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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퍼 리 - 앵무새 죽이기 - 11. 동백꽃과 두보스 할머니 5

Joyfule 2009. 1. 11. 00:58
     
     하퍼 리 - 앵무새 죽이기 - 11. 동백꽃과 두보스 할머니 5  
    두보스 할머니는 끔찍스러웠다. 
    얼굴빛은 더러운 베갯닛 같았고 양 입꼬리는 조금씩 떨리는 듯 움직였다. 
    뺨 위에는 점점이 검버섯이 찍혀 있었고 
    흐릿한 눈에는 눈동자만이 선명히 드러났다. 
    손마디는 옹이처럼 툭 불거졌고 
    손톱 위의 살갗이 늘어져 마치 손톱을 덮으려는 듯 보였다. 
    또한 아래쪽 틀니는 윗입술 쪽을 약간 베어물고 있었고, 
    그래서 침이 더 빨리 고이는게 아닌가 싶었다.  
    오빠가 (아이반호)를 읽기 시작했으므로 난 더이상 쳐다보지 않아도 되었다. 
    나는 오빠의 책 읽는 속도에 맞춰 들으려 애썼지만, 
    오빠는 너무 빨리 읽어나갔다. 
    그것을 알아차린 두보스 할머니는 그럴 때마다 
    처음부터 다시 읽도록 명령했다. 
    이십 분쯤 흘렀을까. 
    오빠가 책 읽는 동안 창문 저쪽에 있는 벽난로의 그을음을 보고 있는데
    어느덧 할머니의 참견이 줄어들고 그 간격이 차츰 벌어지는 걸 알 수 있었다. 
    오빠가 한문장쯤 공중에 날려버려도 모르는 듯했다.  
    나는 다시 침대를 내려다보았다. 
    상황이 달라지고 있었다. 
    할머니는 턱까지 누비이불을 덮고 
    반듯하게 누워 있어서 얼굴만이 겨우 보였다. 
    그런데 천천히 머리가 좌우로 흔들리며 
    이따금 입이 크게 벌어지면서 혀가 느리게 물결치는 것이 보였고, 
    침이 길게 나왔다가는 다시 들어가고 또다시 입을 벌리곤 했다. 
    그입 자체가 별개의 것으로 부각되었고, 
    썰물 때의 조개구멍같이 들어갔다 나왔다 하며 간혹 푸푸 소리를 내기도 했다. 
    그 소리는 물질이 지글지글 끓을 때 나오는 악의 물질이 내는 소리 같았다.  
    내가 오빠의 옷깃을 슬쩍 잡아당기자 
    나를 쳐다본 오빠는 그제서야 침대로 눈길을 돌렸다. 
    할머니의 머리가 규칙적으로 흔들리고 있었다.   
    두보스 할머니, 괜찮으세요?   
    오빠가 말했지만 할머니는 더이상 듣고 있지 않았다.  
    그때 자명종이 울렸다. 
    우리는 그 소리에 깜짝 놀라 온몸이 굳어졌다. 
    잠시 후 우린 아직도 신경이 팽팽한 채로 집을 향해 걷고 있었다. 
    우리는 결코 도망쳐 오지는 않았다. 
    제시는 시계태엽이 다 풀리기도 전에 우리를 문밖으로 밀어냈다.   
    자, 자, 모두 집으로 돌아가거라.   
    오빠가 문에서 망설였다.   
    약 드실 시간이란다.   
    제시가 말하며 문을 닫고는 급히 두보스 할머니의 침대로 가버렸다.  
    집에 와보니 겨우 세시 사십오분이었다. 
    오빠와 나는 뒷마당에서 공놀이를 시작했다. 
    그날 아버지는 내게 노란색 연필 두 자루, 
    오빠에게는 축구잡지를 선물로 주었다. 
    그건 어쩌면 힘겨운 첫날에 대한 말없는 보상이었으리라.   
    그 할머니가 너희를 놀라게 하진 않으시던?   
    아버지가 자상하게 물었다.   
    아뇨, 하지만 몹시 불결했어요. 발작도 하구요. 침도 뱉아내구.    
    어쩔 수 없는 일이지. 사람은 아프게 되면 때론 흉하게 될 수도 있으니까.    
    난 무섭더라.   
    내가 말했다.  
    아버지가 안경 너머로 날 쳐다보았다.   
    알고 있겠지만, 넌 안 가도 된다.   
    다음날 오후도 첫날과 같았고 
    그 다음날도 마찬가지로 점점 할머니의 타입이 드러났다. 
    할머니의 첫마디는 동백꽃이나 
    아버지의 검둥이 옹호성향 등의 흥미로운 주제로 
    오빠를 괴롭힌 다음 차츰 조용해지고, 
    그 다음 자명종이 울리면 제시는 우리를 쉬쉬거리며 쫓아내는 그런 식이었다. 
    그리고 그날의 나머지 시간은 우리의 것이 되었다.  
    아빠, 검둥이 옹호자가 정확히 무슨 뜻이에요?   
    어느 날 저녁 아버지에게 질문했다.  
    아버지의 표정은 근심으로 얼룩져갔다.   
    누가 네게 그런 소릴 했니?    
    네, 두보스 할머니가 아빠를 그렇게 불렀구요. 
    제일 처음 들은 건 지난 크리스마스 때 프란시스로부터였어요.    
    그렇다면, 그때 싸운 이유가 그것이었니?    
    네, 아빠 ,,, .    
    그럼 왜 진작 묻지 않았지?   
    나는 프란시스가 그런 말을 했기 때문이 아니라 
    그 태도가 나를 화나게 했음을 설명하려 했다.   
    그건 제가 느끼기에 코딱지 같다고 말한 정도였어요.    
    스카웃, 
    검둥이 옹호자란 아무 의미도 없는 그런 말 중 하나야. 
    그래 꼬딱지같이. 하지만 설명하기가 어렵구나. 
    그건 말이다, 
    무지하고 쓰레기 같은 인간들이 자신들보다 
    흑인을 더 좋아한다고 느낄 때 쓰는 말이란다. 
    즉 그런 류의 인간들이 누군가를 천하고 추하게 부르고 싶을 때 
    마구 해대는 말인 거야.    
    그럼 아빠는 검둥이 옹호자는 아니지요, 그렇죠?    
    아니, 난 분명히 그렇다. 
    나는 모든 사람을 사랑하려고 최선을 다하고 있다 ,,, 
    때론 곤란을 받기도 하지만. 
    스카웃, 그것이 나쁜 별명이라고 생각할 수도 있겠지만 
    절대 모욕이 되는 건 아니야. 
    그건 단지 그 말을 하는 사람 자신이 
    얼마나 시시한 인간인가를 보여주는 것일 뿐, 
    네게 상처를 주진 않을 거다. 
    그러니까 두보스 할머니가 너희들을 놀릴 기회를 드리지 않도록 하는 거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