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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퍼 리 - 앵무새 죽이기 - 11. 동백꽃과 두보스 할머니 3

Joyfule 2009. 1. 9. 02:36
     
     하퍼 리 - 앵무새 죽이기 - 11. 동백꽃과 두보스 할머니 3  
    오빠는 두보스 할머니가 아끼는 동백꽃의 새순을 모두 잘라냈다. 
    마당은 순식간에 초록색 어린 새순들로 뒤덮여버렸다. 
    그리곤 내 지휘봉을 무릎에 대고 두 동강을 내어 바닥에 던져버렸다.
    그때 내가 질식할 듯한 비명을 질러대자 
    오빠는 내 머리채를 잡아당기며, 
    자기는 아무렇지도 않으며 얼마든지 또 해줄 수 있다고 했다. 
    내가 입을 다물지 않으면 내 머리칼을 죄다 뽑아놓겠다고 소리소리질렀다. 
    나는 도저히 입을 다물 수가 없었다. 
    오빠가 발로 걷어차자 나는 비틀거리다가 넘어지고 말았다. 
    오빠는 나를 확 잡아 일으켜 세웠다. 
    그제서야 다소 미안해 하는 듯 그저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그날 저녁에는 아버지를 마중나가지 않았다. 
    그저 칼퍼니아 아줌마가 내쫓을 때까지 부엌에서 서성거렸다. 
    칼퍼니아 아줌마는 흑인 특유의 마술로 모든 걸 알고 있는 듯했다. 
    우리의 엉터리 변명으로는 만족하지 않으면서도 
    오빠에게 금방 구워낸 버터 비스킷을 주어 나와 함께 먹도록 했다. 
    솜사탕 같은 맛이었다.  
    우리는 거실로 갔다. 
    나는 축구잡지에서 딕시 호웰 사진을 발견하여 오빠에게 보여주며 말했다.   
    이 사람 꼭 오빠 같아.   
    그것은 내가 해줄 수 있는 최고의 찬사였지만 그것도 별 효과가 없었다. 
    오빠는 그저 창문가에 있는 흔들의자에 앉아 
    양미간을 찌푸리고는 뭔가를 기다리는 듯 앉아 있었다. 
    태양은 서서히 빛을 잃어가고 있었다.  
    마치 영원히 계속될 듯한 시간이 흐르고 난 뒤 
    아버지의 신발 터는 소리가 들려왔고, 곧이어 덧문이 쾅 닫혔다. 
    잠시 후 아버지는 복도 모자걸이 앞에 서 있었다.   
    젬.   겨울바람처럼 냉랭한 음성이었다.  
    아버지가 거실 스위치를 올리자 천장으로부터 불빛이 쏟아졌고, 
    우린 얼어붙은 듯 그 아래 서 있었다. 
    아버지의 손엔 내 지휘봉이 쥐어져 있었다. 
    지저분한 노란 술장식이 융단 위로 늘어져 있었고, 
    다른 손바닥 위에는 살오른 동백나무의 싹이 올려져 있었다.   
    젬, 이거 네가 한 짓이냐?    
    네.    
    왜 그랬지?    
    아버지를 검둥이 변호사에다 쓰레기라고 했어요.   
    오빠가 조용히 대답했다.   
    단지 그 말을 했다고 해서 이렇게 해놓았다는 거냐?    
    네.   
    오빠의 입술이 움죽거렸지만 거의 알아들을 수 없이 짧게 대답했다.   
    젬, 친구들로부터 그런 말을 들을 때 네가 분명 힘들 거라는 건 알고 있다. 
    하지만 늙고 병든 할머니에 대한 너의 이 행동은 변명의 여지가 없어. 
    당장 두보스 할머니를 찾아뵙고 사과하도록 해라. 
    그리고 곧장 집으로 돌아오도록!   
    오빠가 꼼짝도 하지 않고 서 있었다.   
    가자, 오빠.   
    나는 오빠를 따라 거실을 나왔다.   
    넌 이리 와 있어.   
    아버지의 명령에 나는 되돌아왔다.  
    아버지는 (모빌프레스) 신문을 집어 오빠가 비워놓은 흔들의자에 앉았다. 
    나는 아버지가 그의 유일한 아들을 
    남부 연방의 유품으로 살해될지도 모르는 현장에 보내고도 
    어떻게 냉담히 앉아 신문을 읽을 수 있는지 도저히 납득할 수가 없었다. 
    때론 죽도록 미울 때도 있지만 
    그런 마음이 가라앉으면 젬 오빠는 나의 전부였다. 
    아버지는 이걸 아는지 알고도 모르는 체하는 것인지 모를 일이었다.  
    이 일에 대해서 만큼은 아버지가 미웠다. 
    하지만 대개 야단을 맞고 나면 쉽게 피로를 느끼듯이 
    나도 곧 아버지 무릎 위에서 졸고 있었다. 
    아버지가 양팔로 나를 감싸안았다.   
    이제 많이 자랐구나.    
    아빤 오빠한테 무슨 일이 일어나도 상관 안 하시죠? 
    아빠를 위해선 죽는 시늉이라도 하는 오빠를 
    총알 속으로 보내신 거예요.   
    아버지가 내 머리를 턱 밑으로 끌어안았다.   
    아직은 걱정할 때가 아니야. 
    젬은 이런 일로 절대 머리를 날려보내지 않을 게다. 
    난 네가 더 걱정이야.   
    왜 우리는 머리를 들고 태연히 
    신사나 숙녀가 되어야만 하는 건지 모르겠다고 나는 종알거렸다.  
    스카웃, 
    여름이 오면 더욱 어려운 일이 일어날 거야. 
    그때 아무렇지 않게 그걸 견뎌내야만 한단다. 
    물론 젬과 네게 그건 결코 공평치 못하다는 건 알고 있다. 
    하지만 우린 때에 따라 많이 참아야 할 때가 있고 
    그 인내는 우리를 더 훌륭하게 만들어주는 거야. 
    지금 내가 너희들에게 자신있게 할 수 있는 말은 
    앞으로 너희들이 이 일에 대해 결코 
    부끄럽지 않은 마음으로 돌아볼 수 있게 되리라는 것이다. 
    이번 사건은 톰 로빈슨의 경우인데 
    인간의식 중에서도 본질에 해당하는 것이지 ,,, 
    스카웃, 내가 이 남자를 모른 체하고는 
    교회도 갈 수 없고 예배도 드릴 수 없게 된단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