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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퍼 리 - 앵무새 죽이기 - 11. 동백꽃과 두보스 할머니 1

Joyfule 2009. 1. 7. 04:45
     
     하퍼 리 - 앵무새 죽이기 - 11. 동백꽃과 두보스 할머니 1  
    오빠와 내가 더 어렸을 때 우리의 활동범위는 남쪽 동네에 불과했다. 
    하지만 내가 이학년이 되면서부터는부 
    래들리를 귀찮게 하는 것은 시대에 뒤떨어진 일이 되어버렸고 
    점점 메이컴의 상업지역을 자주 드나들게 되었다.  
    그때 우린 두보스 할머니 집 앞을 지나쳐야 했고 
    그렇지 않으면 일 마일 정도를 돌아가는 수밖에 없었다. 
    전에는 그 할머니와 그다지 맞닥뜨릴 일이 없었지만 
    앞으론 더 많아질 거라고 오빠는 말했다.  
    두보스 할머니는 집 안 일을 돌봐주는 흑인 소녀를 두고 혼자 살았다. 
    그집은 우리집 뒤쪽에서 두 집 건너 있었는데 
    가파른 계단과 좁은 통로가 있었다. 
    그 할머니는 너무 늙어서 대부분의 시간을 침대와 휠체어에서 지내고 있었다. 
    소문에 의하면 남부 연방의 권총을 숄 속에 감추고 있다고도 했다. 
    오빠와 나는 그 할머니를 무척 싫어했다. 
    우리가 지나갈 때면 현관에 나와앉아 몹시 화가 난 눈빛으로 흘기며 
    행동 하나하나에 대해 무자비한 신문조의 모욕을 주는 것이었다. 
    그렇게 해서 우리도 늙으면? 이라는 우울한 예측을 하게 만들었지만 
    금방 잊어버리곤 했다.  
    그래서 얼마 전엔 그집 반대편 길로 다니자는 생각을 해냈지만 
    결국 그 할머니의 목소리만을 높여 모든 이웃이 다 듣게 되었을 뿐이었다. 
    무엇으로도 두보스 할머니를 기쁘게 할 수는 없었다. 
    내 딴엔 가장 명랑하게 인사를 해봤다.  
    두보스 할머니, 안녕하세요?  
    하세요라니, 요 못된 것! 안녕하십니까 두보스 할머니! 라고 해야지.    
    역시 할머니의 외마디소리만 되돌아올 뿐이었다. 
     두보스 할머니는 심술이 사나웠다. 
    한 번은 젬 오빠가 아버지를 애티커스라고 부르는 소리를 듣고는 
    거의 기절할 지경에 이르기까지 했다.   
    그집을 지나는 모든 사람들은 할머니의 악담에 의해 
    어떻게 해서든지 가장 뻔뻔스럽고 무례한 얼간이가 되고 말았다. 
    또한 우리 집안에 대해서는 어머니의 죽음 이후 
    아버지가 재혼을 안 하는 것에 대해 안된 일이라는 둥, 
    우리 어머니같이 사랑스런 여인은 없었는데 
    애티커스 핀치가 아이들을 저렇게 난폭하게 키우는 건 
    정말 안타까운 일이라는 둥 서슴지 않고 떠들어대는 것이었다. 
    오빠는 부 래들리 사건에서도 건재했고 
    미친개나 여러 가지 무서운 위험 속을 이겨왔기 때문에 
    라이첼 아줌마네 집 계단에서 기다려야 한다는 건 
    왠지 비겁한 일이라고 결론지었다. 
    그래서 나머지는 하늘에 맡긴 채 
    아버지를 만나러 우체국 코너까지 뛰어야 했다. 
    오빠는 많은 날들을 두보스 할머니의 독설에 성이 나서 어쩔 줄 몰라했고 
    아버지는 그것을 지켜봐야 했다.   
    쉽게 생각해라.   
    아버지의 말씀이었다.    
    그분은 늙고 병들었단다. 
    넌 그저 머리를 들고 신사가 되면 사는 거야. 
    무슨 소리를 하시든지. 그분이 너를 미치게 하도록 놔두지 말아라.    
    오빠는 그 할머니가 그토록 악담을 퍼붓는 것으로 보아 
    아프지도 않을 거라고 투덜댔다. 
    우리 셋이 그 앞을 지날 때면 아버지도 모자를 벗고 상냥하게 인사를 하곤 했다.    
    좋은 저녁입니다. 두보스 여사님. 
    오늘 저녁은 한 폭의 그림입니다.   
    나는 한 번도 아버지가 그림 어쩌구 하는 걸 들어본 적이 없었다. 
    그리곤 법원 소식을 전하고 
    내일은 두보스 할머니에게는 좋은 날이 되길 충심으로 바란다고 하고는 
    바로 그 할머니 보는 앞에서 나를 어깨에 태우고 
    황혼을 안고 집으로 돌아오는 것이었다. 
    이럴 때면 나는 아버지야말로 무력을 싫어하고 
    어떠한 전쟁에도 참여하지 않는 가장 용감한 남자라고 여겼다. 
    그 다음날은 오빠의 열세 번째 생일이어서 
    오빠의 주머니에는 돈이 남아돌 정도였다. 
    그래서 우린 서둘러서 시내로 향했다. 
    오빠는 축소형 엔진을 사고 
    나에게는 빙빙 돌릴 수 있는 지휘봉을 사주기로 했던 것이다. 
    나는 그 지휘봉을 얼마나 갖고 싶어했는지 모른다. 
    그것은 엘모어 회사 제품으로 
    반짝이는 금속조각과 금실로 장식된 십칠 센트짜리였다. 
    내가 앞으로 가장 하고 싶은 강렬한 목표가 있다면 
    그건 메이컴 고등학교의 밴드 앞에서 지휘봉을 돌리는 일이었고 
    그걸 연습하기 위해 막대기를 위로 던져올렸다가 잡아내는 일을 수도 없이 해댔다. 
    하지만 칼퍼니아 아줌마는 내가 막대기를 갖고 있을 때면 
    집 안 출입을 막았기 때문에 나는 제대로 된 지휘봉을 사서 
    집 안에서 마음껏 연습하기로 마음먹었다. 
    그런데 오빠가 지휘봉을 사준다는 것이었다. 
    나는 오빠의 배려에 큰 고마움을 느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