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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루키] 렉싱턴의 유령 1

Joyfule 2010. 5. 6. 12:34

  [하루키] 렉싱턴의 유령 1 


이 이야기는 실제로 있었던 일이다.
사정이 있어 등장 인물의 이름은 바꾸었지만 그 외에는 모두 사실이다.
매사추세츠 주의 케임브리지에 2년 정도 산 일이 있다.
그때 한 건축가와 알 게 되었다. 그는 쉰 살을 막 넘긴 핸섬한 남자였다.
머리칼은 반백이고 키는 그다지 크지 않았다.
수영을 좋아하여 매일 수영장에 다니는 덕분에 탄력 있는 몸을 지니고 있었다.
가끔은 테니스도 쳤다. 이름은 케이시라고 해두자.
독신인 그는 보스턴의 교외,렉싱턴이란 곳에 오래된 저택을 갖고 있었다.
거기서 그는 말이 없고 안색이 별로 좋지 않은 피아노 조율사와 함께 살고 있었다.
그 조율사의 이름은 제레미- 대충 30대 중반에 버드나무처럼 홀쭉하고
큰 키에 머리가 슬슬 벗겨지고 있었다.
그는 조율은 물론이고 피아노도 무척 잘 쳤다.  
내 단편이 몇 편 영어로 번역되어 미국 잡지에 게재되었다.
케이시는 그것을 읽고 편집부를 통하여 내게 편지를 써 보냈다.
당신 작품과 당신에게 상당한 흥미를 느꼈다.
당신만 괜찮다면 만나 이야기를 나누고 싶은데, 라고 쓰여 있었다.
나는 평소 그런 식으로 사람을 만나지는 않는데(경험적으로 즐거웠던 기억이 별로 없다)
이 케이시만은 만나보아도 좋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의 편지가 아주 지성적이고 유머 감각에 넘쳐 있었다는 이유도 있지만
외국에 나와 있는 편안함에 부담이 덜했기 때문이기도 하다.
또 사는 곳도 아주 가까웠다.
하지만 그런 사정은 어디까지나 주변적인 이유에 지나지 않는다.
내가 케이시 라는 인물에 개인적인 관심을 품게된 가장 큰 원인은
그가 오래된 재즈 레코드를 상당량 소유하고 있다는 점이었다.

...아마 온 미국을 다 뒤져도 개인이 이만큼 충실하게
재즈 레코드를 수집해 놓은 경우는 별로 없을 것입니다.
당신은 재즈를 좋아한다고 하니 어쩌면 흥미를 느낄지도 모르겠군요.

그의 편지에는 그렇게 쓰여 있었다. 옳은 말씀. 나는 물론 흥미를 느꼈다.
그 편지를 읽고서 그의 컬렉션을 보고 싶어 견딜 수가 없었다.
오래된 재즈 레코드 이야기만 나오면 마치
말이 어떤 특별한 나무 냄새에 이끌리듯 정신적인 저항력을 잃고 만다.
케이시의 집은 렉싱턴에 있었다.
내가 살고 있는 케임브리지의 집에서 자동 차로 30분이면 갈 수 있는 곳이다.
내가 전화를 걸자 그는 자세하게 지도를 그려 팩스로 보내주었다.
나는 4월의 어느 오후에 녹색 폭스바겐을 타고 혼자 그 집을 찾아갔다.
집은 금방 알 수 있었다. 3층짜리 웅장한 옛 저택이었다.
지 은 지 적어도 백 년은 넘을 성싶었다.
보스턴 교외의 고급 주택지에서도 가장 유서 깊은 지역에 있는 그 저택은
금새 눈에 띌만큼 훌륭했다. 그림 엽서에 담아도 좋을 정도였다.
정원은 마치 넓은 숲 같았다.
네 마리 파란 언치새가 화려하고 날카로운 소리로 울면서
이 가지 저 가지로 날아 다니는 모습이 보였다.

드라이브 웨이에는 신형 BMW 왜건이 주차되어 있었다.
내가 BMW 뒤에다 차를 세우자, 현관 매트 위에 드러누워 있던
대형 마스티프 견이 천천히 일어나 거의 의무적으로 두 세번 짖었다.
'짖고 싶어서 짖는것은 아니지만, 일단은 그렇게 하도록 정해져 있어서'란 식으로.
케이시가 현관으로 나와 나에게 악수를 청했다.
무언가를 확인하듯 굳은 악수였다.
악수를 하면서 다른 한 손으로 어깨를 가볍게 톡톡 두드렸다.
그것은 케이시의 버릇이었다.
"아아,잘 오셨습니다. 당신을 만나게 되어 참 기쁩니다."
그는 그렇게 말했다.
케이시가 입고 있는 이태리풍의 세련된 셔츠는 제일 윗단추까지 단정하게 채워져 있었다.
그 위로는 엷은 갈색 캐시미어 카디건을 걸쳤고 바지는 부드러운 감의 면이었다.
그리고 조르주 알마니풍의 조그만 안경을 끼고 있었다. 상당히 스마트했다.
케이시는 나를 안으로 안내하여 거실 소파를 권하고는 막 끓인 맛있는 커피를 대접해주었다.

케이시는 부담없는 성격의 인간이었다. 품위도 있고 교양도 있었다.
젊은 시절에는 온 세계를 돌아다니며 여행을 하였다고 한다.
그 덕분인지 말솜씨도 상당했다.
나는 그와 친해져서 한 달에 한 번은 그의 집에 놀러가게 되었다.
그리고 그 훌륭한 레코드 컬렉션의 은총을 마음껏 누렸다.
거기에 있으면 다른 곳에서는 절대로 들을 수 없는 귀중한 음악을
내 마음대로, 듣고 싶은 만큼 들 을 수 있었다.
레코드 컬렉션에 비하면 오디오 장치는 그리 좋은 것은 못되었지만,
구식 대형 진공관 앰프가 따스하고 정겨운 음을 재현해주었다.

케이시의 일터는 자택의 서재였다.
그곳에서 케이시는 컴퓨터를 사용하여 건축 설계 일을 하였다.
하지만 그는 나에게 자신의 일에 관한 이야기는 거의 하지 않았다.
그는 웃으면서 '뭐 대단한 일을 하는 것은 아니'라고 마치 변명을 하듯 말했다.
나는 그가 어떤 건축물을 설계하는지 모른다.
또 그가 바쁘게 일하는 모습을 본 적도 없다.
내가 알고 있는 케이시는 늘 거실 소파에 앉아 포도주 잔을 우아하게 기울이며
책을 읽거나 제레미의 피아노 연주를 듣거나, 혹은 정원 의자에 앉아 개와 장난을 하였다.
어디까지나 내 느낌이지만, 케이시는 그다지 열심히 일하는것 같지는 않았다.

죽은 그의 아버지는 전국적으로 유명한 정신과 의사였다.
책도 대여섯권 썼는데 지금 그 저작물들은 거의 고전이 되었다.
또 열렬한 재즈 팬이기도 하였다. 프레스티지 레코드의 창시자이며 프로듀서인
보브 와인스톡과도 절친한 사이였다고 한다.
그런 사연에 1940년대에서 60년대에 걸친 재즈 레코드가 케이시가 편지에 썼듯이,
혀를 내두를 만큼 완벽하게 수집되어 있었다.
양적으로도 상당하지만 질적으로도 불평의 여지가 없었다.
레코드 대부분이 초판 오리지널 이었고 상태도 양호했다.
판에는흠집 하나 없고 재킷에도 손상이 없었다. 그것은 거의 기적에 가까운 일이었다.
한 장 한 장을 마치 갓난아기를 욕조에 집어넣듯
조심조심 소중하게 보관하고 관리하였을 것이다.

케이시는 형제가 없었다.
어머니는 그가 어렸을 때 돌아가셨고 아버지는 그 후로 재혼하지 않았다.
그래서 15년전 아버지가 췌장암으로 돌아가시자 온 재산과 함께
레코드도 고스란히 상속받게 되었다.
케이시는 아버지를 그 누구보다 존경하고 사랑하였다.
때문에 레코드를 한 장도 처분하지 않고 소중하게 보존하고 있었다.
케이시도 즐겨 재즈를 들었지만 아버지만큼 열광적인 팬은 아니었다.
오히려 클래식 음악을 더 좋아하여 오자키가 지휘하는
보스턴 심포니의 콘서트가 있을 경우에는 빠지지 않고 제레미와 들으러 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