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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퍼 리 - 앵무새 죽이기 - 11. 동백꽃과 두보스 할머니 4

Joyfule 2009. 1. 10. 07:34
     
     하퍼 리 - 앵무새 죽이기 - 11. 동백꽃과 두보스 할머니 4  
    아빠가 틀릴지도 모르잖아요?    
    왜 그렇게 생각하지?    
    음, 모든 사람들이 아빠보고 틀리다고 하니까요.    
    그들도 분명 그렇게 생각할 자격이 있고 
    그들 자신의 의견을 존중해야 하겠지. 
    그러나 사람은 다른 사람과 살 수 있기 전에 
    자기 자신과 잘해 나갈 수 있어야 하는 거란다. 
    다수의 원칙에 의해 지속되지 않는 것이 있다면 
    그건 바로 인간의 의식이란 거지.   
    오빠가 돌아와 아버지의 무릎 위에 있는 나를 쳐다보았다.   
    그래, 어떻게 됐니?   
    아버지가 나를 일으켜 세웠다. 
    난 오빠를 살짝 훔쳐보았다. 
    그는 괜찮아 보였지만 무언가 묘한 표정을 짓고 있었다. 
    그 할머니가 이상한 약이라도 먹인 게 분명했다.   
    전 어질러놓은 걸 치우고 죄송하다고 했어요. 
    사실은 전혀 그렇게 생각하진 않았지만요. 
    그리고 싹이 나올 때까지 매주 토요일 꽃밭에서 일해야 돼요.    
    네가 그렇게 생각하지도 않으면서 
    잘못했다고 말한 것이 중요한 건 아니다, 
    젬. 그분은 병들고 늙었다. 
    그분의 말과 행동에 대한 책임을 네가 질 수는 없는 거야. 
    물론 나도 그분이 나에게 직접 그런 말을 했다면 더 좋았으리란 생각은 한다. 
    하지만 어떻게 좋은 일만 있겠니.   
    오빠는 카펫의 장미무늬에 넋을 빼앗긴 듯 뚫어지게 바라보며 말을 이었다.   
    아빠, 저에게 책을 읽어달라고 하셨어요.    
    책을?    
    네, 아빠, 매일 방과 후에 토요일까지 두 시간씩 읽어달라는 거예요. 
    그걸 해야 하나요?    
    물론이지.    
    한 달씩이나 해달라시는데요.    
    그렇다면 한 달을 해야지.   
    오빠는 장미무늬 가운데를 엄지발가락으로 지긋이 누르며 마침내 입을 열었다.   
    아버지, 밖에서 본 그집은 그래도 나은 편이었어요. 
    안은 컴컴하고 소름이 끼쳐요. 천장은 거미줄투성이고 ,,, .   
    아버지가 냉랭하게 미소지었다.   
    그건 네 상상력과 잘 어울리는 것 같은데. 
    왜? 거기가 래들리 집이라고 생각하면 되지 않겠니?    
    그 다음 주 월요일 오후, 
    오빠와 나는 두보스 할머니네 가파른 계단을 올라 
    조그만 통로를 터벅거리며 들어갔다. 
    오빠는 (아이반호)를 들고 확실한 지식으로 무장한 채 이층의 왼쪽 문을 두드렸다.   
    두보스 할머니 계셔요?   
    그가 소리쳤다. 
    제시가 덧문을 열고 미닫이의 빗장을 벗겼다.   
    네가 젬 핀치니? 어머, 동생도 데려왔구나. 어떡하지 ,,,?    
    둘 다 들여보내라, 제시.   
    두보스 할머니의 명령이었다. 
    제시는 우리를 들여보내곤 부엌으로 가버렸다.  
    문지방을 넘자 짓누르는 듯한 냄새가 코를 찔렀다. 
    그 냄새는 석유램프와 물받이, 
    더러운 침대시트가 있는 비에 썩은 회색 집에서 나는 듯한, 
    언제나 두려움과 경계심, 그리고 호기심을 자아내는 냄새였다.  
    방 저쪽 구석 청동침대와 할머니가 누워 있었다. 
    나는 오빠의 행동이 할머니를 
    구석으로 몰아부친 건 아닐까 생각하며 잠시 애처로운 생각이 들었다. 
    누비 이부자리 아래에 누워 있는 할머니는 
    상냥해 보일 정도로 평소와는 달리 느껴졌다.  
    침대 옆에 대리석 세면대가 놓여 있고, 
    그 위엔 티스푼이 꽂혀 있는 컵 하나, 빨간 귀가 있는 주사기, 
    탈지면 한 상자, 그리고 놋으로 된 자명종이 가느다란 세 다리로 버티고 있었다.   
    그래, 넌 저 지저분한 동생을 데려왔구나, 그렇지?   
    할머니의 첫인사였다. 오빠가 조용히 말했다.   
    내 동생은 더럽지도 않고 전 할머니가 겁나지 않아요.   
    나는 오빠의 무릎이 떨리는 걸 알아챘다.  
    나는 예의 그 지루한 공격연설을 예상했지만 할머니는 짧은 한마디만을 던졌다.   
    자, 읽어라, 제레미.   
    오빠는 등나무 의자에 앉아 (아이반호)를 펼쳤다. 
    나도 의자를 끌어와 오빠 옆에 앉았다.   
    좀더 가까이 오너라. 침대 옆으로.   
    우리는 의자를 앞으로 당겨앉았다. 
    이렇게 가까이서 할머니를 대하는 건 처음 있는 일이었다. 
    나는 순간 의자를 뒤로 물리고 싶어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