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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퍼 리 - 앵무새 죽이기 - 11. 동백꽃과 두보스 할머니 2

Joyfule 2009. 1. 8. 01:09
     
     하퍼 리 - 앵무새 죽이기 - 11. 동백꽃과 두보스 할머니 2  
    그날도 역시 두보스 할머니가 현관 앞에 버티고 앉아 있었다.   
    이 시간에 어디를 가는 거냐, 응?   할머니가 소리쳤다.   
    학교 빼먹었지? 당장 교장에게 전화해서 일러버릴 테다.  
    할머니는 당장 그렇게 할 것처럼 손을 의자바퀴에 올려놓고는 움직거렸다.    
    저, 오늘은 토요일이에요, 두보스 할머니.   
    오빠가 대답했다.    
    토요일이라도 다를 건 없어. 
    너희 아버진 너희들이 어디 가는지 알고 계시냐?    
    저희는요, 요만했을 때부터 우리끼리 시내에 다녔어요.   
    오빠가 보도에서 대략 이 피트 높이로 손바닥을 올리며 말했다.    
    나에게 거짓말하지 마라, 제레미 핀치. 
    머디 애킨슨이 그러는데 너희들이 머루정자를 망쳐놨다면서? 
    머디가 네 아버지에게 말하면 넌 다신 밝은 빛을 볼 수 없을 거야. 
    다음주 안에 널 소년원에 보내지 않는다면 내 성을 갈 테다.    
    머디 아줌마의 머루정자엔 지난 여름부터 한 번도 가지 않았을 뿐 아니라 
    갔었다고 해도 머디 아줌마는 그럴 분이 아니란 걸 알기에 
    그저 간단히 아니라고만 대답했다.   
    내 말에 반박하지 마라! 그리고 너!   
    그녀는 관절염을 앓는 손가락으로 나를 가리켰다.   
    그 바지가 뭐냐, 응? 
    넌 스커트와 캐미솔을 입어야 한다는 걸 모르느냐? 
    앞으로 누가 다시 가르치지 않으면 넌 테이블 시중이나 들며 커야 될 게야 ,,, . 
    핀치도 오케이 카페에서 웨이터 노릇을 하긴 했었지. 하 하 하!    
    나는 놀랐다. 
    그 오케이 카페는 북쪽 광장 저쪽에 있는데, 
    저속한 분위기를 자아내는 곳이었다. 
    나는 오빠의 손을 꽉 잡았다. 그가 손을 흔들어 느슨히 했다.    
    참아, 스카웃. 신경쓰지 말고 머리를 들어. 신사가 되는 거야.   
    하지만 두보스 할머니는 우리를 놓아주지 않았다.   
    핀치는 다방에서 시중만 드는 게 아니라 
    법원에서 검둥이 변호를 하고 있지!    
    오빠가 빳빳이 굳었다. 
    두보스 할머니의 연발은 급소를 찔렀고, 
    할머니 자신도 그것을 알아챘던 것이다.    
    정말이지 핀치가 출세를 거부한다면 어떻게 될지 ,,, 내가 말해주랴?   
    할머니가 손을 입에서 떼어놓자 침이 길게 늘어져 나왔다.    
    너희들 아버진 검둥이보다 나을 것도 없어. 쓰레기 같은 짓만 하지.    
    오빠 얼굴이 새빨개졌다. 
    나는 오빠의 옷자락을 끌고는 우리 집안의 정신적 타락에 대한 
    심한 공격을 받으며 보도를 따라 올라갔다. 
    어찌됐건 핀치 집안 사람의 반 정도가 수용소에 있었다는 것이 대전제였다. 
    그렇다 해도 어머니가 우리와 함께 있다면 이런 상태까지 오진 않았을 것이다.   
    나는 오빠의 불쾌함이 얼마나 지독한지 확인할 수도 없었다. 
    우리 가족의 정신건강에 대한 부당한 평가가 나를 몹시 화나게 했다. 
    사실 아버지에 대한 모욕에는 만성이 되어버렸지만 
    어른들로부터 듣기는 처음이었던 것이다. 
    아버지에 관한 것만 빼면 두보스 할머니의 공격은 언제나 판에 박힌 소리였다.   
    날씨는 벌써 여름이 다가옴을 알리고 있었다. 
    그늘은 아직 서늘했지만 햇볕은 뜨거웠다. 
    마침내 기다리던 때가 가까워졌다는 것을 의미했고, 
    그 기다림이란 딜과 방학이었다.   
    오빠는 증기엔진을 샀고 나의 엘모어 제 지휘봉도 샀다. 
    오빠는 자신의 새 물건에 대해 전혀 관심없이 주머니에 쑤셔넣고는 
    내 옆에서 말없이 걸었다. 
    나는 지휘봉 연습으로 하마터면 링크 디스 아저씨와 부딪칠 뻔했다.   
    잘 보고 걸어야지, 스카웃.    
    그렇게 오는 동안 지휘봉을 던지고 떨어뜨리느라 
    두보스 할머니 집에 닿았을 때는 꽤나 더러워져 있었다.  
    다행히 할머니는 현관에 없었다.   
    나는 많은 세월이 지난 지금도 도무지 어떤 힘이 
    오빠의 의식 밑바닥에 깔려 있던 아버지에 대한 
    복종이라는 단어를 깨뜨렸는지 알 수가 없다.  
    오빠도 나만큼이나 여러 번 아버지가 검둥이 변호사라는 실없는 소리를 들어왔을 것이다. 
    하지만 오빠가 성미를 가라앉히는 것은 당연하다고 생각해왔다. 
    오빠는 태어나서부터 줄곧 조용하고 무던한 성품이라는 평판을 얻어왔다. 
    하지만 그때 일어난 사건을 돌이켜보면 
    오빠가 그 몇 분동안 돌았었다고밖에는 설명할 길이 없다.   
    우리가 그집 문 앞에 이르자 젬 오빠는 내 지휘봉을 나꿔채어 
    두보스 할머니의 앞마당으로 미친 듯이 뛰어들었다. 
    아버지와의 약속도, 
    그 할머니가 숄 아래 권총을 갖고 있다는 것도, 
    더구나 그 집엔 일하는 아이 제시가 있다는 것도 모두 잊어버린 듯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