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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퍼 리 - 앵무새 죽이기 - 12. 나도 검기 때문이지 1

Joyfule 2009. 1. 14. 04:56
     
     하퍼 리 - 앵무새 죽이기 -  12. 나도 검기 때문이지 1  
    열세 살을 맞이한 오빠는 그해부터 달라져갔다. 
    변덕스럽고 가끔은 우울해보여서 
    그전처럼 오빠와 어울리기가 여간 불편하지 않았다. 
    오빠의 식욕은 놀라울 정도로 왕성해졌고 
    내게 하는 말이란 고작 귀찮게 하지 말아달라는 말뿐이었다. 
    결국 나는 아버지에게 자문을 구하기로 했다.   
    오빠 뱃속에 촌충이라도 들어 있나봐요.   
    아버지는 그게 아니라 그저 어른이 되는 과정이라고만 했다. 
    그래서 나는 될 수 있는 한 참아내고 오빠를 방해하지 않으려고 노력했다.  
    오빠의 이러한 변화는 시간이 흐르면서 더 달라져갔다.  
    두보스 할머니는 무덤에서도 춥지 않을 거야.   
    오빠는 집에서 책읽기에 함께 동행해준 내게 매우 고마워하는 것 같았다. 
    지난 밤 사이에 오빠는 
    상황을 어떻게 보고 어떠한 판단을 해야 하는가에 대해 깨달았다고 했고, 
    그것을 내게 가르치려 했다. 
    오빠는 여러 차례에 걸쳐 나를 이해시키려고 애썼으나
     결국 한 번의 말다툼 끝에 소리를 버럭 질러댔다.   
    너도 이제 소녀가 될 때가 됐잖아? 여자답게 좀 행동해!   
    나는 울음보를 터뜨리며 칼퍼니아 아줌마에게 달려갔다.   
    미스터 젬이 그러는 거 너무 기분 상해 하지 마라.    
    미스터 젬이라구요?    
    물론이지. 젬은 어른이 되려고 하는 거야.    
    그렇게 많은 나이도 아닌데요. 
    오빠는 지금 누군가에게 실컷 맞아야 해요. 
    하지만 난 힘도 없고 크지도 않으니 어쩔 수도 없고 ,,, .    
    스카웃, 젬이 저러는 건 누구도 어쩔 수 없단다. 
    젬은 지금 자신을 어디로 보내버리고 싶은 거야. 
    그리고 남자아이들이 하는 일을 다 찾아 다닌단다. 
    어디로든 떠나버리고 싶은 거니까. 
    그러니까 네가 심심하다고 느낄 땐 부엌으로 오렴. 
    그럼 되겠지? 부엌에는 할 일이 많으니까.   
    그해 여름은 좋은 예감과 함께 다가왔다. 
    젬 오빠는 자기가 하고 싶은 대로 했고, 
    나는 딜이 올 때까진 칼퍼니아 아줌마의 제안대로 부엌에서 놀기로 마음먹었다. 
    내가 부엌에 나타나면 아줌마는 좋아하는 빛이 역력했고, 
    그럴 때마다 나는 소녀가 되려면 
    적절한 처세 역시 갖추어야겠다고 생각하기에 이르렀다.  
    드디어 여름이 왔다. 
    그러나 딜은 오지 않았다. 
    스냅사진이 동봉된 편지만이 배달되었다. 
    편지에는 새아버지가 생겼다고 씌어 있었고 
    낚싯배를 건조하기 위해 메리디안에 머물러야 한다고 했다. 
    딜의 새아버지는 우리 아버지같이 변호사인데, 
    훨씬 젊고 쾌활한 외모를 가졌다고 은근히 자랑하고 있었다. 
    어찌되었건 딜에게 새아버지가 생겨서 나도 기뻤다. 
    딜은 나에게 영원히 사랑한다며 
    돈을 많이 벌면 나에게 결혼신청을 할 거라고 했다. 
    답장을 보내달라고 부탁하는 것으로 편지를 끝맺고 있었다.  
    나는 영원한 약혼자가 있다는 사실만으로도 
    딜이 이곳에 오지 않는 것이 조금은 위안이 되었다. 
    여름의 추억은, 
    연못가에서 종이로 말은 가짜 담배로 어른 흉내를 낸다거나, 
    부 래들리를 나오게 하려는 거창한 계획으로 
    눈동자를 빛내던 딜의 모습이 전부였다.  
    나는 이러한 것들을 곰곰이 생각해본 적이 없었다. 
    지난 여름 내게로 다가와 오빠가 한눈을 파는 사이 얼른 내 뺨에 키스하던 딜. 
    때때로 서로에 대해 열망하면서 순식간에 지나가버린 시간들.  
    그러나 딜이 가까이 없었으므로 올 여름은 별다른 추억거리를 만들지 못했고, 
    그가 없는 여름이 자못 속상하기만 했다. 
    나는 이틀 동안을 슬픔 속에 잠겨 지내야만 했다.  
    마치 그것만으로도 부족하다는 듯 
    아버지는 주 입법부에 비상이 걸려 보름 동안 집을 비워야 했다. 
    또한 그 무렵 메이컴은 정책적으로 범선에 붙은 따게비를 떼어내는 일에 열중했고, 
    버밍햄에서는 연좌농성으로 시끄러웠다. 
    도시의 실업자 수가 점점 늘어나고, 
    시골 사람들은 갈수록 살기 어려워진다고들 했다. 
    그러나 그러한 시국문제들은 오빠와 내게는 먼 이야기일 뿐이었다.