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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루키 : 일곱 번째 남자 4

Joyfule 2010. 5. 15. 08:57
 
  하루키 : 일곱 번째 남자 4.  
나는 며칠이나 고열에 시달렸던 모양입니다. 
아버지는 나더러, 네가 사흘 동안이나 의식을 잃고 있었다고 말했습니다. 
조금 떨어진 장소에서 시종일관 지켜보던 동네 사람이, 
쓰러져 있는 나를 안고 집으로 데리고 와준 것입니다. 
K는 파도에 쓸려간 채 아직 행방이 묘연하다고 아버지는 말했습니다. 
나는 아버지에게 무슨 말인가 하려고 했습니다. 
무슨 말인가 하지 않으면 안 된다고 생각한 것이죠. 
하지만 혀는 붓고 경직되어 있었습니다. 
말이 나오지 않았습니다. 
마치 다른 생물이 내 입안에 눌러 살고 있는 듯한 느낌이었습니다. 
아버지는 내게 이름을 물었습니다. 
나는 자신의 이름을 떠올리려 하였지만 
미처 기억이 나기도 전에 다시 의식을 잃고 어둠 속으로 가라앉고 말았습니다.
결국 나는 일주일동안 침대에 누워 유동식으로 연명해야 했습니다. 
나는 몇 번이나 토하고 가위에 눌렸습니다. 
아버지는 그 동안 나의 의식이 심한 충격과 고열 때문에 
영원히 손상되는 것은 아닌가 하고 몹시 걱정하였다고 합니다. 
정말 그렇게 되어도 이상하지 않을 만큼 
나는 심각한 상태에 놓여 있었던 것입니다. 
그렇지만 나는 육체적으로 그럭저럭 회복할 수 있었습니다. 
몇 주일 후 나는 학교에도 다녔습니다. 
그러나 물론 모든 것이 원래대로 돌아간 것은 아니었습니다. 
K의 주검은 끝내 떠오르지 않았습니다. 
그와 함께 파도에 삼켜진 강아지의 시체도 찾을 수 없었습니다. 
그 주변 해안에 빠져 죽은 사람은 대개 조류를 타고
동쪽에 있는 조그만 만으로 옮겨져 며칠 후면 해변으로 밀려 올라오는 법인데, 
K의 시체는 끝까지 행방을 찾을 수 없었습니다. 
아마도 그때 태풍의 파도가 너무도 엄청나 저 먼바다까지 옮겨져 
해변으로 돌아올 수 업었던 것인지도 모르겠습니다. 
어느 바다 깊이 가라앉아 물고기 밥이 되었는지도 모를 일이죠. 
K의 시체를 수색하는 작업은 
동네 어부들의 도움을 받아 꽤 오래도록 계속되었지만, 
그 일도 마지막에는 흐지부지하게 끝나버리고 말았습니다. 
제일 중요한 시체를 발견하지 못했으니, 장례식도 치를 수 없었습니다. 
K의 부모님은 거의 반 미친 상태에서 연일 해변을 헤매 다니거나 
아니면 집에 틀어박혀 불경을 외었습니다. 
그렇게 큰 충격을 받았음에도 K의 부모님은 내가 그 태풍의 한 가운데로
K를 데리고 나간 일에 대해서는 한번도 나를 책망하지 않았습니다. 
그때까지 내가 K를 친형제처럼 귀여워하고 
소중히 여겼음을 그들은 잘 알고 있었기 때문이죠. 
나의 부모님들 역시 그 사건에 관해서는 
가능하면 언급을 하지 않으려 애썼습니다. 
하지만 나는 알고 있었어요. 
만약 내가 그럴 마음만 있었다면 얼마든지 K를 구할 수 있었다는 것을.
K한테로 달려가서 그를 끌어 잡아당겨 
파도가 미치지 않는 곳으로 도망칠 수 있었을지도 모르지만,
기억 속의 시간을 더듬어보면 그 정도의 여유는 있었다고 생각합니다. 
하지만 나는 아까도 말씀드렸듯이 압도적인 공포에 사로잡혀, 
K를 버리고 혼자 도망쳤던 것입니다. 
K의 부모님도 나를 비난하지 않고, 또 다른 사람들도 종기를 다루듯 
조심조심 사건에 대해 일체 말하지 않은 탓에 
나는 오히려 더욱 고통스러웠습니다. 
학교에도 가지않고 밥도 제대로 먹지 않고 누워서 
매일 천장만 물끄러미 올려다보았습니다. 
그 파도 머리끝에 옆으로 누워, 
히죽 웃던 K의 얼굴을 나는 도저히 잊을 수가 없었습니다. 
나에게 오라고 손짓하듯 앞으로 내민 손을, 
그 손가락 하나하나를 뇌리에서 지울 수가 없었습니다. 
잠자리에 들면 마치 기다렸다는 듯이 꿈속에 그 얼굴과 손이 나타났습니다. 
꿈속에서 K는, 내손을 잡고 그대로 파도 속으로 끌고 들어가는 것이었습니다. 
그리고 또 이런 꿈도 꾸었습니다. 
꿈 속에서 나는 바다를 헤엄치고 있습니다. 
때는 아주 맑게 갠 여름날 오후, 나는 천천히 바닷물을 가르고 있었습니다. 
태양이 내 등을 반짝반짝 비추고, 바닷물은 나를 기분좋게 감싸고 있었습니다. 
그런데 그때, 물속에서 누군가 나의 오른쪽 다리를 잡습니다. 
발목으로 얼음처럼 차가운손의 감촉을 느낍니다. 
그 힘이 세서 뿌리칠 수가 없습니다. 
나는 그대로 물 속으로 끌려 들어가고 맙니다. 나
는 K의 얼굴을 봅니다. 
K는 그때처럼 얼굴이 찢어져라 입을 히죽 벌리고 
웃으면서 나를 빤히 보고 있습니다. 
나는 비명을 지르려 합니다. 
그러나 목소리가 나오지 않습니다. 
어푸어푸 물을 마실 뿐입니다. 
물이 나의 폐로 차오릅니다. 
나는 큰소리를 지르고 땀을 흘리고 숨을 헐떡이면서 어둠 속에서 눈을 뜹니다. 
그해 막바지에 나는 하루라도 빨리 
이 동네를 뜨고 싶다고 부모님꼐 애원했습니다. 
내 눈앞에 K를 삼켜버린 파도와 해안을 보면서 이대로 살수는 없다고, 
아시는 대로 나는 매일밤 악몽에 시달리고 있다고. 
그러니까 이 동네를 떠나서 어디 다른 곳으로 가고 싶다고. 
가능하면 멀리로 떠나고 싶다. 
그렇게 하지 않으면 나는 미쳐버릴 것 같다. 
내 말을 들을 아버지는 나를 
1월에 나가노 현의 한 초등학교에 다닐 수 있게 해주었습니다. 
코모로 근처에 있는 친가에 살게 된 것입니다. 
나는 그곳에서 중, 고등학교를 마쳤습니다. 
방학 때도 집에 가지 않았고, 부모님이 나를 만나로 가끔 올 뿐이었습니다. 
지금도 나는 나가노에 살고 있습니다. 
나가노 시에 있는 공과 대학을 졸업하고, 
현지의 정밀 기계 회사에 취직하여 지금까지 다니고 있습니다. 
나는 아주 평범한 인간으로 생활하고 있습니다. 
보시다시피 특별히 보통 사람들과 다른 점도 없습니다. 
그리고 그 동네를 떠나고 얼마 후부터는
이전처럼 악몽을 꾸는 일도 없어졌습니다. 
그러나 그것이 내 생활에서 아주 사라져 버린 것은 아니었습니다. 
그것은 때때로 수금원이 현관문을 두드리듯 불쑥 나를 찾아왔습니다. 
잊어버릴 만하면 반드시 찾아옵니다. 
언제나 같은 꿈입니다. 
꿈의 세부까지 같습니다. 
그때마다 나는 비명을 지르며 눈을 뜹니다. 
이불이 땀으로 푹 젖어 있곤 합니다. 
결혼을 하지 않은 이유는 그 때문일지도 모르겠군요. 
나는 한밤중 두세 시에 큰 소리를 지르면서 
옆에서 자고 있는 누군가를 깨우고 싶지는 않습니다 
지금까지 좋아한 여자도 몇 명 있습니다. 
그러나 아무와도 밤을 함께 지낸 적은 없습니다. 
공포가 내 골수까지 파고 들어와 있었고, 
그것을 타인과 공유한다는 것은 불가능한 일이었습니다. 
결국 난 40년 이상 고향으로 돌아가지 않았고,
 해안에도 접근하지 않았습니다. 
그 해안뿐만 아니라, 바다라는 것도 일체 가까이하지 않았습니다. 
혹 바다에 가면 꿈같은 일이 벌어질지도 모른다는 두려움 때문이었습니다. 
또 나는 원래 수영을 좋아했지만, 
난 그 이후로는 수영장에도 절대 가지 않았습니다. 
깊은 강에도 심지어 호수에도 발길을 하지 않았습니다. 
그런데도 나는, 내 자신이 어딘가 에서 익사하여 죽는 이미지를 
뇌리에서 떨쳐 버릴 수가 없었습니다. 
그 어두운 예감은, 꿈속의 싸늘한 K의 손처럼 
내 의식을 사로잡고 놓아주지 않았던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