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감성을 위한 ━━/세계문학

패밀리 어페어4 - 무라카미 하루키.

Joyfule 2011. 1. 10. 01:09

패밀리 어페어4 - 무라카미 하루키.


얼굴 생김새는 그런 대로 나쁘진 않았지만, 머리가 텅 빈 억지스런 남자였다.
더구나 코끼리 처럼 기억력이 좋아서, 별 하찮은 일도 두고두고 기억하고 있었다.
머리가 텅 빈 부분을 기억력으로 보충하고 있는 것 같았다.

"몇 번이나 했니?"하고 나는 물었다.
"엉터리 소리 그만해. 자기 척도로 세상을 재는 짓은 그만두라구요.
세상 사람이 누구나 다 오빠 같은 인간은 아니니까요."하고
얼굴이 빨개지면서 여동생이 말했다.

두 장째 사진은 일본에 돌아와서 찍은 것이었다.
이번에는 컴퓨터 엔지니어 혼자 찍혀 있었다.
그는 사이가 붙은 옷을 입고 대형 오토바이에 기대 서 있었다.
시트 위에는 헬멧이 놓여 있었다.
그리고 샌프란시스코에서와 완전히 똑같은 얼굴을 하고 있었다.
그 밖의 다른 표정이 없는 모양이다.

"오토바이를 좋아해요."하고 여동생이 말했다.
"보면 알아. 오토바이를 싫어하는 인간이
뭐가 좋다고 아래위가 붙은 가죽옷을 입겠니?"하고 나는 말했다.

나는-이것도 물론 편협한 성격이 부리는 심술이겠지만-
아무리 해도 오토바이를 광적으로 좋아하는 인간을 좋게 볼 수가 없었다.
모양새가 요란하고 자기 선전만 너무 늘어놓았다.
하지만 거기에 대해서는 아무 말도 하지 않기로 했다.
나는 잠자코 사진을 여동생에게 돌려주었다.

"그런데" 하고 나는 말했다.
"그런데 뭐예요?"하고 여동생이 물었다.
"그런데 어떻게 될 것이냐, 그 말이지."
"모르겠어요, 어쩌면 결혼하게 될지도 몰라요."
"결혼 신청을 받았다, 그 말이니?"
"글쎄 뭐, 아직 대답한 건 아니지만."
"흐음.."
"솔직히 말해서 난 취직한 지 얼마 되지도 않았고,
좀더 혼자서 편안하게 즐기고 싶거든요.
오빠만큼 분방하게는 아니더라도."
"하기야 건전한 사고 방식이긴 하지."하고 나는 인정했다.
"하지만 그는 좋은 사람이고, 결혼해도 좋겠다는 생각이 들기도 해요,
생각중이에요."하고 동생이 말했다.

나는 식탁 위의 사진을 집어들어 다시 한 번 그를 바라보았다.
그리고 맙소사, 하고 생각했다.
그것이 크리스마스 전의 일이다.

해가 바뀌고 나서 얼마후, 어머니가 아침 9시에 전화를 걸어 왔다.
나는 블루스 스프링스턴의 <본 인 더 USA>를 들으면서 칫솔질을 하고 있던 참이었다.
어머니는 나에게 여동생이 교제하고 있는 남자에 대해 알고 있느냐고 물었다.
나는 모른다고 했다.
어머니의 말에 따르면, 여동생이 2주일 후 주말에
그 남자와 함께 집에 가고 싶다는 편지를 보내 왔다고 했다.

"결혼한 거 아닐까요?"하고 나는 말했다.
"그러니까 어떤 사람이냐고 묻고 있잖니.
얼굴을 대하기 전에 이것저것 알아두고 싶어서."하고 어머니는 말했다.

"글쎄 만난 적은 없어요. 한 살 위에다 컴퓨터 엔지니어래요.
IBM이래나 뭐래나 그런 곳에 근무하고 있구요.
알파벳이 3개에요. NEC라든가 NTT라든가.
사진으로 보기엔 별로 유별난 데는 없는 얼굴이었어요.
제 취향은 아니지만, 뭐 제가 결혼하는 것도 아니니까요."
"어느 대학을 나왔으며, 집안은 어떤지 모르니?"
"알 길이 없잖아요. 그런 건."하고 나는 쏘아붙였다.
"한 번 만나서 이모저모 좀 물어 보아 주지 않겠니?"하고 어머니가 부탁했다.
"싫어요, 전 바쁘단 말이에요. 2주일 뒤에 직접 물어 보면 되잖아요."

하지만 결국 나는 그 컴퓨터 엔지니어와 만나게 되었다.
다음 일요일에 여동생이 그의 집으로 정식 인사차 가는데 함께 와달라는 것이었다.
그래서 하는 수 없이, 나는 하얀 셔츠에 넥타이를 메고
가장 수수한 양복을 입고, 메구로에 있는 그의 집으로 갔다.

오래된 주택가 한복판에 있는 상당히 훌륭한 집이었다.
차고 앞에는 언젠가 사진에서 본 '혼다 500cc'가 세워져 있었다.
"제법 멋진 청다랑어군."하고 나는 말했다.
"있잖아, 부탁이니 오빠, 그 쓰잘 데 없는 농담은 안하기에요.
오늘 하루면 되니까."하고 여동생이 말했다.
"알았어."하고 나는 말했다.

그의 부모님은 제법 점잖고
-약간 점잔이 지나쳐서 못마땅한 점은 있었지만-훌륭한 사람들이었다.
그의 아버지는 석유 회사의 중역이었다.
우리 아버지는 시즈오카에서 주유소 체인점을 가지고 있으니까,
그런 점에서 보면 동떨어진 혼인이라고는 할 수 없었다.
그의 어머니가 고상한 쟁반에다 홍차 잔을 받쳐서 들여 왔다.
나는 점잖게 인사를 하고 명함을 건네주었다.
그쪽에서도 나에게 명함을 주었다.

"원래는 저희 부모님이 찾아뵐 예정이었지만,
오늘은 피치 못할 사정으로 제가 대신 오게 되었습니다.
부모님께서 다시 날을 잡아 정식으로 찾아뵈었으면 하십니다."하고 나는 말했다.

여러모로 아들한테서는 이야기는 듣고 있었지만
지금 만나 보니 아들한테는 과분할 정도로 얌전한 아가씨며,
집안도 좋다고 들었고, 해서 자기네 쪽에서는
이 혼사에 아무런 이의가 없다고 그의 아버지가 말했다.

필시 이것저것 알아봤겠지, 하고 나는 생각했다.
하지만 열 여섯 살까지 초경이 없어서
만성적 변비로 고민했던 사실까지야 알지 못하겠지.
일단 형식적인 이야기가 큰 문제없이 끝나자
그의 아버지는 나에게 브랜디를 따라주었다.
상당히 맛이 좋은 브랜디였다.
우리는 그걸 마시면서 각자의 일에 대해서 이야기했다.
여동생의 슬리퍼 끝으로 나의 말을 차서, 너무 지나치게 마시지 말라고 주의를 주었다.

그 동안 아들인 컴퓨터 엔지니어는,
아무 말도 하지 않고 긴장된 얼굴로 아버지 곁에 앉아 있었다.
그가 적어도, 이 집 지붕밑에서는
아버지 권력의 지배하에 있다는 것을 한눈에 알 수 있었다.

옳거니, 하고 나는 생각했다.
그는 그때까지 내가 본 적도 없는 기묘한 무늬의 스웨터를 입고,
그 속에다 색깔도 맞지 않는 셔츠를 입고 있었다.
도대체 뭐가 급해서 좀더 진지하고 똑똑한 남자를 고르지 못했단 말인가?
이야기가 일단락되고 4시가 되어서 우리는 자리에서 일어섰다.
컴퓨터 엔지니어가 우리 두 사람을 역까지 바래다주었다.

"어디 가서 함께 차라도 한 잔하지 않으시겠습니까?"하고
그가 나와 여동생에게 말했다.
나는 차 같은 것도 마시고 싶지 않았고,
그런 요상한 무늬의 스웨터를 입은 남자와 동석한다는 것도 내키지 않았지만,
거절하면 어색해질 것 같아서 셋이서 가까운 다방에 들르기로 했다.
그와 여동생은 커피를 주문하고, 나는 맥주를 주문했는데, 맥주는 없었다.
그래서 하는 수 없이 커피를 마셨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