계가 단 1년 사이에 후딱 변하다니.
그렇게 생각하자 나는 차츰 분한 생각이 치밀었다.

역전의 백화점에서 구두를 구경하겠다는 여동생을 남겨 놓고,
나는 혼자서 아파트로 돌아왔다.
그리고 여자 친구에게 전화를 걸어 보았다.
그녀는 집에 없었다. 이건 어쩌면 당연한 이야기다.
일요일 오후 2시에 갑작스레 전화를 걸어 여자아이를 꼬여 봤자 제대로 될 리가 없다.
나는 수화기를 놓고, 수첩의 페이지를 넘겨 딴 여자아이 집에 전화를 돌려 보았다.
어느 디스코장에서 알게 된 여대생이다.
그녀는 집에 있었다.

"뭐 마시러 가지 않을래?"하고 하는 유혹했다.
"아직 오후 2신걸요"하고 그녀는 귀찮다는 듯이 말했다.
"시간이 무슨 문제야. 마시다 보면 저물걸. 실은 석양 보는 게 제격인 좋은 바가 있어.
오후 3시까지 가지 않으면 좋은 자리를 못 잡아."
"싱거운 사람 같으니라구"하고 그녀는 말했다.
그래도 그녀는 나와 주었다. 필경 친절한 성격일게다.
나는 차를 운전해 해안을 끼고 달려 약속대로 요코하마 해변에 있는 바에 들어갔다.
나는 거기서 IW하퍼의 온 더 록을 네 잔 마시고,
그녀는 바나나 데이키리-'바나나 데이키리'다!-를 두 잔 마셨다.
그리고 석양을 바라보았다.

"그렇게 술 마시고 차 운전할 수 있어요?"하고 그 아이가 걱정스레 물었다.
"염려 마. 난 알코올에 관해선 언더파(표준이상)란 말야."
"언더파?"
"네 잔 정도는 보통이야. 그러니까 무슨 걱정이야. 문제 없다구."
"아휴."
그러고 나서 우리는 요코하마로 돌아와 식사를 하고, 차 안에서 키스를 했다.
나는 그녀에게 호텔로 가자고 유혹했지만, 그녀는 안된다고 했다.
"글쎄, 탐폰이 들어 있다구요."
"빼면 되잖아."
"농담 마세요. 아직 이틀째인걸."

어이쿠, 하고 나는 생각했다.
정말 이게 뭐냐. 이럴 바엔 애당초 여자 친구하고 데이트를 했더라면 좋았을걸,
오랜만에 여동생과 여유있게 하루를 지내려고 하는 이번 일요일에 아무 약속도 하지 않았다.
그런데 이 꼴이란 말이다.

"미안해요, 하지만 거짓말이 아니에요." 하고 그 여자아이가 말했다.
"괜찮아. 신경 쓰지 않아도 돼. 네 탓은 아니야, 내 탓이지."
"내 '생리'가 당신 탓이에요?"
하고 무슨 말인지 잘 모르겠다는 얼굴로 그 여자아이가 말했다.
"아니야, 무슨 운명이냔 말이야."하고 나는 말했다.
당연한 말이 아닌가.
어째서 내 탓으로 해서 잘 알지도 못하는 여자아이가 '생리'를 하게 되냔 말이다.

나는 그녀를 세타가야의 집까지 차로 바래다주었다.
도중에 클러치가 달깍달깍, 작기는 했지만 귀에 거슬리는 소리를 냈다.
이러다가는 수리 공장으로 가야겠군, 하고 나는 한숨을 쉬었다.
하나가 제대로 안되면, 연쇄적으로 무엇이나 다
나쁜 방향으로 흘러가는 전형적인 하루였다.

"가까운 시일 안에 다시 만나자고 해도 되겠어?"하고 나는 물었다.
"데이트하러? 아니면 호텔로"
"양쪽 다"하고 나는 명랑하게 말했다.
"그렇게 말하는 건, 그렇지, 표리일체 그거야. 칫솔과 치약처럼..."
"그렇군요, 생각해 보겠어요."
"그래, 생각한다는 거 머리가 늙지 않아서 좋지."
"당신 집은 어때요? 놀러 가도 돼요?"
"안 되겠는걸. 여동생하고 살고 있거든. 규칙이 있단 말야.
난 여자를 끌어들이지 않고 여동생은 남자를 끌어들이지 않는다는."

"진짜 여동생?"
"진짜구말구, 다음 번에 주민등록 등본을 갖다 줄까?"하고 나는 말했다.
그녀는 웃었다.
그 여자아이가 자기 집 대문 안으로 사라지는 것을 보고 나서
나는 차에 엔진은 넣어, 크러치 소리에 귀를 기울이며 아파트로 돌아왔다.

 

 

아파트 안은 캄캄하기만 했다.
나는 열쇠로 문을 열고 전등을 켠 후 여동생의 이름을 불렀다.
그러나 동생은 어디에도 없었다.

아니, 밤 10시에 어디에 갔단 말이지? 하고 나는 생각했다.
그리고 얼마 동안 석간 신문을 찾았는데, 신문은 없었다.
일요일이었기 때문이다.
나는 냉장고에서 맥주를 꺼내 잔과 같이 거실로 가져와
오디오 스위치를 넣고, 턴테이블에 허비 핸콕의 새 레코드를 얹었다.
그리곤 맥주를 마시면서 스피커에서 소리가 나오기를 기다렸다.
그러나 아무리 기다려도 소리가 나오지 않았다.
그제서야 나는 오디오가 사흘 전부터 고장 나 있다는 걸 깨달았다.
전원은 들어오는데, 소리가 나오지 않았다.
그와 동시에 텔레비전도 볼 수가 없었다.
내가 갖고 있는 건 모니터용 텔레비전 수신기로,
오디오를 통하지 않고는 소리가 나오지 않는 장치가 돼 있었던 것이다.

별수 없이 나는 소리없는 텔레비전 화면을 노려보면서, 맥주나 마시기로 했다.
텔레비전에서는 오래 된 전쟁 영화를 하고 있었다.
론멜의 전차대가 나오는 아프리카 전쟁물이었다.
전차포가 소리없는 포탄을 쏘고,
자동소총이 침묵의 탄환을 흩뿌리고, 사람들은 말없이 죽어 갔다.
"으휴"하고 나는 그날 열 여섯 번째-아마도 그만큼 됐을 것이다-의 한숨을 쉬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