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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퍼 리 - 앵무새 죽이기 - 10. 앵무새를 죽이는 일은 죄 4

Joyfule 2009. 1. 5. 02:58
      하퍼 리 - 앵무새 죽이기 -  10. 앵무새를 죽이는 일은 죄 4  
    팀 존슨은 달팽이 정도의 속도로 전진하고 있었다. 
    그러면서도 다른 개들처럼 냄새를 맡거나 장난치지도 않은 채 
    마치 한 방향에 목숨을 건 듯 어떤 보이지 않는 힘에 의해 조금씩 움직여 오고 있었다. 
    말이 파리를 떨쳐버리듯 턱을 떨며 여닫기를 반복했고 한쪽으로 몹시 기울어 있었다. 
    그러면서도 팀 존슨은 우리를 향해 이끌려 오고 있었다.
    죽을 장소를 찾고 있나봐. 
    오빠가 말했다.
    테이트 씨가 돌아보았다.
    죽으려면 아직 멀었다, 젬. 아직 시작도 안 한 거니까. 
    팀 존슨이 래들리 집으로 이어지는 사잇길에 이르렀다. 
    그 빈약한 마음에 어떤 찌꺼기가 건드려 멈추게 했는지 
    잠시 머뭇거리며 방향을 잡는 듯 망설이던 발걸음을 옮겨 래들리 집 앞에 섰다. 
    그곳에서 돌아서려 했지만 무척이나 힘들어보였다.
    헥, 사정거리 안에 있소. 옆길로 가기 전에 지금 해치우는 게 좋겠어. 
    어느 쪽으로 올지 모르니 안으로 들어가요, 칼. 
    칼퍼니아 아줌마가 덧문을 열고 들어와 빗장을 걸었다가는 다시 풀어 고리 위에 얹어놓았다. 
    아줌마는 오빠와 나를 몸으로 막아섰고 우리는 아줌마 팔 사이로 밖을 지켜보았다.
    변호사님이 쏘시죠. 
    테이트 씨가 아버지에게 총을 내밀었다.
    오빠와 나는 거의 기절할 지경이었다.
    시간낭비 말아요, 헥. 어서 쏴요. 
    이건 단번에 끝내야 하는 거 아닙니까, 변호사님? 
    아버지가 힘껏 고개를 저었다.
    그냥 서 있지만 말고 어서, 헥. 마냥 기다려주질 않아. 
    제발, 변호사님. 빗나가면 래들리 집을 맞히게 될 것 같아서 그럽니다. 
    전 잘 쏘지 못하는 거 아시지 않습니까? 
    난 삼십 년간을 총을 놓고 있었어. 
    테이트 씨가 라이플 총을 던지다시피 아버지에게 건넸다.
    정말 마음이 놓입니다. 
    오빠와 나는 어쩔 줄을 모르며 아버지가 총을 받아들고 길 앞으로 걸어나가는 걸 바라보았다. 
    아버지의 걸음은 빨랐지만, 마치 물 속에서 수영하는 사람을 연상시켰다. 
    시간은 기어가듯 흘러 속까지 메슥메슥거렸다.
    아버지가 안경을 이마 위로 올리자 칼퍼니아 아줌마가 중얼거리며 얼굴을 감쌌다.
    하느님, 그를 도와주소서. 
    아버지의 안경이 이마 위로 올려졌다간 미끄러져 길바닥 위로 떨어졌다. 
    쨍그랑 깨지는 소리가 정적을 깨뜨렸고, 아버지는 눈과 턱을 문질렀다. 
    우린 눈썹 하나 까딱이지 않고 지켜보았다.
    래들리 집 문 앞에서의 팀 존슨은 마침내 돌아서서 
    원래 오던 방향대로 우리집을 향해 다가왔다. 
    아버지가 두 발자국 앞으로 다가가더니 머리를 들었다. 
    몸이 잠시 굳어지는 듯 총을 어깨 위로 올리고 방아쇠를 홱 잡아당겼다. 
    그 움직임은 마치 동시에 이루어진 듯 순식간에 터져나왔다.
    총성이 울렸다. 
    팀 존슨이 위로 붕 튀더니 털썩 떨어져 갈색과 흰색의 더미로 보도 위에 구겨져 있었다. 
    아버지 자신은 명중시킨 것도 모르는 듯했다.
    테이트 씨가 현관을 훌쩍 뛰어내려 래들리 집으로 뛰어가 개 앞에 웅크리고 앉아 살펴본 후 일어섰다. 
    왼쪽 눈 윗부분을 손가락으로 톡톡 치며 소리쳤다.
    오른쪽으로 약간 치우치셨습니다. 핀치 변호사님. 
    언제나 그래, 내겐 산탄총이 더 낫지. 
    아버지의 대답이었다.
    그제야 아버지는 안경을 집어들고 땅에 깨진 안경렌즈를 밟아 가루로 만들었다. 
    그리곤 테이트 씨가 있는 곳으로 다가가서 팀 존슨을 내려다보았다.
    문이 하나씩 열리며 동네 사람들이 꾸물꾸물 밖으로 나왔다. 
    머디 아줌마도 스테파니 아줌마와 함께 계단을 내려왔다.
    오빠는 완전히 얼어붙은 듯 꼼짝도 못하여 내가 꼬집어주어야만 했다. 
    그때 아버지가 큰소리로 명령했다.
    거기 그냥 있도록 해라. 
    테이트 씨와 아버지가 마당으로 돌아왔고 테이트 씨는 웃음을 지으며 말을 붙였다.
    제보한테 치우라고 해야겠어요. 다 잊어버리진 않으셨습니다. 
    절대로 잊지는 않으실 거라고 생각은 했지만요. 
    아버지는 아무 대답도 하지 않았다.
    아빠? 
    젬 오빠가 불러보았다.
    응? 
    아무 것도 아니에요. 
    역시 명사수 핀치군요! 
    아버지가 소리나는 쪽으로 빙그르 돌아 머디 아줌마와 서로 말없이 쳐다보곤 차에 올랐다.
    이쪽으로 와라, 젬. 아직 가까이 가지 마라. 알았지? 
    살아 있을 때만큼이나 위험하단다. 가까이 가지 마라. 
    네. 아빠 ,,,? 
    왜 그러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